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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22. 2021

병자일기(1637), 자기록(1792)

'나의시간'출판, 조선시대여성 기록문시리즈

병자일기(1637)  /  자기록(1792) /

  수백 년 전에 쓰인 조선시대 여성들의 구어체 한글 기록물들을 접하게 되었다. 하나는 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시북 남이웅의 부인인 남평 조씨가 기록한 '숭정병자일기(崇禎丙子日記, 1637년)'이고, 하나는 김기화의 부인이었던 풍양 조씨의 '자기록(自記錄,1792년)'이다. 두 일기를 작성한 필자들은 모두 조선시대 양반가 여성들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왕가나 궁궐생활이 아닌 일상적인 사람들의 생활상을 기록하였다는 점과 한글로 기록을 남겨놓았기 점이 주목할만하다.



 

 우선 '병자일기(丙子日記)'의 경우에는 인조 때 병자호란을 겪은 전란의 상황을 시작으로 해서, 남이웅의 가족들이 피난을 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고초와 가정의 대소사,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부인 조씨에 의하여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청의 군대가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인조가 남한상성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부터 일기가 시작되는데, 전쟁의 긴박하고 초조한 상황이 초반부터 그려지고 있다. 소현세자와 함께 청 나라 심양으로 끌려간 남편을 대신하여 집안의 노비들과 물품들을 이끌고 충청도 지역으로 떠돌며 피난 생황을 이어간 갖가지 일상의 이야기들이 400년 전의 우리나라의 풍경을 그대로 눈 앞에서 보듯 세밀하게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특이했던 것은 조씨의 인생사라고 할 것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벼슬 집안이라고는 하나, 집안의 모든 아들들을 잃고 늙어서 남편마저 청에 볼모로 잡혀가 홀로 집안을 꾸려나가야 하는 처지가 구구절절하게 표현이 되었다. 노비들을 다루는 자잘한 일들과 생각들, 당시에 쓰였던 수많은 음식들과 각종 물건들의 이름도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제사를 지내는 법도와 가족 친지들과의 예절, 날씨와 기후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문장을 써 내려가는 능력과 그 꼼꼼함을 보건대 당시 양반가 여성들의 학식과 문재(文才) 또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눈이 많이 왔다. 난추가 아파서 거기서 묵었다. 비록 소경인 종이지만 어리석지 않아서 정성으로 우리 일행을 대접하니 종이라고 하는 것이 곳곳에 우연하지를 않다 -병자년 12월 19일-
맑고 가끔 흐렸다. 망남이가 심양으로 갈 물건들을 가지고 갔다. 버선 하나 크기만한 사탕과 떡을 당작에 봉하고 박산 한 당작, 곶감 가려서 한 접 싸고, 말린 꿩 뜯어서 두 마리, 조기 두 뭇 반, 민어 세 마리, 대구 한 마리, 곶감 또 한 접, 천초 일곱 되, 판관 보내시는 담배 열 덩이, 모두 합하여 자루 셋, 보자기 하나하고 여러 양식 하여 네 필에 싣고 가기에ㅣ 애남이가 정조제물을 싣고 함께 갔다. -정축년 12월 21일-
오늘이 별좌(둘째아들을 말함)의 생일이라 다례를 지내니 무엇을 흠향할까 기유년에 낳아서 경사롭던 일이 한 꿈이 될 줄 어찌 알았으리오. 어찌 이십오 년을 내 자식으로 빌려 있던 모자의 은정을 하루아침에 없이 하였는가. 아이고 아이고 푸른 하늘아 푸른 하늘아 할 따름이다. 슬프다. 나마저 죽은 뒤에는 누가 잔이나마 정성껏 부어놓을까. 강진사 모부인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니, 아들을 두고 죽으시니 오죽이나 좋을 팔자랴. -기묘년 11월 8일-


  내용의 전체적인 흐름은, 병자호란의 발발과 피난의 시작, 남편의 귀향을 기다리는 과정과 아들들이 모두 죽고 홀로 남겨진 처지에 대한 한탄 등이 이어지고 후반부에는 남편이 돌아와 피난생활이 마무리되고, 서울로 복귀하여 이루어지는 가정생활에 대한 기록들이다. 전체적으로 4년 정도의 분량이며, 특히 남편이었던 남이웅이 궁궐을 출입하면서 기록된 부분들은 실제 조선왕조실록의 사건들과 정확하게 일치하여, 이 일기가 단순히 한 개인의 일상 기록이 아닌, 역사적인 사건들을 검증하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보인다. 노 부인의 기록에 대한 집착과 주변과 사건을 인식하는 자세, 그리고 글을 풀어내는 능력 등을 고려할 때 문학적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아주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자기록(自記錄)'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 후기 정조 임금 시대 풍양조씨 일가,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을 스스로 기록한 자전(自傳)이다. 어려서 어머니와 남동생들을 잃고, 젊어서 시집을 온 이후에도 뜻하지 않게 남편을 잃게 된 여성의 철저한 회고이다. 글 자체는 남편을 잃은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쓰였으며, 자기의 성장과정과 어렸을 때의 가정환경, 부모님과 형제들에 대한 갖가기 풍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내용의 후반부는 모두 남편이 병을 얻는 과정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남편을 잃은 심적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집필을 하였으니 글의 방향 또한 비극적이고 한스럽다. 글을 읽는 내내 비통함과 쓰라림에 가슴이 먹먹해오고는 하였다.


  이 작품 또한 양반가 여성의 수준 높은 문장력과 뛰어난 표현력을 느끼게 되는데, 병자일기를 기록한 남평조씨의 작품이 원숙하고 연륜이 느껴지는 노년의 절도 있고 꼼꼼하며 간결한 필체라면, 풍양조씨의 글은 스무 살이라는 나이의 젊고 혈기가 넘치는 글이면서도, 동시에 풍요한 학식과 교양이 몸에 배어 들어 어휘와 서술이 가볍지 않아 비통한 자신의 심정을 드러내는 데에 더욱 극적이고 강렬하다. 


남편의 사람됨을 그윽이 살펴보니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으며 부드럽고 밝고 어질고 효성스럽고 부드럽고 단아하며 경계가 밝으면서 신중하고 관대하고 화평하여 일찍이 경박함을 보지 못하니 마음속으로 몹시 다행하게 여겼다.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행실을 닦아 부박함과 거리가 머니 이 더욱 다행한 일이었다.


  아들이 중요하였던 시대. 여자는 무조건 삼종(三從)의 도를 지녀야 했으며, 출가외인으로 자신이 자란 집을 떠나 남편의 가정에 뼈를 묻고 살아야 했던 시기였다. 병자일기도 마찬가지이고 자기록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남자들이 죽음을 당하여 가문의 대가 끊기는 것을 염려하고 고통스러워하였던 것이다. 자기록의 풍양조씨는 본인의 교양과 학식과 예의법도가 남달랐음에도 글 전체를 통하여 자신이 여자로 태어난 것을 죄로 여기고 있으며, 가부장제의 유교적 질서에 부합하지 못했던 자신의 어머니(태어났던 아들들이 모두 죽고 계속 아들을 낳기 위해서 출산하다가 사망)와 자기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든 토로하고 항변하기 위해서 글을 남겼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글의 서두에서 필자가 자신의 겪었던 기구한 일들을 고백하고 후세에 알도록 하기 위해서 기록한다고 적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여성은 어쩌면 당시 그러한 유교적 질서의 틀 안에서 여성이 떠안아야 하는 희생과 운명적 고통을 고발하는 동시에, 훗날 후손들에 의해서 이해를 받고 여성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을 은근히 기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작품의 문학적 표현들인데, 아무래도 이 가문 자체가 혜경궁 홍씨를 비롯한 당시 정조 임금 시대의 양반가 혈통과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마치 한중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될 정도로 글에 힘이 있고 문장의 모든 마침에 자신의 슬픔을 집어삼키고 절제하는 것 같은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당시 양반가 규수들이 받았던 교육과 예절들이 글 하나하나에 그 품격과 무게를 가지고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예상과는 다르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말과 글을 유려하게 구사하여 그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가족들, 그중에서도 남편과 마주 앉아서 서로 예의를 갖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마치 대사처럼 인용되어 있어서 당시 그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의 인품과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마력을 느끼게 된다.


남편이 나의 어리석고 둔함을 잘 알지 못하여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이르곤 했다. "그대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우애가 있어 내 깊이 믿고 귀히 여기오. 앞으로도 우리 어머니의 특별한 자애와 슬프고 괴로운 심사를 생각해서 효성으로 공경하고 삼가서 내가 깊이 믿는 뜻을 저버리지 마오." 내가 그 도타운 효심에 마음속으로 탄복하여 답하였다. "그대의 칭찬하는 말씀은 사실과 달라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비록 용렬하나 어찌 어머니의 지극하신 자애와 그대의 지극한 효성을 저버리겠습니까?" 남편이 또 말하기를 "아내는 이른바 내자라 하는데 그대 소견이 밝음을 내가 알고 있으니 모름지기 나의 불찰을 바로잡아서 빠진 곳을 메워주고 빠뜨린 것을 챙겨주는 책임을 맡아주는 것이 어떠하오?" 내가 웃으며 답하였다. "이렇듯 위로함은 정이 아닙니다 하물며 무식하고 어두운 여자의 소견에 어찌 남자보다 나은 슬기가 있어 그대를 가르치리이까?" 남편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깊이 믿고 심혈을 다해 대접하거늘 그대는 문득 나를 소홀히 대하기를 이렇듯 심히 하는 것이오. 사람이 허물이 없기 쉽지 않고 이미 있으면 그대 밝히 알 것이니 알면서 이르지 않는 것은 정이 아니오. 나는 서로 마음을 비추어 가리는 것이 없고자 하나 그대는 나를 무심하게 대접하니 어찌 애달프지 않으리오." 내가 답하기를 "그대가 비록 곡진하나 아내가 남편을 받들어 중히 여김 같으리까. 세상에 무심한 것이 사내이라 아내가 살아서는 사랑함이 대체로 한 가지나 불행히 상처한 뒤에는 새것을 좋아하고 옛것을 버려, 예 사람 잊어버리기를 티끌같이 하니 그대가 비록 지금은 곡진하나 혹 그런 일을 당하면 어찌 홀로 그렇지 않겠으며 능히 의리를 지켜 믿음을 지키리까?" 남편이 웃으면서 답하기를 "이는 사정이 마지못함이지요. 사나이 수절은 없고, 만일 종자로서 자식이 없다면 더욱 부득이 어쩌지 못하는 바일 것이오. 그러나 좋은 말을 할 것이지 어찌 그 같은 말을 하오." 내가 대답하기를 "우연히 하는 것이지요. 좀 전에 매사 일깨우라 하시나 혹 좁은 소견으로나 말씀드리는 바이지만 믿고 귀담아듣지 않으면 어찌 무익하지 않으리오." 남편이 답하기를 "어찌 그럴 리가 있겠소. 그러면 스스로 듣고자 하겠소?" 하기에 내가 혹 아는 바를 숨기지 않고 잘못된 도를 일깨워 서로의 의견을 좇았다.


  나는 수백 년을 뛰어넘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한중록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쁨과 설렘이 독서를 하는 내내 온몸을 휘감았다. 나처럼 망상을 잘하고 상상력이 제멋대로인 사람은 이러한 작품들을 접할 때 머릿속이 즐겁다. 온갖 장면을 내 마음대로 그려볼 수 있고 사람들을 창조할 수 있으며, 목소리와 냄새, 온도와 질감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나처럼 호기심 많고, 무엇이든 궁금해하고 의심 많고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많이 접해야 한다. 그러면 평소 갖고 있던 허황된 망상은 역사적 진실들로 하나씩 채워지고, 나이가 들면서 생긴 고집과 아집은 교양 있는 필자들의 경이로운 필력과 고급스러운 단어로 정화되고 교화된다. 



  이 작품들은 '나의시간' 이라는 출판사에서 만들어졌으며, 여성 실기 문학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이 시리즈의 일환으로 '여성, 오래전 꿈꾸다'라는 조선시대 여성 기행문집이 하나 더 출간되었다). 오랫동안 잘 보존된 자료들이 후손들을 통해 해석, 정리하였음에 감사할 일이다. 이 작품들이 초판 1쇄만 만들어지고 절판되었음에 안타깝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역자로 참여하였던 박경신/김경미 두 분께 경의를 표한다. 


  모쪼록 아주 오래전, 비극 속에서 살다가 정성스럽게 기록을 남기고 떠난 여성들의 넋을 위로하며 감상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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