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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Jul 06. 2024

벌교의 발효 장인을 찾아서

출장을 갑니다

지난밤에 책을 읽다가 일찍 잠들었는데, 두어 시간 잔 후에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 긴 통화를 하다가 아주 늦은 시간에 도로 잠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서울까지 가는 건 금방인데, 외딴곳에 떨어진 감각이 선명해질 때가 있다. 이곳의 공기도 날씨도 분위기도 공간도 낯설어 해외에 있는 것만 같다. 늦게 잔 덕분에 늦잠을 자버려서, 오늘은 요가를 건너뛰고 느지막이 일어나 출장 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출장지는 벌교의 우리원. 유기농업으로 쌀농사를 짓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의 일부 공간에 대한 컨설팅 의뢰가 있어 함께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아침으로 자두와 계란, 두유를 챙겨 먹었는데, 출장이라고 도넛과 핫도그까지 얻어먹었다. 든든한 아침이다. 차 타고 지나가면서 남해대교가 보인다. 한때 육지와 남해를 잇는 유일한 길이었던 다리다. 




앞에 사고가 났는지 예정시간보다 한참 넘겨서 벌교에 도착했다. 다성촌이라는 곳에서 꼬막정식을 먹었다.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탕수육, 꼬막탕, 삶은 꼬막 등 꼬막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흰밥에 꼬막무침과 김, 참기름을 넣어 비벼먹었다. 이렇게 지역에서 맛있는 밥을 먹다 보면 서울에 가서 먹는 한식은 가짜 한식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여름이라고 누가 입맛이 없다고 했던가. 맛있는 밥상이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데.



식사를 마치고 우리원으로 향했다. 우리원 교육관은 청기와가 얹어진 멋진 벽돌 건물로, 내부는 나무 루버와 황토칠로 마감되어 있다. 오래된 건물이고 자칫 올드해 보일 수 있는 마감재지만, 내부를 채운 몇 십 년간의 기록과 사진들이 공간과 어우러져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발효장인인 전양순 여사님이 정성들여 사모으셨다는, 옛날에 농사에 쓰인 용품들도 눈에 띈다. 골동품이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오브제 같이 아름답다. 흰색 벽과 금속이나 목재 마감으로 이뤄진 현대적인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지만, 진짜 세월이 덧입혀진 이런 공간은 귀하다. 최대한 보존하면서 쓰임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고쳐쓰자는 의견을 내었다.



교육원에서 나와 발효장으로 갔다. 마당에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담은 옹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고, 또 발효동에는 어성초 등을 발효시킨 옹기들이 가득하다. 발효동은 최대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벽을 두껍게 하여 세웠다고 한다. 옹기에는 숫자가 두 개씩 쓰여있는데, 발효를 시작한 연도라고 한다. 20년을 훌쩍 넘긴 옹기들이 많다. 사람으로 따지면 대학까지 입학한 발효액이다. 땀과 정성이 보이는 공간이다.



귀한 공간에 초대받아 긴 세월 한 분야에 쏟은 땀과 결실의 일부를 엿보고 온 기분이다. 나도 내 분야에서 저렇게 무엇인가를 이루고 끊임없이 정진할 수 있을까. 함께 출장 갔던 옆방 식구 건우 씨와 함께 팜프라촌으로 돌아와 짜파게티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와 섞박지, 양파절임을 곁들였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지. 밥을 잘 챙겨 먹고, 하루를 기록하고, 매일을 열심히 살고, 내일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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