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 안에 있는 그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사랑을 사랑한다
창 밖의 거미가
한창 먹이를 꽁꽁 거미줄로 싸매고 있다.
방충망을 여는 방식으로
그의 작업을 방해하니
먹이를 놔두고는
저 멀리 가서는
자기도 죽은 자신의 먹이보다
더 죽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한다.
곧 겨울이 온다.
저 해충을
에프킬라의 도움을 받아
내 눈 앞에서 없애야 하는지
아니면
자연이 데려갈 때까지
그냥 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는 없는 방식으로
겨울이 오든,
과는 무관하게
현재를 살아내는 저들의 삶이
나네들의 삶과 어찌
다를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침투할 법한
온도가
나를 센티멘탈하게 만든다.
감성적으로 만든다.
월급이 올라서
보다 더 열심히 뭔가를
하려고 하고 있는 나에게
그냥 시키는 것만 제대로 부탁하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한다.
결국 돈이 오르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과
비례하는 개념보다는
햇수에 비례하는
사회의 일정 퍼센테이지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는 방식으로
잉여자보다는
참여자로 존재하고 싶지만,
일에 한해서는
튀는 행동은 지양해야 하고
그렇다고 업무를 덜 하는 건 용서가 되지 않는
어느 즈음에,
나는 내 사생활을 어느 정도
영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일을 제외하면
그래서
나는
주말에 방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일 뿐인 것이어야 하는가.
단지 주말은 쉬는 존재일 뿐이어야 하는가.
뭐 이런 일련의 생각과 함께
가을이 찾아온다.
아,
겨울이 찾아온다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은 있지만
'좋은 사람'은 꽤 오류가 다분한
정의였다.
나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있겠지만
'나쁜 사람'은 꽤 이미
있는 지도 몰랐다.
특별한 부정적 상황에
개입되지 않고
좋은 내용만 나누는
사이들 사이에서는
충만한 사랑에 대한 개념을
경험하곤 했다.
성별을 떠나서
사랑이라는 호르몬이 보호하는
어떤 종류의 개념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경쟁하고 싶지 않다.
그대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고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사람이라도
데려가도 좋다.
나보다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가슴은 아리지만
흔쾌히 보내줄 수 있다.
아름다운 추억 없는 사람이 없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이 없고,
사랑 안 해본 사람이 없고,
상처 안 받아 본 사람이 없고,
그리하여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고
혼자 앓는 고민이 있지만
타인의 고민에는 발벗고 나서서
해결해주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아주 드물게 그러나
어쩌면 아주 자주,
사랑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한다.
부정적 경험도 물론 하지만,
그리하여 한 해 더 살았다는
경험치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물론 덜 사랑에 빠지고
더 현실에 빠지는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이 살리는
다른 '자신'이 분명 있었다.
그냥 사랑한다고
그냥 만나보자고
박력있게 나서고 싶다가도
그런 박력이 통하는 개념에서
살지 않는 사람과
친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제해야 하는 로맨티시즘이 있었다.
그 부분이 아쉽지만,
그리하여 그렇게 다 표현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더 있는 것도 아니었고
결국 내 인생에 남아있는 것은
'본인'의 경험
'본인'의 기억
'본인'에 의해서나
존재하는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비밀인 방식으로
그 비밀은
모두에게 있다는 것에서
그 '보편성'은 많은 특별함을 상쇄하는 것 같다.
하루일 뿐이다.
일과 사람의 개입이 없다고 해서
내 인생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더 내 인생도 아닌 개념 어느 즈음에
유유히 어느 동네를 걸어다니며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있는
개인들 중 한 명이
'나'일 뿐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