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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09. 2024

쉬어가는 하루

몸살이라니

지난 기록들을 살펴보니 전날 기절하듯이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는 것으로 시작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패턴에서 벗어난 날이었다. 보통 여덟 시간에서 아홉 시간 정도 자면 깨기 마련인데, 오늘은 유난히 잠에서 깨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11시부터 근무라 느지막이 나와 늦지 않게 라운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 손에 빨래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에 가방을 메고 헐렁하게 라운지에 들어섰는데, 원래는 한산해야 하는 공간이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모 대안학교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진로 탐색차 들렀다고 한다. 지황 님이 팜프라촌을 만들게 된 이야기와 코부기 집짓기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팜프라촌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집들은 지황 님과 린지 님, 유정 님을 비롯한 여러 멤버들이 함께 힘을 합쳐 직접 지은 집이다. 특히 코부기 4호는 지황 님이 실제로 살았던 공간이라 주방 싱크대 높이도 키에 맞춰서 만들어져 있고, 농사일을 하다 보니 들어오자마자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도 현관 바로 앞에 있다. 하필 지난 손님이 4호에서 묵고 나가서 11시가 땡 되자마자 청소 카트를 끌고 객실 청소를 하러 갔다. 서둘러 이불을 교체하고 정리한 후에 청소기와 물걸레를 돌리고 나니 학생들이 구경하러 왔다. 지난 1월에 남해에 왔을 때 코부기 2호에 묵었는데, 그때 느꼈던 포근함과 따뜻함을 손님들도 학생들도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



아침에 객실청소를 하기 전에는 어제 이장님이 수확한 옥수수도 먹었었다. 알이 탱탱한 게 정말 정말 맛있는 옥수수였다. 찐 옥수수에 환장한 사람이라 행복한 아침이었다. 정신없이 일했더니 밥맛이 또 좋다. 벌교 우리원에서 1박을 하고 온 지황 님이 각종 반찬과 미역국을 받아와서 다 같이 먹었다. 엄마가 싸준 콩으로 지은 밥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남해로 오기 전 엄마와 같이 나란히 앉아 콩을 깐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한 봉지를 채우는 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콩을 같이 까보고야 알았다. 키우는 덴 또 얼마나 정성이 들어갔을까. 생산 과정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매일의 밥상이 감사하다.



식사를 마치고 한 시부터는 나의 자기소개 시간이 있었다. 남해에 오기 전부터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부탁을 들었던 터라, 유난히 더 신경 쓰며 자료를 만들었다. 린지 님과 유정 님이 웰컴 드링크로 민트와 레몬, 식용 꽃을 넣은 드링크를 만들어주셨다. 옥수수와 단호박을 곁들여 먹었더니 정말 환대받는 기분이다. 이것저것 N잡을 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건우 님이 같이 실측하러 갔던 벌교의 건물 도면을 그리는 걸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가르치는 건 내 전문 분야 중 하나지. 캐드 기본부터 하나하나 알려주며 도면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근데 한참 가르치고 나니 이상하게 몸이 으슬으슬하고 소화가 안 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어제 바다수영을 하고, 찬 물에 샤워하고, 계속 아이스 음료를 마신 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방이 습해서 제습을 계속 돌렸더니 공기도 찼다. 몇 달 전 몸살기가 있어 부모님이 파스를 사다가 목 뒤에 붙여준 게 효과가 좋았던 기억이 나서, 응급상자에 있는 파스를 하나 꺼내 붙이고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이마가 뜨끈뜨끈해 졌던 게 금세 가라앉았다. 다들 상주로 놀러 나간다는데 오늘은 쉬어야겠다고 사양했다. 다들 퇴근하고 없는 조용한 라운지에 앉아 밀린 일지를 두 개 쓰고, 오늘자 일지도 쓰고 이제는 들어가 쉬려고 한다. 오늘치도 오늘 다 썼으니 내일은 정말로 연구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인터뷰 일정도 잡고... 사전조사도 하고... 할 게 천지다. 왜 남해까지 와서 밀린 일을 하느라 바쁜지, 도통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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