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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Mar 06. 2024

엄마 미안, 여기 너무 좋다

바닷가 발코니에서 전하는 마음의 사과, 네르하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곤, 없는 시간을 기어코 쥐어 짜내어 이어가는 여행. 나에게 2시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주어졌다. 이번 목적지는 바닷가 마을, 네르하.


교통 시간까지 고려하며 하루에 두 근교지 여행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다.


정보도 대충 훑어보기만 한 네르하였던지라,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바닷가로 향하는 것 뿐이었다. 목적지 결정하는데에 시간을 쓰는 것 조차 시간도 아깝고. 일단 구글지도를 잠시 훑고는, 어디선가 들어본 유럽의 발코니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 


유럽의 발코니 광장


이 길이 맞나 의심이 될 만큼 사람이 없는 거리를 따라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느는 듯 하더니, 누가봐도 마을 사람들이 모일 법한 큰 광장이 눈앞에 등장했다. 드넓은 광장 중앙에 서 주변을 둘러보다 눈앞에 보이는 바다로 돌진했다.


유럽의 발코니


'와.....'

순간 말을 잃었다. 기대를 전혀 안 해서였을까? 발코니 넘어로 펼쳐지는 풍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발코니가 바다 위에 위치해있어 바다 품 안에 안긴 기분도 들고. 빛깔도 아름답고, 파도는 높지만 잔잔해보이고.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절벽까지, 모든 것의 조화가 완벽했다. 청각적인 것까지도. 사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 틈을 뚫고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이탈리아 아말피 해변가가 생각나는, 나의 인생 바다 마을과 맞먹을 만큼의 바다였다.


유럽의 발코니 바다 앞 젤라또 가게


사람의 심리는 다 똑같은 가 보다. 젤라또가 생각 나 찾아온 바다 앞 가게는 이미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돈 뿐만 아니라 시간도 갖고 있지 않나. 그래서 줄을 서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굳이 긴 쪽으로. 왜? 조금이라도 사람을 더 끌어당긴 가게가 눈곱만큼이라도 더 맛있지 않을까라는 괜한 사람의 심리 때문이다. 결국 일처리 속도에 따른 차이란 걸 알았고, 이내 줄이 비슷해졌지만, 나름 일종의 여행하며 생긴 선택 방식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저 외로운 한 개인의 재미를 찾기 위한 의미부여일뿐이니까.


민트 초코와 잣 젤라또를 손에 쥐고 바다 앞으로 다시 향하는 길. 한 손이 묶이니 바람에 나부끼는 짧은 원피스에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급히 걸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 입은 이 원피스가 프리힐리아나에서부터 그냥 방해만 한다.


바다 앞에서


'아잇, 치마를 왜 입어가지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치마를 애써 눌러내리며 발코니에 서 억지로 젤라또를 먹으려 했지만, 더이상 어찌할 수 없어 결국 등지고 벤치에 앉았다.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나의 낭만을 산산조각처럼 부쉈다. 낭만을 위해 들고온 젤라또가 눈에 보이던 바다도, 시원하게 들려오던 파도 소리도 모두 지워버렸다.


벤치에 앉으니 변주로 이어지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배경 음악으로 삼으며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즐겼다. 아무렴 어때. 뒤를 돌아도 나는 여전히 바다 앞인 걸. 시각을 차단하니 다른 곳이 트이더라.


발코니 가는 길


움직이는 반경은 단 몇 백 미터 이내. 그런데도 난 이곳이 왜 유난히 좋은 걸까.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끌렸다.무심하게 등 지고 떠나기엔 아까워 다시 발코니 한켠부터 시작해 다른 한 쪽 끝까지 샅샅이 둘러봤다. 그리고 그 시선 끝, 절벽 사이에 놓인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위에서 바라보며 마지막을 즐겼다.


버스 시간까지 조금의 시간이 남아 잠시 넋을 놓고 보고 있던 그때,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겐 스페인은 인상이 아주 좋지는 않은 곳이다. 이 인상을 심어준 여행을 나도 함께 했기에 그 마음이 이해가 더욱 간다.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도 스페인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다니진 않았을거니까.


그런 엄마와 말라가 여행을 할 때 이곳에 왔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잠시 했다. 특이한 경험을 위해 비교적 한국인이 많이 오는 프리힐리아나-네르하 코스를 두고, 미하스를 택했던 3년전 모녀여행. 보편성을 따랐더라면 이 멋있는 풍경을 함께 봤을텐데. 괜히 미안했다. 혼자 좋은 거 보고 즐기는 기분이라. 미하스에서 얻은 재미난 경험도 있고, 또 이곳에 막상 왔더라도 어떨지 모르는 것이지만, 내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괜스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발코니 아래 뷰


그래서 바다를 한참 바라보며 혼잣말을 계속 머릿속에 되내였다.

'엄마 미안, 바다가 너무 예쁘다.'


그리곤 며칠 뒤 전화로 마음을 전했다.

"좋은 곳 알아두었으니 여길 다시 오자. 스페인 예쁜 곳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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