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시작하며 이런저런 공부를 하다 내가 크게 깨달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시간’이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시간.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였다. 어느 날 나는 내가 가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자동차 사고로 죽을뻔한 고비를 넘겼던 2024년 12월 16일 그때 이후부터. 나는, 무엇이 나를 유일무이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했다.
1)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았는가?
2) 나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했는가?
3) 나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라 느끼는가?
4) 나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담하게 살아온 적이 있는가?
5) 부모님이나 주변 친구, 직장동료, 배우자의 바람대로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살아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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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킷리스트〉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있다.
“고대 이집트인은 죽음에 대해 멋진 믿음을 가지고 있던 거 아나? 영혼이 하늘에 가면 말이야.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다네.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졌다고 하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대답해보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정말 내가 살아오며 40세 가까이 되도록 내 인생에 진정한 기쁨을 찾았는지 말이다. 또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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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곰탕집이 있다고 해보자.
뼈를 전기솥에 넣고 서너 시간 고아서 맛을 낸 곰탕집이 있고, 꼬박 하루를 장작불로 고아 맛을 낸 곰탕집이 있다. 재료가 똑같다면 곰탕집에 투여된 시간의 차이가 진정성의 농도일 것이다.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바쁘더라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오늘 삶이 끝나는 사람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은 전 재산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 모두는 시간 앞에서 유한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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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시간의 양이 목숨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내 목숨의 일부를 내어주고 있다는 의미다.
자기계발서에서는 시간이 돈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시간을 내가 가진 목숨과 피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내 목숨의 일부를 그대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나의 목숨과 피가 사용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와 함께 하고 내 목숨이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어느 것에 더 목숨과 피를 사용했느냐의 결과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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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워하는 시간보다 사랑하는 시간을, 잊으려하는 시간보다 그리워하는 시간을 더 늘리려한다.
나를위한 즐거움과 기쁨, 유익함, 돈 주고 살 수 없는 더 귀한 가치를 구매하는 데 내 목숨을 지불하려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기 위해 목숨을 분산하지 않겠다고.
정말 소중한 사람, 귀한 사람,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나의 목숨과 피를 내어주리라.
그렇게 점점 더 진실해지고 깊어지기를 원한다.
그래야 내 목숨의 피가 흩어지지 않고 집약되고 축적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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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라는 것은 정말인 순간과 상황에만 쓸 수 있다.
정말이라는 것은 진심일 때만 쓸 수 있다.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 일 순위로 시간을 내주어야 한다.
그렇게 사랑하기 위해서 분산되지 않는 목숨의 몰입이 필요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그 사람에게 시간을 쓰고 있다면 그 사람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는 나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만큼은 진짜가 없고, 그 시간만큼 정말인 것은 없으니까.
시간이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