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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진심이 먼저 닿는 순간

by 지미니

이민자로서 처음 aged care 현장에서 일할 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영어였다.

완벽하게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내 말이 어르신에게 불편하게 들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진심은 꼭 언어로만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



어떤 어르신은

청력이 약해서 큰 소리에도 반응이 없다.

또 어떤 분은 치매로 인해

질문을 반복하거나 낯선 사람을 불편해하신다.


그럴 때 나는 말 대신

눈을 맞추고, 숨을 고르고,

아주 천천히 손을 내민다.


어깨를 살짝 짚거나,

손등에 담요를 덮어주며

“You’re okay” 하고 조용히 미소 지을 때,

말은 없지만 그분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한다.

지금 내 마음이 닿았구나.



말보다 먼저 닿는 건,

내가 이 일을 대하는 속도와 태도다.


급하게 행동하지 않고,

기다리고, 맞춰주고,

“이분이 당황하지 않도록”

“내가 무례해지지 않도록”

매 순간 나를 다잡는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어느 날 갑자기 눈빛 하나로

‘신뢰’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말이 없어도 서로가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이다.

돌봄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일이라는 걸,

현장은 매일 새롭게 가르쳐준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소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


단어 없이도,

표정과 손끝, 숨결과 시선으로

얼마든지 진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나의 한 줄


가장 깊은 소통은
가장 조용한 순간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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