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선을 넘어봐야
선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선을 넘어서
잃은 사람의 자리는
다음에 그 선을 지킬 수 있어서
지킬 수 있었던 사람으로
대체되곤 하는 방식으로
첫 사랑의
그 감당할 수 없는 빈자리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소용이 없을지언정
그리하여 현재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덜 중요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괜찮다는 말을
읊조려야 하면
안 괜찮다는 것을
알지만
일단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 위로해야 할 때가
있었고
막연한
공허함에
업무를 주입시키다 보면
아침은 안전히
저녁이 되었고,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또 다른 하루가
오늘도 살아봐라고
버티고 있는 듯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주인공에게
같은 하루가
매번
주어지는 것마냥
일터로 향하는
시공간의 그
공허함은
어쩌면
누군가 곁에 있겠다고
결심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집이 그립다.
주문한 상품이 배송되는 집 말고
마음이 향해도 되는
집.
엄마 아빠가
있는 집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일 끝나고
달려가도 되는 곳
그렇게 달려가면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는
수줍은 웃음이 보장되는
어느 관념적 시공간.
그 공간의 실물이
배송지임과 동시에
그대가 있어야 할 곳이라면
좋겠는.
관념은 변질되고
기억도 후퇴하고
마음도 예전같지 않겠지만
확실한 건
오늘 만나기로 한 당신을
오늘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의 가장 본질적인 기적이라는 것을.
선을 넘을 수 있지.
그래서 떠난다면
보내줘야 하고
그래서 곁에 있겠다면
선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은 방식으로
산다는 건.
거미줄의 그것만큼 정교하고
거미가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숙명 만큼
운명적인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