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순댓국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하루 삼시 세끼에 두 끼는 먹을 정도로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먹을 정도로 나는 순댓국을 좋아했고, 그런 나를 위해 부모님은 집에서 직접 순댓국을 만들어주시기 위해 돼지의 사골과 머리를 고아 내 방에서 불과 10걸음 내외 거리에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 주셨다. (물론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먹긴 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미성년일 때보다는 더 자유로움을 얻게 된 시기에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각 지역을 여행하면서도 그 지역의 순댓국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먹어보는 편이었다. 그렇게 나의 순댓국 견문(?)은 넓어져만 갔고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되었다.
우선 순댓국을 먹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그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1) 밥을 말아먹는 2) 밥을 따로 먹는 사람들로 말이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데 나만의 철학으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순댓국이란 순대국밥을 일컫는 말로 국밥이라 함은 아래와 같다고 알고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후자인 사람들에 대한 악의적인 감정 역시 없다. 그들의 방식도 존중한다. 모든 음식에 정답은 없으니. 다만 내가 먹는 방식이 틀렸다거나 그렇게 먹으면 맛이 덜하다는 평을 하는 혹자들에게 나는 항상 위와 같이 설명한다.
그리고 나는 국밥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토렴(토렴은 밥이나 국수 등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퇴염(退染)이라고도 한다.)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오랜 시간 시장통에서 국밥집을 운영한 노부부의 손을 본 적이 있다. 그분들은 토렴으로 인해 손가락에 지문이 닳아 없어져 있었다. 그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던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국밥의 '맛'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토렴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이런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순댓국집을 하나만 꼽아달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항상 청계천이 흐르는 을지로 후미진 뒷골목 어딘가에 있던 '전통 아바이순대'를(엄마 죄송해요..) 꼽았다. 그곳은 나의 어머니에 이어 나에게 두 번째로 마르지 않는 샘을 만들어 준 곳이었다. 국물을 너무 먹어 샘이 말라 가는 나의 뚝배기에 뜨거운 국물이 가득 담긴 국자를 가지고 오시어 툭 부어주고 가시던(이때 따라오는 건더기는 덤) 사장님 덕에 적은 돈으로 아주 풍족하게 즐길 수 있었고, 여기에 내가 선호하지 않는 당면 순대가 아닌 아바이 순대였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훗날 이 곳은 [다이나믹듀오 - 거품 안 넘치게 따라줘] 라는 노래 가사에도 등장했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등장했다. 이 방송 이후 자연스레 몰려드는 사람들의 규모는 대단했고, 나이 든 사장님은 방송 이후 몰려드는 사람들을 이겨내지 못해 갑작스럽게 문을 닫아 버리셨다. 이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감히 설명할 수 없으며 나는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수요미식회> 게시판에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글을 적는 것으로 표출했다. 아직까지 참으로 아쉬운 일이고, 생각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좌절할 수 없었으며, 그곳을 대체할 어딘가를 찾아야만 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누군가 나에게 지금 가장 좋아하는 순댓국집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또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원주 시장통에 있는 상가 지하에 있는 '강릉집'(엄마 또 죄송해요..)이라고.
원주에서 대학 생활을 한 친구의 추천으로 2015년 겨울 이 곳을 처음 알게 되었고, 나의 순댓국이 준비되기까지 토렴이 진행되는 과정을 확인했고, 그렇게 완성된 순댓국이 내 앞으로 놓여, 내 입으로 들어오는 순간 확신했다. 앞으로 이 곳이라고. 비교적 이전의 집보다는 먼 거리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이때 나와 같이 동행해 함께 이 순댓국을 소개받은 친구는 순댓국계의 오마카세라고 이 곳을 지칭한다.
오마카세 [おまかせ]
1. (사물의 판단∙처리 등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
2. [요리](음식점 등에서) 주방장 특선; 주문할 음식을 가게의 주방장에게 일임하는 것.
순댓국이 당길 때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시간의 여유가 될 때 이 곳을 방문하며, 차를 끌고 원주로 향하는 길에 보는 경치와 찾아오는 허기짐은 이 순댓국과 아주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또 순댓국 하면 생각나는 일 중에 이런 일도 있다. 예전 여자 친구와 처음 서로를 알아갈 당시 나는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순댓국이요!"
그렇게 우리 연애가 시작됐다. 물론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상관이 없진 않았다.
그리고 프러포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농담(과연..)으로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순댓국집에서 프러포즈할 거야. 뚝배기 아래에 반지를 숨겨둔 채로"
많이 혼났다.. 친구들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어쨌든 간에 그 친구와의 연애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도 순댓국이 아닐까 싶다. 당시를 생각하면 파스타와 와인보다는 순댓국과 소주가 생각난다. 앞으로도 그렇게 연애를 하고 싶다. 토렴 한 순댓국과 빨간색 소주처럼.
그리고 가야겠다 조만간. 강릉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