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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10시간전

문필봉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는 것들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완벽한 숙소를 찾아서


새벽에 비가 많이 내리더니 아침이 되니 하늘이 맑게 갰다. 이런 파란 하늘은 장마철 남해에서 보기 드물기 때문에,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하는 날이다. 두모천에도 윤슬이 비치고, 저 멀리 금산 꼭대기도 맑게 보인다. 오래간만에 아침식사를 운치 있게 해 보기로 했다. 아이스박스에 자두, 두유, 삶은 계란, 디저트를 넣고 뜨거운 물을 담은 전기포트와 우리원에서 받은 누룽지도 챙겼다. 그리고 두모마을 보호수 아래에 있는 평상에서 아침 피크닉을 즐겼다. 바로 옆에 두모천이 지나가니 마치 계곡에 피서 온 느낌이다. 배불리 먹고, 그대로 평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하다. 보호수가 내린 축복이다. 앉은자리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 읽었다.



시간이 다 되어 언니는 평상에서 더 쉬라고 두고, 라운지로 향했다. 오늘은 객실 청소가 많은 날이다. 언니한테 빌린 손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환기를 하고, 빨랫감을 걷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먼지를 털고, 이불을 정리했다. 두 채를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프다. 한 채 분의 객실 청소를 남겨두고 점심을 먹으러 공동주방으로 향했다. 언니가 팜프라 식구들도 같이 먹자며 된장찌개와 토마토 달걀볶음을 해놓았다. 전날 밤 린지 님이 해두신 소시지 채소 볶음과 두부조림도 함께 내놨다. 한상 가득 소화도 잘되고 맛도 좋은 음식이 차려졌다. 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음식이 한없이 들어가는 날이다. 더위를 먹었나.



행복한 점심시간을 마치고 팜프라촌으로 돌아가 마저 청소를 끝냈다. 시간이 조금 남아 솔기가 뜯어진 발매트도 하나 꿰맸다. 헬퍼의 업무란, 아무튼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돕는 것이다. 바느질은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정작 내 옷은 귀찮아서 바느질하지 않고 방치된 것이 많지만... 세상에는 왜 내 일보다 재밌는 남의 일이 이렇게 많은 것일까.


오늘 오후에는 인터뷰가 두 건이 잡혀 있다. 이제 남해에서 지낼 날이 많이 남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진다. 언니는 수진 님 차에 태워서 송정 솔바람 해변으로 서핑하라고 보내고, 나는 차를 따로 몰고 '소도읖'이라는 이름의 워케이션 센터로 향했다. 소도읖은 은모래비치 근방에 위치해 있는 곳인데, 기존에 농지였던 곳을 개발해서 숙박업을 운영하고 있다. 바람에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는 파란 논 위에 서 있는 건물의 모습이 멋지다.



이곳은 크게 객실과 사무공간으로 나뉘는데, 숙박을 하지 않는 손님들도 일일권으로 사무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직접 가구 디자이너와 소통해서 만들었다는 사무공간의 가구들이 세련되고 깔끔하다. 다음 인터뷰만 아니었으면 노트북을 들고 와서 작업을 해도 좋았을 것이다. 식사도 그렇듯이, 공간에도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사업체들이 들어오고, 이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다양한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은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소도읖 객실 건물과 사무공간 건물 사이에서 산봉우리 두 개가 겹쳐 보이며 뾰족하게 봉우리 두 개가 올라와있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그 형태를 문필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필봉 앞에 포토존을 설치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급제를 부르던 문필봉이니, 현대에는 제안서가 통과된다거나, 급한 마감을 끝내는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운칠기삼이라는데, 사실 운이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기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재주를 부리려면 최소한 기세로 일단 밀고 나가는 힘이 필요하니까.



아직 오픈한 지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소도읖에서는 벌써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는 근처의 식당이나 카페와 제휴를 맺고 할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멀리는 생활공작소와 같은 브랜드와 협업하여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두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팝업으로 만들어둔 공간들을 잠시나마 체험하고 나왔다. 세련된 공간에서 힐링하며 일하고 싶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좋아할 것 같은 장소다.



두 번째 인터뷰는 남해 청년 네트워크 대표님을 만나 진행됐다. 예전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곳이라 마을에서 쉽게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대지포마을은 처음 방문해 봤는데, 두모마을과 또 다른 느낌의 한산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에 할머니 여러 분이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남해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진심인 대표님의 얘기를 한참 들었다. 또, 한 개인이 나서서 에너지를 쏟아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인터뷰를 마치고 송정 솔바람 해변으로 언니를 데리러 갔다. 송정하면, 또아이스(또 오아시스)다. 먼저 맥주를 시켜서 마시고 있는 언니 옆에 앉아 무알콜 하이볼을 주문했다. 한 병을 다 비우고 해변을 걷고 오고, 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해변을 또 걸었다. 유명하기야 상주 은모래비치가 더 유명하지만, 이상하게 송정 솔바람 해변에 더 마음이 간다. 남해에서 처음 만난 해변이라 그럴 수도 있고. 팜프라 식구들과 같이 와서 즐겼던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저쪽에서 팜프라 식구들이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매번 올 때마다 마주친다. 만난 김에 지황 님, 유정 님, 린지 님과도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더니 바다도 완전히 어둠에 잠겨버렸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모기떼를 이기지 못하고 언니에게 빨리 맥주를 끝내고 일어나자고 재촉했다. 사실 배도 고프다. 벌써 저녁 여덟 시가 되었다. 점심때 섞박지에 짜파게티를 먹으면 맛있다는 얘기를 한 후로 짜파게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저녁 메뉴는 자연스럽게 짜파게티가 되었다. 물은 봉투에 쓰인 분량의 절반만 넣고 스프와 건더기 스프를 다 넣고 졸이듯이 끓인다. 그러면 훨씬 진하고 고소한 맛의 짜파게티가 완성된다. 다 먹고 정리한 후에는 오아시스에서 포장한 쿠키 두 개를 들고 또 라운지에서 글을 쓴다. 이제 남해에서의 생활도 열흘 남짓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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