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이라는 터널을
여러 차원으로 관통하면서
여러 순간들의 속도와
기억의 관성
기록의 중력
기운의 균형
등의 영향을 받고
누구의 누군가
누군가의 누구
누군가의 어제까지 알던 사람
누군가의 이제부터 알게 될 사람
등의 여러 순간적인 역할에 중력하며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기억하지도 못할
그러나 무의식에 자취를 남기는
모든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
어린시절부터 노출된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의 향연 속에
일시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업무 페르소나를 장착하지만
사회가 요구할만 한 최소의
“예의”를 지킬 정도이지
우리는 모두 역할에 빠진,
혹은 역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연기자들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도 아니다.
가식.
은 자신의 가식적 모습을
가식적이라 인지하는 자들의
자의식이지, 가식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힘든 와중에서도
예의하려는 어떤 특정한
관습적 얼굴을
굳이 가식이라 정의해야 한다면
그래도 좋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가식을 존경한다.
어떻게든 상황을 나쁘지 않게 유지하려는
누군가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가식은
없다. 아니, 가식은
인간 가면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