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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pr 17. 2024

어느 개의 죽음 / 장 그르니에 / 1957

사람들이 얼굴 밖으로 서로를 저울질하고 경제적 이익만을 찾으려 양심을 후벼 파는 어두운 시대에, 장 그르니에가 관찰하는 타이오의 무구하고 담담한 모습을 통해서 인간성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오히려 동물이라서 더욱 직관적이고 육체적인 대담함과 솔직함을 발견하게 된다. 값진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찾아내기 어려운 우리들의 일상은 어쩌면, 자신에게 꼬리를 흔들며 스스로 다가오는 어느 길 잃은 개의 애틋한 눈동자에서 더욱 필연성을 강요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수께끼 같고 침묵과도 같은 철학자의 언어 속에서 한 껏 숙연해지는 일상적 명상과 잠언. 마치 자신은 자유로움을 추구하며 성가신 방해마저도 거부할 것처럼 느슨한 시각으로 주변을 헤아리며 무심함을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멀리 가출한 개를 찾으려 소리치는 외침 속,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개가 귀찮도록 자신에게 산책을 요구했던 기억을 회고해 보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맺어진 인연이라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끌어안으려고 하는 사랑과 애착의 본질을 느낄 수 있다.


타이오가 있음으로써 발생되는 어려움들도 오히려 그에게 애착을 느끼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완벽한 약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절대적 강자의 태도에 대해서 과거, 중세, 그리고 이 시대는 무엇을 요구하는가. 자신이 버려질지 혹은 집단 돌팔매를 당할지 또는 입양이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동물들의 현실적 자세와 인간의 비현실적 삶 사이의 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시켜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중병을 얻은 자신의 개에게, 주사를 놓는 의사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두 손으로 가만히 그 얼굴을 감싸 쥐었을 때조차도 평소처럼 편안하게 눈을 감으며 기꺼이 자신을 내맡기는 그 생명체에게서 우리는 과연 그 동물들보다 '가득한' 삶을 살고 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작가의 사색은, 인간이라는 의식적 존재가 권력이라는 힘을 얻고 나서 기꺼이 동물이라는 약자에 대해 그것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조차 없으리라는 나약함에 대하여 사색하도록 천천히 이야기한다.  


개에게는 사람들이 그러듯이 뒤편에 가려진 세계들 속에 숨을 방법이 없다. 개들은 무대 장치가 어떤지 주어진 배역이 무엇인지 프롬프터 박스가 어디 있는지 상관없이 늘 무대 앞으로 나선다.


내 속에 숨어있는 진정 작은 한 줄기 빛 - 적어도 사랑스러운 개 한 마리라면 나를 조건 없이 위로해 주고 적어도 아무런 장벽 없이 다가와 주리라는 따스함 쪽으로 나를 떠미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 그르니에의 무심함인가, 혹은 타이요의 무구함인가.


대가 없이 다가오는 것들을 생각하라. 

한 치 앞을 전혀 모르고 무조건 나아가는 천진함을 기억하라.

자신의 목숨조차도 기꺼이 내맡기려는 신뢰와 충직함을 존중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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