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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11. 2024

개구리가 러브버그만큼 많은 밤

비 오는 날의 두모마을

수면트래커를 확인하니 10시간 수면 중에 5시간 수면이 깊은 수면이었다. 죽은 것처럼 잔 밤이었다. 보통은 7시간 반에서 8시간 반 정도 자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 편인데, 이렇게 길게 잤다는 것은 확실히 컨디션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어제까지 나를 괴롭히던 목, 어깨, 허리로 이어지는 상체 뒤판의 뻐근함은 많이 없어진 상태다. 어제 읍내까지 가서 한의원과 약국, 목욕탕을 돌고 온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연구실에서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 하나를 받고, 게으르게 누워있다가 느지막이 씻었다. 아침으로 라면이 먹고 싶은 걸 보니 몸살기가 가라앉긴 했나 보다. 그래도 오늘까진 참아야지, 하고 누룽지를 끓였다. 열한 시쯤 라운지로 나오니 고양이들이 따로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낮에는 내내 밖에서 둘이 놀고, 아침과 저녁에는 이렇게 라운지에서 누워있다. 귀여운 마음에 방석 채로 인절미를 들어서 품에 안았다. 저항 하나 없이 폭 안겨있다. 



라운지에 나와있는 사람은 아마도책방과 남쪽계절을 운영하면서 팜프라촌에서 일하시는 수진 님뿐이다. 이제 더 이상 인터뷰와 연구를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는 발등에 불을 떨어뜨리는 방법이 최고다. 다음 주에 서울 갈 열차표를 끊었다. 3박 4일 다녀올 생각을 하니 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마음먹고, 수진 님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다행히 흔쾌히 좋다고 하신다. 오후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사전 조사 겸 이번에 수진 님이 낼 책의 원고를 미리 읽어볼 수 있었다. 남해에서 하는 서핑에 대한 책이다. 서핑을 잘 모르는 나도 편하게 술술 읽을 수 있었고, 다 읽고 나니 어쩐지 서핑이 하고 싶어졌다.


둘이 있으니 점심식사도 단둘이 하기로 했다. 수진 님이 계란과 두부를 함께 으깨어 전으로 부쳤고, 나는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적당히 썰어 굴소스와 소금, 후추에 볶았다. 먹다 남은 미역국도 끓여서 내놓았다. 간소하지만 맛있는 밥상이다. 혼자라면 메뉴 하나에 밥만 먹었을 텐데, 함께하니 여러 메뉴를 맛볼 수 있어 좋다. 나에게는 계란두부 전이, 수진 님에게는 채소 볶음이 맛있다. 역시 남이 한 메뉴가 최고로 맛있는 법이다. 설거지도 함께한다. 내가 비누칠, 수진 님이 헹구기. 



식사를 마치고 수진 님은 바로 라운지로 가고, 나는 잠시 동네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배부르다! 어제 갔던 방파제가 생각나 한번 더 가봤다. 어제보다 날씨가 맑아 하늘에 파란빛이 제법 보인다. 저 멀리 금산에는 구름이 흩어지듯이 지나가고, 바로 아래 지나가는 물살은 잔잔하다. 한 바퀴 돌아 논길을 지나 라운지 근처로 왔는데, 기다리던 전화 한 통이 왔다. 당산나무인 보호수 아래 평상은 일 년 내내 시원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전화를 받으며 평상에 앉았다. 분명 습한 날인데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통화를 마치고 잠시 자리에 누웠다. 느티나무 잎사귀 사이로 구름이 여유롭게 지나간다. 



다시 라운지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수진 님의 에세이를 마저 읽고, 자잘한 일들을 처리했다. 곧 린지 님과 유정 님이 돌아왔다. 사 오신 빵과 쿠키를 먹으며 할 일을 마무리한 후에 마찬가지로 할 일을 마무리한 수진 님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N잡러들의 이야기와 이주민들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진진한데, 수진 님은 둘 다이니 더 재밌을 수밖에 없다.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나에게 나눠주시는 분들께 보답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인터뷰 내용을 논문에 잘 녹여낼지 열심히 고민해 봐야겠다.


저녁 여섯 시가 되어 다들 퇴근할 시간이 됐다. 밖을 보니 비가 온다. 나는 우산이 없는데. 수진 님이 감사하게도 숙소까지 태워다 주신단다. 팜프라촌에서 멀지 않은 거리지만 우산 없이 가기엔 난감한 차였다. 차를 얻어 타고 숙소로 돌아와 주방에서 간단한 저녁을 해결하고 우산을 챙겨 다시 라운지로 나왔다. 하루종일 잊고 있던 연구실 할 일과 어제자 브런치 글을 써야 한다.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두컴컴하다. 


혼자 라운지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텅, 소리가 난다. 분명히 인기척이 없는데 무슨 소리지? 온갖 상상을 하며 잠시 공포감에 빠져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창문마다 개구리가 달라붙어 있다. 비가 오니 밖으로 나온 친구들인가 보다. 이쪽 창에도, 저쪽 창에도 개구리가 한가득이다. 큰 면마다 서너 마리씩이다. 개구리가 열심히 뛰어 창문에 붙었을 생각을 하니 공포가 가셨다. 귀여운 친구들이 찾아왔구나. 서울에서는 아파트에도, 주택에도 러브버그가 사방에 있더니 여기는 개구리와 도둑게와 우렁이알과 갯강구와 파리가 가득이다. 빗소리보다 개굴개굴개굴개굴 개구리 우는 소리가 더 크다. 농촌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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