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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주 Dec 18. 2018

집에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면은 라면밖에 없어요.

ep 04. 칼국수

 햄버거라는 것은 동네 빵집에서 파는 모닝빵 사이에 양상추나 함바그 스테이크가 들어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중학생 때 반장 선거에 당선된 친구가 반에 돌린 햄버거로 첫 인스턴트를 맛보았고, 피자 역시 식빵에 케찹과 옥수수콘, 피망과 함께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들어간 것이 피자인 줄로만 알았던 그다음 학기 반장선거에 당선되었던 친구 덕에 천상의 맛을 느끼게 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이 세상,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음식들은 당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이는 어머니셨고, 덕분에 나는 인스턴트와는 정말로 거리가 멀었던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특식(인스턴트)이라 함은 매주 일요일 아침. 요리사로 변신하는 아버지가 끓여주시는 라면. 그것이 전부였다. 아직도 나의 아버지는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말씀하시곤 한다.


 "얘가 지금까지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게 내가 끓여준 짜파게티라고 한다니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셔서 어머니가 병간호를 가셨던 그때 아버지는 나와 어린 나의 동생의 끼니를 책임지셔야 했고, 급하게 짜파게티 면을 잘게 부숴 끓인 후 진 밥을 넣고 죽처럼 비벼 숟가락으로 퍼먹게 해 주셨다. 천상의 맛이었다. 아직도 그 짜파게티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고쳐보자면 '지금까지 먹은 짜파게티 중에 그게 제일 맛있는 짜파게티였다.'


 어린 시절 (라)면이 당기는 나와 동생에게 잔치국수와 칼국수를 만들어주셨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금방 해줄게"


  육수를 내고 고명을 볶는 등. 어린 나에게 그 '금방'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특히나 잔치국수보다 칼국수를 만들어 주시는 날에는 면을 써는 시간까지.. 기다림은 배가 됐다. 그렇지만 인내의 열매는 달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과는 당연히 라면을 가뿐히 이기는 맛이었다. 이때부터 나에게 칼국수는 합법적인 일탈이었다. 밥도 아닌 것이 인스턴트도 아닌. 그 경계를 미묘하게 오가는 합법적인 일탈.



 정말 알고 먹을수록 재미있는 음식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칼국수라고 생각한다.  


 칼국수 투어를 했었다. 칼국수에는 무수히 많은 계파들이 존재한다. 해물 칼국수, 닭 칼국수, 팥 칼국수, 들깨 칼국수, 황태 칼국수 등. 그중에서도 사골 칼국수가 가장 뼈대 있는 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칼국수들 중에서 무시할 수 없는 곳들 중 한 곳인 강원도. 이 곳의 정말 터프하고 거친 장칼국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소위 안동 스타일에 진한 사골 육수에 끓여내는 칼국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고, 그런 칼국수 집들이 많다. 내오는 스타일도 2개를 시키면 각 그릇에 나오는 집이 있는가 반면에 큰 냄비 혹은 대접에 2인분을 같이 담아 내오는 집도 있다.

 

 칼국수에 있어서는 육수로 스타일이 나뉘기도 하지만 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처음부터 같이 넣어 끓여주는 누른 국수와 면을 따로 삶아 국물을 끼얹어 내주는 건진 국수 스타일이 있다. 나는 누른 국수를 좋아한다. 면의 풀기가 국물에 베어 나와 국물이 탁해지며 끈적해지는 깔끔한 느낌과는 거리가 먼.


 무튼 서울에 사는 나는 혜화동에서 성북동 일대의 칼국수들을 좋아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사랑했던 집부터 시작해 무수히 많은 집들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사골 육수를 사용하는 이 일대의 칼국수들이 맛이 좋다. 일설에 의하면 이 일대의 칼국수집은 한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와서 차린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일대의 칼국수집들을 떠올리자면 칼국수도 생각이 나지만 단연 먼저 떠오르는 건 수육이다.(비싸서 자주 먹지는 못한다...) 이 동네의 칼국수를 먹기 위해 한참 기웃거리던 그 시절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상호명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이 일대 한 집에서는 소믈리에들이 새로운 와인이 나오면 이 집에서 수육을 주문해 테이스팅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칼국수로 나름의 역사가 있는 낙원상가에서 충무로 일대. 성북동보다는 급(?)은 떨어지겠지만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칼국수부터 바지락, 닭을 사용하는 칼국수까지 정말 착한 가격들로 성북동보다 더 부담 없이 칼국수를 즐길 수 있다.

7월 무더위 속 이열치열을 외치며 먹었던 육칼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꼽자면 정말 수많은 계파 중 완전 사파 중 사파로 꼽을 수 있는 문배동 육칼. 육개장 칼국수. 정말 창의적인 칼국수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이 집은 칼국수집이라기엔 육개장의 퀄리티가 상당하다. 이 집을 가면 나는 육칼이 아닌 육개장을 주문하는데 그럼 면이 조금 나오고 공깃밥이 나온다. 면을 먼저 푹 적셔 즐긴 후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마무리하면 더할 나위가 없다. 면 역시도 만만치 않다. 양념이 다 된 칼국수 면을 끓여 내어 준다. 맛이 있을 수밖에.


  한 가지 슬픈 점이 있다면 참 이렇게 맛있고 재미있는 칼국수에 대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점 그것만으로 만족하기 어려운 음식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 칼국수 한 그릇이 아무리 맛있고 울림이 있더라도 우리는 '사이드' 메뉴를 찾게 된다. 가장 흔한 만두부터 시작해 불고기, 수육 등. 


그런 음식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칼국수를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애석하기도 하다. 이 음식의 한계가 온 것일까 싶어서.


 사실 정파, 사파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맛이 가장 우선인 것을. 앞으로도 칼국수 시장에 더 많은 계파들 등장할 가능성은 무한하고 그 도전들이 칼국수에 발전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이번 주 주말에는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려보고 싶다.


"오랜만에 간단한 칼국수 한 그릇 만들어 먹는 건 어때요?"



+) 위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전주의 베테랑 칼국수는 칼국수만으로 빌딩 몇 채를 샀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이제는 줄을 서서 먹는 곳이 되었고 그에 맞춰 주차장이 넓어졌지만 이제 다시 찾고 싶지 않은 맛을 갖게 되었다.  

지난 달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 찾아간 '칼수 명궁'

+) 최근 회사에서 마케팅을 진행한 영화 <군산>에서 등장한 칼국수집에 방문을 했더랬다. 나는 그곳을 '칼수 명궁'이라 칭하기로 했다. 바지락 칼국수인데 마지막에 계란을 풀어 더 끓여 내는 것이 깔끔한 듯 텁텁한 듯 맛이 아주 좋았다. 노부부가 운영을 하시다 힘이 드시다며 일산에 살고 있는 딸네 집에 올라가시며 다른 딸이 이어 장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장님께 <군산> 영화를 보셨냐고 여쭤보았는데, 안 그래도 보러 가야 하는데 바빠서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다. 단골 어르신 분들은 노부부가 끓여내던 것보다는 깊은 맛이 부족하다고 하시는 것을 엿들었다. 정말 이기적인 영업시간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맛을 보는 순간 이기적이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 칼국수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역시 칼로 썬 면이 아닐까. 요즘 기계로 썰어내는 곳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그곳들은 상호명을 바꿔야 한다. 기계 국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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