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새, 그리고 커다란 상처. 자기만의 언어로 노래하다가 나뭇가지 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사람들은 그 새가 죽고 난 뒤, 희미하게 노래하던 소리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독특하면서도 섬세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기품이 있다. 사람들은 노래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다. 그림은 붓 가는 대로 흘러가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이미지가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활개를 친다.
나는 그녀의 글을 통해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웹 서핑으로 그녀의 사진을 참 많이 보았지만, 그 눈빛은 오히려 목소리와 어조를 통해서 인식된다. 그것은 깊고 창백한 응시, 내면의 상처를 간직한 새의 내밀한 목소리다. 우리가 기억하는 여성 최초의 목소리. 즉, 버지니아 울프는 대명사가 된다.
우리는 그녀의 두서없는 글과 흔들리는 시선을 통해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분주하게 따라갈 수 있다. 그녀가 내세우는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곧 그녀 자신이다. 혼란스러운 그녀의 의식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온몸으로 감지하려는 육체적인 반응이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센서를 작동시키는 그녀의 글은 그래서 오히려 육감적이다. 쉴 새 없이 노래하는 새처럼 흘러가는 작가의 숨 가쁜 필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을 상징하는 스스로를 극복하고 저항하려는 몸부림처럼 그 글을 읽는 이의 피부를 쓰다듬게 한다. 그녀의 글은 그녀의 몸이다. 그녀는 여러 명작을 글로 남겼지만, 런던 거리 헤매기는 그녀의 신체로 감지하는 이 세상에 대한 독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독서는 세상을 등지고 연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활기찬 야외산책에 가깝다. 그는 대로에서 터벅터벅 걷고 공기가 너무 희박해서 숨 쉬기 힘들 때까지 점점 더 높이 언덕을 오른다. 그에게 독서는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녀는 걷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전 뿌리 박힌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억을 제거하고 그와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면 해소되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낯선 곳을 찾아 헤매고 새로운 상황을 기꺼이 맞닥뜨리는 그녀의 도전에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는 철을 따라 이동하는 새의 본능을 연상케 한다.
달아나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다. 겨울날 거리를 헤매는 것은 가장 큰 모험이다
그녀는 연필을 사기 위해서 런던 거리를 헤맨다고 하지만, 실은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일상을 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시시콜콜하게 흘러가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생을 갈구했던 것일까.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에세이의 소재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평범한 현상들이지만, 그녀가 그러한 것들에 집중하고 매몰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키우던 개, 그녀가 머물던 서재, 혹은 자잘한 병치레 같은 일상의 마찰들을 통해서 그녀 스스로 아직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녀의 죽음은 혼란스러운 전쟁의 참상과 부조리한 현대사의 격변을 상징하는 넌센스의 비웃음 같기도 하다. 사물의 이치와 정서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그녀 특유의 혜안도 비통한 그녀의 죽음 앞에서는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희극 정신은 무엇 때문인지 언제인지 모르게 갑자기 즉흥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그 나름의 논평을 한다. 그 정신이 표출하는 감정을 찬찬히 생각하고 분석해 보면, 겉으로는 희극적인 것이 근본적으로는 비극적이고 입술에 미소가 감도는 동안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음을 틀림없이 알게 된다.
그녀는 웃음으로 각색된 희극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기위해서 필요한 희극은 아니었을까.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새를 기리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