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서말고 AI로 PT (Personal Training) 받기
스스로 돌아보면 어떤 경우에 자신의 생각이 발전했다고 느껴지는가?
재미있는 영상과 이야기로 가득 찬 세상 같지만, 실상은 일시적인 충족일 뿐이다. 반복된 일과 속에서 보고 듣는 것은 매일 비슷하다. 무척 흥미로운(exciting) 것 같지만, 실은 매우 지루한(dull) 하루 속에서 우리의 생각은 정체된다. 아니, 생각의 힘은 오히려 퇴보하는 중이다. 독일의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Manfred Spitzer)는 디지털 기기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뇌의 해마(기억 저장소) 기능이 저하되고 인지 기능이 감퇴하는 현상을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라고 명명했다.
코칭 현장에서도 그 디지털 치매의 징후를 목격한다. 일반적인 면접 준비는 예상 질문에 답을 달고, 그것을 암기하여 말하는 연습이 기본이다. (물론 필자는 다르게 코칭한다.) 답변이 준비되면 줄글로 외우든 키워드로 외우든 ‘암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필자는 조금 특별한 방법을 사용한다. 동그라미 안에 몇 개의 단어를 적고(반드시 단어 개수는 3개 이하, 한 단어는 4글자 이하), 그것을 그림처럼 떠올리게 하는 ‘맵핑(Mapping)’ 훈련이다. 합격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우지 않아서 좋았다”는 후기를 남기는 것도 바로 이 연습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 “코치님, 떠오르지가 않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10년 넘게 같은 트레이닝을 해오면서 전에는 듣지 못했던 피드백이다. 멤버들의 연상력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손 안의 휴대폰이 등장하며 전화번호 암기 능력을 잃어버렸듯, 이제는 ‘유느님’이 보여주는 영상 속 이미지조차 스스로 떠올리는 능력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스마트폰 세대의 인지 능력 저하는 AI 세대에 이르러 상상력의 위기로 이어진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의 발전이라 정의했다. 그 이야기는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에서 나온다. 인간의 몸에 사자의 머리를 한 구석기 시대 조각상은 호모 사피엔스의 상상력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제 AI가 그 상상력을 대체하려 한다. 유발 하라리는 AI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인간을 조종할 수 있는 미래를 가장 큰 위험으로 지목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AI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는 바로 ‘생각이 없어진’ 인간에 대한 경고다.
AI 시대, 기업은 AI와 협업 능력을 갖춘 인재를 원한다. 여기서 협업 능력이란 단순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이 아니다. AGI(범용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복잡한 명령어 입력조차 필요 없어질 것이다. AI와의 진정한 협업 역량을 갖춘 인재는 A, B, C 등급이 아닌 S급(Super) 인재다. 이 슈퍼 인재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남다른 시선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수천 년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리더십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즉, 기업이 미래를 맡기고 싶은 인재상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동일하다는 뜻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간단한 한 줄의 질문에도 화면 가득 정답을 쏟아내는 AI의 시대 속에서, 그런 ‘생각하는 인재’가 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생각의 발전은 투입(Input), 산출(Output), 피드백(Feedback)의 모형을 따른다. 입력이 많아야 산출도 많아지듯, 많이 보고 듣고 읽는 작업은 필수다. (그런데 우리는 독서와 점점 멀어진다.) 부족한 생각을 탓하지 않고 더 발전시켜 주는 스승의 피드백은 인생의 큰 선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기회조차 점점 잃어간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우리를 생각하지 않게 만들어 멍청하게 만들던 AI가, 역설적으로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 수도 있다.
“AI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유능한 교사가 하듯이 학생들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어야 했다. 우리는 프롬프트를 계속 수정해서 AI가 소크라테스 문답법을 기반으로 유도 질문을 던지면서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 방식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게 했다.
(중략) 나는 앞으로 칸미고 사례를 교육 분야의 대표적인 AI 플랫폼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발전하는 공간으로, 또한 타당한 근거로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인간 코치와 개인 교사를 많이 필요로 한다. AI는 맞춤형 학습이나 세계적인 수준의 강의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들의 진입 장벽을 낮춰주고 있다.”
— 살만 칸, 《나는 AI와 공부한다》 중에서
저자 살만 칸은 오픈AI와 협업하여 ‘칸미고(Khanmigo)’라는 AI 튜터를 개발해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위의 책을 읽으며 ‘성인들을 위한 칸미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필자가 고안한 것이 바로 ‘AI와 200자 이내로 대화하는 방식’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직접 해보면 알 것이다.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지금부터 너와 200자 이내로 주고받듯 대화하려 해. 내게 정답을 말하지 말고 내가 그 정답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해 줘. 이게 이 채팅방의 규칙이야.”
위와 같이 입력하고 대화를 시작해 보라. 깜짝 놀랄 것이다. IQ 140의 친절한 교사가 지치지도 않고 나의 생각 발전을 돕는다. 말 그대로 뇌를 위한 PT(Personal Training)다.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하다. 금방 정답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을 참고,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AI와 대화하며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 맵핑(Mapping)연습이 궁금한 분은 필자의 브런치 북 '구구맵'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