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건강을 챙기는 방법
요 며칠 몸살 이슈로 쉬었던 요가에 재도전하기로 했다. 몸살난 김에 내내 잘 잤더니 새벽에 일어나기가 어렵지 않았다. 매번 린지 님의 차를 타고 가기가 미안했어서, 오늘은 내 차를 타고 같이 가기로 했다. 린지 님의 답장이 늦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역시나 갈까 말까 고민 중이었단다. 사람 마음 다 똑같다. 오랜만에 갔다고 몸풀기로 3분간 플랭크를 하고 시작했다. 괜히 플랭크 때문인지 팔 힘이 빠진 느낌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그래도 두 번째로 시도한 벽 대고 머리서기는 지난번보다 훨씬 수월하게 성공했다. 아침부터 아쉬탕가로 몸을 단련하니 땀이 쭉 나면서 개운한 기분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요가 선생님이자 바래길센터 팀장님인 문기 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오후에 다시 찾아오기로 약속했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미적미적 방에서 나왔다. 밤새 비가 왔었는지 두모천 물소리가 거세다. 라운지로 와보니 폴더창을 다 열어두고 환기를 하고 있다. 고양이들도,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평상에서 바깥공기를 즐겼다. 린지 님이 에어프라이기에 구워주신 단호박이 너무 달고 맛있다. 인절미는 누워서 놀다가 린지 님에게 잡혀서 귀 검사를 받았다. 잠시 린지 님과 인터뷰 내용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전공한 린지 님은 남해에 사는 이주 여성들을 연령대별로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어 책으로 내고 싶단다. 60-80대 이주 여성들은 대체로 근방의 마을에서 마을로 결혼하며 이주한 경우가 많고, 그보다 어린 40-50대 여성들은 자동차가 보급되며 근처 도시에서 남해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20-30대들은 결혼과 무관하게 이주하여 자아실현을 하며 살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나의 논문 주제와 겹치기도 한다. 몇몇 인터뷰이는 함께 만나보기로 했다. 린지 님은 남해 사람들과 나를 제일 많이 이어주는 든든한 조력자다.
점심식사는 어젯밤에 지황 님의 어머니가 보내주신 충무김치다. 다들 단호박에 배가 불러서 미적미적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우리 어머니가 보내주신 채소를 정리했다. 어젯밤에 장마를 뚫고 도착한 강낭콩, 근대, 아욱, 애호박, 아스파라거스 등이다. 습기에 콩 껍질이 반쯤 녹아서 왔다. 힘들게 농사지은 콩인데 안타까운 마음이다. 미끌거리는 점액질로 변한 깍지를 하나하나 까서 콩을 모은 다음에 씻어서 말려두었다. 다행히 껍질은 녹았지만 콩은 멀쩡한 게 꽤 많았다. 남해에 올 때 농촌 마을이니 채소는 마을에서 많이 얻어먹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현실은 어머니들의 사랑으로 차려지는 밥상이다. 마을 주민들과 교류는 있지만 그래도 수확할 때 돕거나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해야 작물로 돌아오는 법이다. 다들 팜프라촌을 비롯한 일이 바쁘니 의외로 주민들을 도울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바래길센터로 향했다. 도착하니 총 251km의 바래길을 완주하신 분이 기념사진을 찍고 계셨다. 한쪽 벽면에 바래길을 걸었던 사람들과 그들이 그 길을 걷는 데 걸린 시간이 적혀있었는데, 의외로 대부분 보름 정도 걸렸다. 여행으로 따지자면 길고, 일상으로 따지자면 짧은 시간이다. 남해 바래길은 우리나라 걷기 길 중에서도 특히나 잘 정비되어 있기로 유명하단다. 바래길 지킴이인 자원봉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안내표지판과 리본을 코스마다 열심히 달고 있고, 바래길 탐방안내센터가 별도의 건물로 있고, 문의전화를 하면 전문가가 받아준다. 어플로 바래길을 다 걷고 인증을 하면 이곳에서 완주인증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문기 님은 우리나라 걷기 길 전문가로, 바래길 팀장을 맡고 있다. 걷기 길과 음악, 요가와 명상 등을 접목하는 데 관심이 많으시다. 한 시간 동안 논문 주제와 관련된 질문, 걷기 길과 관련된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사실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걷기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동수단에 대한 것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쉽지 않은 지역에서 10km 넘게 걸은 후에 사람들은 어떻게 숙소로 돌아올까? 첫 번째는 택시, 두 번째는 버스, 세 번째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픽업 서비스라고 한다. 택시 기사들이 걷기 길을 환영 한다니, 생각지도 못한 운송수단이었다. 또, 걷기 여행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소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남해를 떠나기 전에 절반이라도 걸어보고 싶다고 하니, 일단 한 코스부터 완주해 보라고 하신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는 여기에 적용되는 말인가 보다.
숙소로 돌아와 린지 님과 아침에 나눴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두 명의 인터뷰이를 더 섭외했다. 평상 위에서는 낑깡이와 인절미가 담요에 둘러싸여서 마치 한 고양이처럼 누워 있었다. 앞에 나온 머리는 분명 인절미인데 뒤로 나온 발은 낑깡이다. 열어보면 두 마리인데 닫아놓고 보면 한 마리인 것은? 아무래도 고양이지. 회의를 하고 있는 팜프라 식구들을 배경으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데 갑자기 도시의 음식이 먹고 싶다. 한식과 양식 쿨타임이 따로 작용하는 것이 나의 입맛인지라. 입 밖으로 "피자 먹고 싶어요"를 내뱉으니 갑자기 다들 맛있겠다며 합세했다. 결국 저녁에 오는 손님에게 피자 픽업을 부탁했다. 피자는 오늘 나보다 먼 거리를 움직여 우리 식탁에 올랐다. 삼천포에서 출발해 남해에 온 피자와 치킨이다. 어머니들의 사랑으로 차린 밥상도 맛있었지만, 이렇게 속세의 맛도 오래간만에 먹으니 아주 행복하다. 어느새 밖에는 어스름이 깔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