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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Apr 06. 2024

조선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 임유경 / 2014

역사의 아침 / 임유경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철저하게 차단되고 가려졌던 조선 여인들의 삶을 엿본다. 역사에서 금단의 영역으로 영원히 남는 것은 없었나 보다. 여인들은 자기만의 방 안에서 남몰래 글을 썼다. 겉으로 드러내기 힘든 일상의 시간들은 꾹꾹 눌리고 압축되어 가슴 깊은 곳에 쌓인다. 그나마 글을 배울 수 있었던 여인들만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그 얼마나 드물고 귀한 흔적들인가


우리는 혜경궁 홍씨의 유려한 기록을 통하여, 그 시대 여인들의 생활상이 얼마나 기구하고 극적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알게 된 바 있다. 그나마 궁중여인들의 삶이었기에 그 정도였으니, 일반 서민이나 하층민 여인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글을 모르고 고생만 하다가 사라진 수많은 여인들의 삶은 이제 찾을 수도, 되짚어 볼 수도 없다. 그저 막연하게 짐작할 뿐이다.


이 책에서는 하층민에서부터 왕실 가족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여인들의 삶이 기록으로 생생하게 드러난다. 임유경 교수는 이렇게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조선시대 여인네들의 삶을 하나씩 들추어낸다. 성리학의 강력한 이념이 지배하던 시기의 양가댁 여성들은 철저하게 삼종지도를 좇는다. 남편은 과거에 급제하여 집안을 일으켜야 하므로 여성들은 헌신적으로 남편의 공부를 돕는다. 기생의 삶을 살던 여인들은 특유의 예술적 감각과 능력을 발휘해 남자들도 하기 힘든 성취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여인네들은 자결하여 억울함을 알리는 것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보다도 더 원한이 깊었던 여인들은 처절한 복수극을 이루어내어 한 많은 인생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여성들의 삶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모든 서사들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글 속에 스며든 삶에 대한 처절한 인내와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내게 실제 덕이 있다면 남들이 비록 알아주지 않아도 무슨 손해리오. 내게 실제 덕이 없다면 헛된 명예가 있은들 무슨 보탬이 되리오. 여기 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돌이라 한들 옥에게 아무 손해가 없습니다. 여기 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옥이라 한들 돌에게는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강정일당이 남편에게 보낸 편지 中)
제가 만일 병이 나서 일을 나가지 못하거나, 나갔는데도 전복을 따지 못하면 그 독촉하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때때로 그들이 모아둔 것을 파는 곳으로 갑니다. 그것을 사서 관가에 보냅니다. 팔고 사는 것은 다 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지만 지금 제 형편으로는 사지 않을 수 없으니 가격을 비싸게 매기더라도 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파산하였습니다. 전복 하나를 캐는 근심을 제 자신에게 그치지만 그것을 사야 하는 화는 가족 모두에게 미쳐 제대로 살 수 없을 지경입니다. (김춘택이 쓴 방납의 폐단을 고하는 해녀이야기 中)
여섯째를 통해 네가 술을 많이 마시고 얼굴이 수척해졌다는 말을 들었다. 걱정이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너는 부모의 마음을 유념하면서 안정하고 병 조리를 잘하여라. 부모가 기뻐하면 그게 효인 것이다. 학문을 하여 천하의 그릇이 되려무나. -무신년 2월 2일, 언문으로는 너의 믿음을 얻지 못할까 하여 한문으로 써 보낸다- (안동 장씨가 맏아들 이휘일에게 쓴 편지 中)
하늘은 왜 아버지께 아들이 없게 만들고 저를 여자로 태어나게 하셨을까요. 손님이 저녁에 찾아오면 저는 아버지가 함께 주무실 친구가 생긴 것이니 너무 기뻐 조석을 정성껏 차립니다. 이제 저는 곧 죽을 텐데, 누가 다시 이처럼 해드릴까요. 아버지의 애끓는 슬픔으로 제가 관에 들어가는 것을 보신다면 반드시 큰 병이 나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상도 다 마치지 못하여 후에 군자들에게 말썽거리가 될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제가 죽은 다음날 미동 고모 댁으로 가셔서 몸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김자념이 열여덟 살에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아버지에게 남긴 편지 中)


깊은 곳에 묻혀있던 상자를 여는 기분이다. 역사적 자료는 이렇게 일목요연한 테마를 기준으로 정리되어 세상에 나올 때 빛을 발한다. 어둡고 깊은 곳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독자들은 역사적 기록을 통하여 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을 접함으로써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금 우리의 처지를 확인하면서 한 걸음 더 성장할 기회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하층민의 삶 속에서도 특별한 분야에 종사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살았지만, 드러내고 말하지 못했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다려진다. 다양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여, 이 세상에 선보이는 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관련 포스팅>

김금원 호동서락기 - https://brunch.co.kr/@silverback/151

남평조씨 병자일기 / 풍양조씨 자기록 - https://brunch.co.kr/@silverback/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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