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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08. 2024

구름 위를 걷는 기분

낙조 보러 보리암 갔다가 구름 구경을 한 사연

해 떨어지고 얼마 안 돼서 잠들고 해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는 것이 이곳에서의 일상이다. 다섯 시 반에 눈을 떠서 다시 눈을 감았다가, 여섯 시쯤 는지럭거리며 이불 밖으로 나왔다. 토요일에도 요가 수업은 열린다. 이제는 익숙한 요가 메이트가 된 린지 님과 카톡으로 “요가 가시나요?” “네!”를 주고받고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까치집을 찬물에 담갔다 빼서 수습해 보았다. 차를 얻어 타고 센터까지 갔는데, 오늘은 고양이들이 마중 나와있다. 치즈냥이 한 마리와 까만 냥이 한 마리가 무지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서 한가하게 요기들을 맞이한다.



주말이라 다들 여유가 있는지, 아쉬탕가 수업이 끝나자마자 한 분이 감자를 쪄왔으니 나눠먹자고 하신다. 평소에는 나와 린지 님만 3층 테라스에서 커피와 차를 즐기는데, 오늘은 거의 모든 멤버가 함께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금산의 능선을 배경으로 먹는 감자는 꿀맛이다. “감자가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어요?” 하니 감자를 챙겨 오신 회원님이 “저를 닮아서 그렇지요~” 하신다. 까르르 웃게 만드는 우문현답이다. 남해의 사람들은 남해의 자연을 닮았다. 사랑스럽고, 잔잔하고, 유쾌하다. 산처럼 시원시원하고, 잔잔한 파도처럼 다정다감하다. 



요가를 마치고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바로 라운지로 나갔다. 오후에 친구가 온다고 하여 밀린 할 일을 해결해야만 한다. 왜 한 달 살기 여행을 와서도 할 일이 이렇게 밀리는지 미스터리 한 노릇이다. 아마 타고난 할 일 보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많은 모양이다. 어제 여행기를 올리지 못해 이틀 치의 여행기를 후다닥 정리해서 올리고, 빨래를 돌리고 건조하고, 마감이 급한 일의 마감을 하루 더 연장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린지 님이 아침부터 김치찌개를 끓여놓았다고 해서 다 같이 식당으로 향했다. 지황 님 어머니의 김치와 돼지고기가 들어가고, 린지 님의 솜씨로 완성된 김치찌개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수진 님이 부쳐주신 계란 프라이도 곁들여졌다. 저녁에 친구와 근사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입이 멈출 줄 모른다.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머리가 큰 고양이가 미남이라고 했다. 인절미의 아빠 고양이인 개냥이가 놀러와서 밥먹고 갔다.


식사를 마치고 방과 차를 정리한 후에 순천역으로 향했다. 주 6일 일하는 친구가 귀한 시간을 내어 단 1박 2일을 위해 남해에 와주었다. 괜히 급한 마음에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냈다. 기차 도착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차를 역 근처에 세워두고 친구를 맞이하러 갔다. 기차표에서 열차 칸을 확인하고 내리는 위치까지 갔다. 열차에서 갓 내리는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피어났다. 가방을 대신 메고 차까지 이동해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남해는 죽방멸치라고 해서 옛날 방식대로 대나무 발로 잡는 멸치가 유명한데, 그래서인지 멸치쌈밥이 대표적인 먹거리다. 팜프라 식구들에게 물어보니 전부 짱구식당을 추천하길래 그리로 갔다. 자연산 병어를 무친 것과 각종 제철 나물요리, 갈치구이, 그리고 멸치쌈밥이 같이 나왔다. 한식 러버에게 제격인 메뉴였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보리암으로 향했다.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서 올라가기 위해서다. 가파른 경사를 열심히 밟아 올라갔는데, 막상 주차장에 내리니 '망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요 며칠 장마기간이라 구름만 한가득이었던 것이다. 산 아래에서 보아도 꼭대기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구름이 짙었는데, 올라와보니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다. 지난번 방문 때에는 해도 뜨기 전에 캄캄한 숲길을 걸어 올라갔었다. 1월에 방문했던 터라 추위와 싸우다 지고 해가 뜨기도 전에 내려왔었다. 아무래도 일출과 일몰을 보는 데 성공하려면 공덕을 많이 쌓아야 하나 보다. 


전에 보리암에 와본 적 있는 친구라 함께 경내를 걷다가, 지난번에 가보지 못했던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선은전이다. 그런데 해가 질 무렵에 간 데다가 며칠 내 이어진 습기와 비 때문에 좁은 길이 미끄럽고 수풀이 무성했다. 결국 중간에 가다가 포기하고 다시 보리암으로 돌아왔다. 금산산장도 유명하다는데, 다음에 날 좋을 때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해가 져서 길이 깜깜했다. 안개가 자욱해서 사람 그림자가 안개에 비칠 정도였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와서 다행이었다. 짱구식당에서 배불리 먹은 배를 보리암에서 완전히 꺼뜨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또다시 해변까지 밤산책을 나가기에는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다음 날을 기약하며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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