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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Feb 28. 2024

충동적으로 행동한 하루

솔직한 감정에 귀 기울이기, 프리힐리아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익숙한 듯 날씨부터 체크했다. '맑음'. 전날의 환상적인 날씨를 떠올리며, 오늘도 그 맑음일 거라는 제멋대로 희망을 가져 평소에 입지도 않는 짧은 원피스를 입었다.


불편함, 햇빛 노출 등 복합적 이유로 안 좋아했지만, 마음 구석 어딘가에 로망처럼 품고 있어 챙겨 왔던 옷 한 벌이다. 정확한 심리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혼자'이기에 한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나는 무릎 아래로 오는 긴 원피스가 아닌 이상 안 입었을 것이다.


색다른 옷을 착용하니 괜스레 설렜다. 어색함에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여행을 새로 시작하는 듯 둥둥 떠있는 기분과 함께


오늘의 목적지는, 프리힐리아나. 말라가에서 버스를 한 번 환승해야만 갈 수 있는, 스페인 남부 지방의 작은 언덕 마을이다.


버스 내에서 본 네르하 바다


경찰 검문도 받고, 바깥에 조깅하는 할아버지도 보고, 리듬 타는 옆자리 청년의 운율에 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아름다운 바닷가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프리힐리아나 다음의 목적지이자, 환승지인 네르하. 해안마을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말피가 떠오를 만큼, 적당한 파도와 예쁜 물빛에 비치는 윤슬까지 완벽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제한된 버스 시간에 혹시 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마을 모두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서.


알사 버스(외관)와 보노버스(가격표)


프리힐리아나 가는 길 Info.

말라가 버스터미널에서 네르하 가는 알사 버스 탑승 후, 내려서 프리힐리아나 행 보노 버스를 타면 된다. 알사 버스는 온라인으로 티켓 구매가 가능하며, 터미널에서 카드로 구입이 가능하지만, 프리힐리아나 행 버스는 기사로부터 현금으로 구매해야 한다. 현금이 없을 시 티켓 구매가 불가하고 택시는 가격 차가 10배 정도 나니 유로 현금을 꼭 챙겨가길.


시간표는 온라인으로 미리 확인을 추천하지만, 언제든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는 길에 두 번 체크 해야하고, 특히 언덕 위에서는 막차가 일찍 끊길 수 있기에 도착과 동시에 내려갈 버스 시간부터 확인해야 한다. 또한, 일요일에는 운행하는 버스 수가 상당히 적기 때문에 방문을 추천하지 않는다.


프리힐리아나 마을


하차 후 방향을 잃고 헤매다 눈앞에 보이는 언덕길 하나를 따라 올라갔다. 사람들이 가는 곳을 쫓아가려 했는데, 명확한 관광지가 없는 이곳은 모두가 내리면 각자 갈길을 걸었다.


이런 게 참 좋다. 누군가의 시선을 모방하지만 않고 의도하지 않아도 내가 더 자세히 이곳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프리힐리아나 산 뷰


지붕과 산이 함께 보이는 나만의 예쁜 뷰를 찾아 사진을 찍으며 걷던 때, 우연히 뷰 맛집 식당을 찾았다. 위에서 테라스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힐끗 보기만 해도 아름다웠다.


오픈 준비를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후퇴. 하지만 근처 경치 좋은 곳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또 전화하다 결국 오픈 직후 들어왔다.


여행에선 늘 전통음식을 먹는다는 철칙 때문에 메뉴를 꼭 미리 알아보고 가는데, 사전 정보도 없이 뷰 하나만 위에서 바라보고 선정한 식당은 처음이다. 구글 리뷰로 친절도, 맛 등 정보를 필히 참고하는, 식당 선정에 있어 꽤나 까다로운 여행자였던 나에겐 이번엔 그 무엇도 알아보지 않았다는 건 파격적인 일.


하지만 선택 후 조금의 걱정도 불편함도 없었고, 그 순간 벌어지는 일들에 집중했다. 어쩌면 나는 충동성이 꽤나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식당 샹그리아와 연어요리


드넓게 펼쳐진 풍경에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자리. 이 역시도 평소라면 앉지 않을 자리다. 남들은 이게 로망일지 모르겠지만, 유럽의 햇살을 두려워하는 나에겐 노출이 상당한 옷을 입고 그곳에 앉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햇살이 필요했고, 마음에 들었던 뷰를 놓칠 수 없어 본능적으로 택한 자리였다.


깊은 생각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이 잠정적 선택들은 나름대로 좋았다. 내적으로 들떠있음이 강하게 느껴질 만큼. 샹그리아도 메인 음식도 모두 맛있었고, 조금의 심리적 불편감이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하얀 마을


든든한 배를 안고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워낙 작은 곳인 데다 곳곳에 관광객이 흩어져있는지라 안전하게 느껴져 지도 없이 마음이 끌리는 대로 갔다. 정해진 건 단 하나, 버스 시간이다. 조용함으로 채워진 마을을 천천히 음미했다.


절벽에 세워진 건물들


예전에 말라가 근교 중 또 다른 하얀 벽 마을 미하스를 다녀왔던지라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프리힐리아나는 또 다른 매력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교하자면 더 산속 마을의 느낌. 같은 하얀 언덕 마을이지만 미하스는 당나귀가있는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면, 여긴 산세와 주황지붕이 인상 깊은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두 곳 모두 어딘가 허름하고 휑하면서도 빛에 빛나는 흰 벽이 아름다운 마을이란 점에선 어느 정도 같다.


알메리아 정도 왔을 때만 해도 막막한 감이 있었다. 즐거움보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컸기 때문에. 혼자 여행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슬슬 할 때쯤, 충동적인 결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혼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충동이라는 게 개인적 성향과 잘 맞지 않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즐거웠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에서 나와의 진실된 대화가 오간 느낌이랄까. 그 안에서 강박 속에 감추고 있던 나를 조금 마주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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