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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back Jun 24. 2021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 2016

   미국 산업안전의 선구자인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노동자 1명이 일터에서 재해로 사망에 이르기까지에는, 동일한 원인으로 경상을 입는 사람이 29명 발생하며, 더불어 동일한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뻔한 사람이 300명이 발생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또한 미국의 범죄학자인 제임스윌슨(James Wilson)과 조지켈링(George Kelling)의 연구에 의하면 '자동차 2대를 구석진 골목에 나란히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해두고 한쪽의 차 유리만 깨뜨려 놓은 채 방치하면, 일주일 후 유리가 멀쩡한 차의 모습은 깨끗한 상태 그대로 있지만 유리가 깨어진 채로 주차되어 있던 차는 폐차 직전의 상태로 훼손된다'는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실험 결과를 인용하여 '깨진 유리창이론'을 제시한다.


  3000년 이상 인권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게 지속되던 예부터, 특히 여성들의 인권은 남성들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무시되었고, 290년 전부터 인간의 인권의식이라는 것이 태동하기 시작하여 프랑스혁명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근 10년, 드디어 우리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접점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에 조남주 작가에 의해서 탄생한다. PD수첩 등의 TV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전문적인 일을 하다가 출산과 육아 때문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가 큰 배경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조남주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였을까.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아온 77년생 남자의 입장에서 읽어본 이 소설의 느낌을 꼭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이 작품은 1982년도에 태어난 우리나라의 흔하고 평범한 여성을 상징하는 김지영이라는 주인공의 일상을 조명한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서 당하는 차별에 집중되어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학창생활을 거쳐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기까지 일어나는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통해서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주인공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와 직장동료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고, 그들의 어머니 세대의 여성들 또한 관습과 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시대의 굴레에 얽혀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며 악습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려고 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여자가 감내해야하는 발언의 한계성과 무력함이라든지 여자라는 존재가 갖는 차별적 여건 속에서, 일종의 타인의 입을 빌려 말을 하는 '빙의'의 모습을 소재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 하나의 생명이 어른이 되기까지 겪는 상황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꼼꼼한 주석들과 자료의 출처가 내러티브의 연결고리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남성'과 연관된 차별 때문에 발생하는 주요 사건이 30개 정도 등장한다. 주요 내용만 나열해보자면 - 1.시댁에서음식하기 / 2.남동생의분유 / 3.어머니중절수술 / 4.어머니의공장취직 / 5.짝궁의괴롭힘 / 6.학교남녀번호순서 / 7.주민번호의1과2 / 8.남녀중학교복장 / 9.바바리맨 / 10.라면 / 11.지시봉 / 12.학원미행 / 13.교대선택조언 / 14.엄마아빠노력비율7:3 / 15.씹다버린껌 / 16.남자선호기업설문조사 / 17.택시기사 / 18.성희롱면접관 / 19.넌그냥시집이나가 / 20.직장커피타기 / 21.된장녀 / 22.회식자리 / 23.기획팀남자선발 / 24.호주제 / 25.고모님의말 / 26.지하철모욕 / 27.산부인과핑크색옷 / 28.할어비지의사 / 29.화장실몰카 / 30.공원벤치커피 - 등의 순서로 흘러간다. 주인공 어머니의 어린 시절부터 주인공이 성장하고 학교를 다니고, 졸업 후 취직하고 결혼 후 퇴사한 다음 육아를 하기까지 그야말로 우리 생활의 도처에 공기처럼 차별과 악습의 성벽(性壁)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이뿐이랴.

 

  물론 책을 읽는 각자의 기준과 잣대에 따라 위의 사건들이 일부 남성이나 일부 기득권 계층의 문제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 무엇이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여자이건 남자이건 이 책을 읽는 우리 모두는 성장하면서 어머니라는 여성의 존재가 가부장제도에 의해서 차별을 받고 살았고 참고 희생하면서 우리를 키워왔다는 것을 목격했기에 계속 씁쓸함을 삼키며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학원에서 귀가할 때 만난 아주머니가 외친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작품 속에서 김지영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부서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자 동기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효율성과 합리성만을 내세우는 회사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며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 과연 행복할지 의문을 던진다. 나는 곰곰이, 이 사회가 몰두하는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너무나도 짧은 기간 속에 이루어진 경제성장과 역사의 변혁 속에서 우리는 엄청난 물질적 편의와 이익을 얻었지만 과연 그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인격적이었는지, 그래서 인간에게 행복감도 안겨주었는지, 만약 그렇지만은 않다면 그 대신 무엇을 희생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수컷'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되짚어 본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극도로 많은 생산을 달성하며, 그 순전한 이익의 회수를 더욱 효율적이고 원초적으로 추구하는 데에 남성이 그토록 적합했는지, 또한 남성이 주도해서 만들어낸 것들과 남성이 소비하고 회전시키는 것들, 그것과 관련한 여러 문명의 산물과 발명품들이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류를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었는지'가 아닌,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화의 격변기에 흡수한 효율과 기술진보의 달콤함이 우리 안에서 제대로 발효되고 단단한 영양소가 되었는지 이제는 발을 멈추고 진단해보아야 한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문득, 10년 전 EBS에서 기획 방송된 다큐멘터리 '마더쇼크' 시리즈가 떠올랐다. 이 방송에서는 가부장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야 했던 어머니들의 딸들이 동일한 악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물려받은 구시대적 모성을 되풀이해야 하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혹은 오빠나 남동생에 비해서 항상 뒤로 밀려나 있으면서도 가정의 일은 도맡아서 해야 했고, 오히려 남성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딸들이, 이후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서도 자기가 낳은 아들이라는 '남성'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남성들 때문에 차별받아야 했던 악몽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아주 섬세하고 정교하게 분석되었다. 아들 선호가 지배적이었던 문화, 여자라면 무조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돌봐야만 했던 어머니들의 편향된 가치관과 딸에 대한 증오가, 딸들에게 상처로 남아서 다시 또 그 이후 세대들에게 분노와 스트레스로 전이되고 여성들 자신은 자존감과 성취감에 제약을 받아 스스로 곪아 들어가고 위축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여성이라는 존재에게 씌워졌던 폐쇄적 테두리가 가정과 사회와 문화 전반뿐만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에게도 생채기를 만들었으며, 이제 구시대의 악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새로운 여성 세대들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이름으로 그 테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느껴졌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거론하는 '여성문제'라는 것이 대두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 문제를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의사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듯,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외침을 일종의 사회적 문제로 규정하고 메스를 들어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것 또한 남성우월주위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씌워진다. 왜냐하면, 사회의 여러 영향력 있는 단체들과 기관들과 두뇌들이 현재 남성 위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곧, 남성이 여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소리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는 해결하려고 들면 안 된다. 누군가 나서서 상대편을 치료하고 진단하려 들면 안 된다. 따지고 보면 '여성문제'라는 단어 자체도 틀린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얽혀서 생기는 문제가 어찌 '여성문제'라는 것으로 대상화될 수 있겠는가. 다분히 남성적인 시각의 용어인 것이다. 오히려 '인권문제'라든지 '평등문제' 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배려하고 보듬어주고 치료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방향이 생기면 대상화가 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여성이 내는 목소리를 남성이 듣고 허락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이 스스로 권익을 높이고 목소리를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주고,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악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선의의 굴레를 굴리는 과감한 절차가 필요하다. 즉, 여성들에게 힘과 권력이 생겨야 한다는 말이다. 남성이 마련해주어서 생기는 힘이 아닌, 여성 스스로가 형성한 힘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박완서 선생은 생전에 여성의 주도적 역할, 특히 어머니의 가치관을 강조한 바 있다. 참혹한 역사의 물살에서 희생되고 고통받았으면서도 남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을 형성하고 일어서서 후손들의 귀감이 되었던 여러 여성 지식인들의 조언을 우리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남녀평등은 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삶 속에서 실천으로 획득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봐요.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그간 남자들에게서 받은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깊이 각성하고 자기 아들이 또 다른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지 않도록 키워야만 해요. 그런데 무지한 어머니들은 이런 것을 자각하거나 실천하지 못하고 자기 아들에게 아들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강조하여 오히려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데 일조하고 나아가서는 그로 인해 복수의 쾌감을 맛보기도 하지요 - 박완서의 말-


  아주 오랫동안 누적된 시간의 지층 속에서 형성된 문화는 우리에게 알게모르게 많은 힘을 미친다. 여성들 스스로도 어렸을 때에는 사회 곳곳에 만연한 시스템의 부당함과 차별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살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가부장 문화의 굴레에 들씌워져서 본인도 모르게 남아선호 사상의 일원이 되어가는 경우도 많다. 딸을 낳아서 새롭게 교육하고 개선시키면서 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을 받고 살았으니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서 고생을 시키지 말고 누리면서 살게하겠다는 것이다. 관습과 전통이라는 것은 이렇게 무섭고 거대한 장벽이다. 한 개인은 이렇게 무서운 현실 속에서 맞설 힘이 없다. 온 몸에 수 많은 가지를 뿌리내리고 있는 이러한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종양덩어리는 단순히 칼로 도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전신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면서 온 몸의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시간을 갖고 개선, 개혁해나가야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러한 개혁의 출발선에서 울려퍼진 인상적인 신호탄이라고 생각한다.

 


  92년생 김지영과 02년생 김지영도 앞으로도 계속 태어나고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가 기술의 진보와 효율, 이익과 물질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만 진화된다면 그들의 병은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배금주의와 물질 만능주의, 외모 지상주의 같은 극단의 풍조를 양산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남성 위주의 효용적 문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효율과 이익이라는 문명의 기차에 인간성의 회복과 행복이라는 연료를 넣어야 한다. 이 거대한 사회가 추구하는 첨예한 문명의 이기 속에서, 서로 고유한 성을 가진 두 존재가 성(性)만을 대상화해서 싸우고 있기보다는 인류가 스스로 세운, 극단의 편리와 기술진보로만 나아가려고 하는 문명의 방향을 조율하고 그 거대한 체계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그 존재가치와 고유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도록 견제하고, 곱씹고, 되돌아보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대화하는 과정이 더욱더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충분한 토론의 장이 마련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칼로 무를 자르듯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대화나 논쟁, 공부와 이해 등의 절차를 거쳐서 다듬어지고 발전되고 진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면서 보니 폐지함에 초등 수학문제집이 잔뜩 있었다. 모두 아내가 푼 것들이다. 이제껏 그 많은 문제집들을 버리며 나는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아내의 귀엽고 특이한 취미 정도로 넘길 수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거슬렸다. 아내는 수학 영재였다. 학창 시절 내내 온갖 수학경시대회를 휩쓸었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열두 번의 중간,기말고사 모두 수학 만점이었고, 학력고사에서는 안타깝게 수학을 한 문제 틀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초등 수학 문제집을 그렇게 풀어 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를 묻자 아내는 재밌어서, 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당신 수준에 그게 뭐가 재밌니? 유치하기만 하지." "재밌어. 엄청 재밌어. 지금 내 뜻대로 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거든"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가장으로서, 그리고 오로지 여성들에게만 둘러싸여 자란 대한민국의 한 남성으로서, 또한 이 작품에 깊이 공감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느낀 여러 감정의 소고를 마친다.




[이미지 출처]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020) 중 일부

https://bit.ly/3xLFh7p

https://bit.ly/3zSquK1


EBS 다큐프라임 마더쇼크 - 모성의 대물림 중 일부 

https://bit.ly/3vRbc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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