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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주 Jan 07. 2019

구워만 먹어도 맛있는 걸 굳이? (上)

ep 05. 곱창전골(上)

 먹는 것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유독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태어남과 동시에 인간은 먹기 시작하는 것을. 이렇게 합리화를 시키며 다시 나의 유년시절로 돌아가 본다.


 내 생일날 아침은 어머니의 미역국과 손수 만들어주시는 수수팥떡(이건 만으로 10살까지 직접 해주셨으며, 나는 카스텔라 빵가루에 묻힌 것을 더 좋아했다.)이었고, 저녁은 아버지가 퇴근하신 후 밖에서 사주시는 메뉴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초등학생 시절 언젠가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외식메뉴는 단 하나였다.(고2 생일 단 한 번을 제외하고서는) 소곱창구이.

내 10대 생일의 저녁을 책임졌던 곳

 30대가 된 오늘날 언제 어디서든 소곱창을 먹을 때면 나는 항상 생일이 된 기분이랄까. 무조건 구이로 먹었다. 나름 동네에서 뼈대 있는 소곱창구이 가게였다. 구워서 기름이 그득한. 곱이 가득 찬. 곱창. 그리고 서비스로 조금 제공되는 생간. 계절에 맞춰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땐 따뜻하게 제공되는 콩나물국. 그리고 마지막 버터를 곁들인 볶음밥까지. 더할 나위 없었다. YES!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그 가게에서 판매되던 '곱창전골'을 쳐다보시곤 했다. 언젠가 당연하다는 듯 곱창구이를 시키는 나에게 넌지시 '곱창전골은 어때?'라고 어필하시던 적이 있었지만. 그 어필이 받아들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구워만 먹어도 맛있는 걸 굳이?'


곱창전골에 대한 생각이었다. 구워만 먹어도 더할 나위 없는 소곱창에. 왜? 갖은양념과 야채를 넣고 국물에 빠트려 끓이는 건지. 곱창을 먹는 순간만큼은 다른 무언가로 배를 채워 곱창을 덜 먹게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곱창전골에 눈을 뜬 건 20살이 되고 나서였다.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의 용돈을 벌어 쓰면서부터 곱창구이의 가격이란. 학창 시절 친구들이 입고 다니던 노스페이스 700 패딩의 가격을 보고 용돈을 몇 달을 모아야 살 수 있을지 계산하던 그때의 충격. 사회 초년생이 첫차를 뽑고 싶어 알아봤을 때 받았던 금액의 충격. 연애 끝에 결혼 준비를 하며 신혼집의 전세 금액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같은 레벨이라고 생각된다.


 맛있는 곱창을 그래도 즐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나마 조금 더 낮은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곱창전골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먹게 된 곱창전골은.


 갖은양념과 곱창의 조화로움, 곱창에 야채를 곁들일 수 있는 다채로움, 그리고 무엇보다 국물. 끓는 동안 걸쭉할 정도로 곱창에서 빠져나온 곱들 이 국물에 퍼져 은은한 곱창의 향과 함께 내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주 안주로는 정말 더할 나위 없었다는 것.


 이렇게 시작된 곱창전골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아버지와 곱창구이 대신 곱창전골을 시키는 내가 되었다.(참이슬 후레쉬는 기본 옵션)


 그 후 나는 맛있는 곱창전골들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다음편에 계속)


 1) 고2 생일 때는 아버지께서 특별한 날인데 매번 곱창을 사주시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자고 하셨다. 나는 곱창이 좋았지만. 완강한 아버지 덕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나는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었고, 집에 돌아와서 곱창 생각을 했다.


2) 곱창으로 생일 파티를 하던 시절 이전의 저녁 메뉴는 경양식집의 후추가 잔뜩 뿌려진 오뚜기 스프와 함박스테이크였다.


3) 나는 결국 용돈을 모으지 못했고, 노스페이스 700은 부모님의 협찬을 받아 일명 교복으로 불리는 등골 브레이커 패딩을 2006년에 입게 되었더랫다.


4) 곱창구이보다 곱창전골이 싼 줄 알고 시작했지만. 알고 보니 더 비싼 것이 수두루 빽빽하다.


5) 내가 어렸을 때 곱창전골에 대한 맛을 몰랐던 가장 큰 이유는 소주를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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