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마닐 Jul 04. 2024

두 바퀴로 은모래비치까지

오르막이 내리막이 있어도 행복한 자전거 여행

오늘 하루의 시작은 요가가 함께했다. 혼자 하는 요가는 아니다. 남해에는 재야의 고수 요기들이 많다. 제주도에도 가수 이효리를 비롯하여 요가의 열풍이 불더니, 섬에는 원래 요가 고수들이 많은 것일까? 새벽 여섯 시 반에 숙소 앞에서 팜프라 식구인 린지 님 차를 같이 타고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로 갔다. 남파랑길 여행지원센터와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는 붙어있는데, 오늘 요가를 가르쳐주시는 분은 바래길문화팀장으로 일하시는 윤문기 선생님이다. 남해군민이거나 남해에 한 달 이상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수업이 열려있다.


수요일은 아쉬탕가 요가를 하는 날인데, 수업을 듣는 사람의 절반은 중년여성, 나머지 절반은 청년여성이었다. 2020년부터 시작한 수업을 꾸준히 듣는 사람이 많아 다들 요가 고수다. 동작 사이사이마다 차투랑가 단다사나 동작을 반복해서, 오전에만 푸시업 자세를(업까지는 안 하고 푸시만 했지만) 서른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 수업 강도가 높지만 신기하게도 몸에 무리가 가는 느낌은 아니라,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열심히라 수업 중에 창문에 이슬이 맺힐 정도였다. 한 시간 십 분 가량의 수업이 끝나고 나니 운동복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차를 마실 사람은 올라오라길래 3층으로 가보니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남파랑길과 바래길에 대한 안내책자, 완보 기념품 등을 구경했다. 알고 보니 윤문기 선생님은 우리나라 걷기 전문가라고 하셨다. 걷기길은 음악, 요가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자원이라고. 꾸준한 요가로 라뽀를 쌓은 후에 인터뷰도 청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단 요가를 하고 나니 몸에 결린 데가 하나 없이 가뿐해서 행복해졌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나왔다. 오늘은 팜프라촌 헬퍼로서 첫 근무가 있는 날이다. 라운지 공간을 오픈하고 마감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규칙과 루틴, 매뉴얼이 있어 하나하나 메모하며 들었다. 오픈 준비를 마친 후에는 팜프라촌 식구들과 같이 어제 사 온 유자카스테라를 나눠먹었다. 유정님이 주문했다는 천도복숭아도 곁들여 먹었는데, ‘무조건 터져가는 천도 유월도 복숭아(둘러앉은 밥상)’라는 복숭아란다. 보통 천도복숭아는 배송 과정에서 터질 것에 대비해서 덜 익힌 상태로 수확하는데, 이곳의 복숭아는 다 익힌 다음에 수확해서 거의 절반이 터져서 온단다. 달기도 단데 천도복숭아 과육이 거의 백도 과육처럼 느껴져서 신기했다. 풍성한 아침상이다.


아침을 먹은 이후에는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고, 친구들과 카톡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려놨던 빨래를 정리했다. 다들 장 보러, 볼일 보러 읍내로 나간다고 해서 점심은 혼자 먹었다. 메뉴는 어제 남은 된장찌개와 반찬이다. 계란 프라이도 하나 부쳐서 밥에 올렸다. 한 달짜리 템플스테이에 온 기분이다. 마음이 편안하고 속도 편안하니 밥이 잘 들어간다.


요새 낑깡이의 최애 자세. 양쪽으로 길게 늘인 상태로 들어 올리고 있으면 편안해서 거의 잠들 기세다.
오늘은 드론으로 논에 약을 치는 날이다. 커다란 드론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다.


오후에는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은모래비치에 가보기로 했다. 해변 근처에 우체국이 있어 가방에 편지를 챙겨 넣었다. 지도상으로는 30분이면 간다는데, 절반이 오르막, 나머지 절반이 내리막이다. 160미터를 오르고 170미터를 내려간다. 학교에 가는 것과 비슷한 오르막이라,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해가 쨍쨍해서 채비를 단단히 하기로 했다. 팔토시, 목토시, 모자, 선글라스, 헬멧을 챙겼다. 물통에 시원한 물도 가득 담았다. 날이 밝으니 차가 나를 못 볼 걱정도 덜하다.


바래길을 뛸 때에는 마을안길로 뛰어서 길이 험했는데, 자전거는 도로로 나가니 훨씬 평탄하다. 물론 오르막을 타는 건 힘들지만, 그 속도로 보는 풍경의 맛이 있다. 마침 남해 내려올 때 듣던 오디오북 <단 한 사람>이 딱 30분 분량 남아있어 가는 길에는 오디오북을 들었다. 혼자 세상에, 세상에 하고 들으면서 가니 오르막이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내리막을 가는 건 순식간이다. 자전거가 너무 빨라 브레이크를 잡으며 탔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내려가니 은모래비치 표지판과 커다란 주차장이 보였다. 잘 도착했구나!



해변 앞에는 해풍을 막는 소나무숲이 있고, 그 너머에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과 바다가 있다. 바다 옆으로는 뿌연 산이 에워싼다. 저 멀리 다랭이 논도 보인다. 바다를 배경으로 나를 태우고 오느라 애쓴 자전거 꼬붕이 사진을 찍고, 솔숲 아래에 있는 평상 하나를 손수건으로 대충 닦고 반쯤 누웠다. 아웃도어형 인간에게 최적화된 동네다. 걷기, 달리기, 자전거, 수영, 서핑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니까. 조만간 안에 수영복을 챙겨 입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과 점심을 챙겨 먹었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왔더니 과자를 먹고 싶어졌다. 해변가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어 들어가 먹고 싶었던 과자를 이것저것 담았다. 앞선 손님이 물건을 가져왔다가 가져다 놨다가 하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서울에서는 답답하게 느꼈겠지만, 한량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기다림마저 기껍다. 사장님께서 기다리게 한 게 미안하셨는지 편의점이 막 지난 일요일에 열었다며, 아직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중이라고 하신다. 종종 오겠다는 말로 인사하며 편의점에서 나왔다.


물통도 채울 겸 이제 우체국에 갈 시간이다. 해변 바로 뒷골목에 우체국이 있다. 자전거를 앞에 세워두고 물통을 챙겨 들어갔다. 편지를 꺼내 일반우편으로 부치면서, 스티커 대신 엽서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더니 관광도장으로 찍어주시겠다며 한 술 더 뜨신다. 감성을 덤으로 챙겨주는 우체국이라니, 자주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맛집이네요~ 했더니 그냥 와서 에어컨 바람만 쐬고 가도 된단다. 양해를 구하고 물통에 시원한 물을 가득 채우고, 편지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돌아가는 길은 170미터 오르막, 160미터 내리막이다. 오디오북을 다 듣고(이런 결말이라니?) 찰리 푸스의 dangerously로 시작해 유튜브가 골라주는 플레이리스트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은모래비치와 두모마을 사이 중간 지점은 금산 입구다. 올 때는 내리막을 빠르게 달리느라 몰랐는데, 돌아갈 때 보니 금산의 바위산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다. 날이 점차 개서 오래간만에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인다. 며칠 새 키가 훌쩍 자란 듯한 초록색 벼가 앞에서 흔들리고, 그 뒤로 빨갛고 파란 지붕들이 보이고, 그 뒤로 숲과 산이 펼쳐진다. 오르막을 가다가 내려서 한참 구경하고, 다시 또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기를 반복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단체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나처럼 혼자 달리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쳤다. 날이 좋으니 다들 자전거를 타고 나왔나 보다. 어느새 오르막이 끝났다. 내리막을 따라 쭈욱 내려오니 이제는 눈에 익은 두모마을 입구가 보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유정님과 수진님이 주방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도울 것이 있는지 묻자 극구 사양하셔서 청소가 끝난 후에 사 온 과자를 나눠먹기로 했다. 보일러를 목욕으로 틀고 방으로 들어와 땀에 절은 옷을 벗어서 널어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잠깐의 나들이로 아주 행복해졌다. 머리까지 보송하게 말린 후에 잠시 핸드폰을 충전하며 누워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청소가 끝나 있었다. 내친김에 어제 마트에서 사 온 멸치와 서울에서 가져온 마요네즈까지 챙겨서 함께 라운지로 갔다. 여기 멸치는 죽방멸치라 말린 멸치에서도 윤기가 나고 맛이 좋다. 멸치를 반으로 갈라 똥을 빼내고 머리와 몸통을 각각 맛있는 마요네즈에 찍어먹으면 맥주안주로 제격이다. 술은 끊었지만 술안주는 여전히 좋아한다. 낑깡이와 인절미가 냄새를 맡더니 흥분하면서 달려들었다. 간식까지 주며 달래다가 결국 밖으로 내보냈다. 너희가 먹기엔 너무 짜다고.


주전부리를 많이 했더니 저녁 생각이 없다. 그대로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자기소개 자료를 만들었다. 여태까지 해온 것의 큰 줄기는 건축이지만, 잔가지가 잡다하게 많아 은근히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현재는 대학원생이자 팜프라촌 헬퍼이지만, 대학에서 건축스튜디오를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건축사사무소와 인테리어 시공회사에서 일한 경력도 넣고, 여행 글 작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내용과, 에세이를 쓴 것, 그리고 취미로 운동과 뜨개를 한다는 것도 넣었다. 정리하다 보니 전에 일한 것들도 기억나고,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 자연스레 생각이 흘러갔다.


제법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일기를 쓰다가 말고 자리에 누웠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이상하게 여유롭고 이상하게 길다. 여름이라 실제로 낮이 길기도 하다.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기절하다시피 잤다.



이전 02화 이건 러닝이 아니라 트레일 러닝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