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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Mar 13. 2024

나의 첫 호스텔 친구, 알마

말을 건네니 친구가 생겼다

우리가 호스텔에서 머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저렴한 가격과 친구 사귀기.


나의 경우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호기심에 호스텔에 머물기 시작했지만, 여행을 거듭하며 나는 혼자가 더 편하단 걸 깨닫고 단순히 경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호스텔을 이용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새 친구와의 만남에 마음은 열려있다. 전형적인 E와 I의 경계에 맞닿아 있는 사람의 회로답게.


호스텔도 각자의 성향이 있다. 그 성향에 따라 방문하는 여행자의 성향도 다르다.


출처 : 북킹닷컴


액티비티나 게스트 모임이 많은 호스텔의 경우엔 활발하고 유쾌한 E의 사람들이 많은 반면,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 워킹투어 같은 가벼운 서비스만 제공하는 호스텔에는 말 수가 적은 I 같은 사람들이 다수다.


나는 주로 혼자 돌아다니는 걸 선호하기에 후자에 가까운 호스텔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호스텔을 거쳐왔지만 누군가와 함께 동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도, 나도 서로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게 대다수. 어차피 며칠 머물지 않고 금방 떠나니 보고 싶었던 거에나 집중하자는 마인드가 컸다. 하지만 이번엔 한 지역에서 오래 머무는 여행인 만큼 이번엔 달라지고 싶었다. 함께 동행을 하는 게 목표였다기보다, 대화를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끔 막 체크인 후 짐을 질질 끌며 들어오는 나에게 말을 걸던 몇몇이 있었는데, 여행을 거듭하다 보니 은연중에 그들의 스몰토크 레퍼토리들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어디서 왔는지, 며칠 머무는지,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지 등등, 질문하는 사람은 바뀌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던 그 첫 대화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던 난 이제 먼저 말을 건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안녕?"

낮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어디선가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 곧 문이 열린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을 위에서 바라보다 자신의 침대를 찾기 전부터 나는 최대한 환한 미소로 그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이층침대에 양반다리 하고 앉아서는 이 방의 터줏대감처럼.


대부분 동양 여자애가 말을 걸어오니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곤 한다. 경우는 세 가지로 나뉜다. 원래 말 수가 적은 편이어서, 동양애라 영어를 얼마나 잘할지 모르고 낯설어서, 영어를 못해서. 


그 속에서 유난히도 적극적인 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알마. 스웨덴에서 왔단다. 인사를 건넨 나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받아주던 미소가 예쁜 친구. 자기 이름 소개할 때부터 스페인어에선 다른 좋은 의미가 있다며 조곤조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밤에 쉬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내일 일정 있어?"

"아니."

"점심 같이 먹을래?"

"좋지!"


갑자기 점심 약속이 생겼다. 처음 외국 친구와 단둘이 먹는 점심에 마치 이성에게 고백을 받은 듯 설렜다. 내가 먼저 다가서 손을 내밀니 누군가가 그에 대한 답을 주기 시작한 것. 원했던 사람 냄새나는 여행은,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옴으로써 출발되는 게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오후 1시, 오전 시간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보내고, 숙소 근처 약속된 브런치 가게에서 만났다.


브런치 가게에서


식당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들. 바리스타로 일했던 알마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지만, 새로운 사실이 쏟아져 나왔던 지라 뇌리에 박혔다.


스웨덴인들은 커피를 사랑해서 하루에 6잔도 더 마신단다. 에스프레소 샷으로 만도 그렇게 마신다고. 반면에 술은 구매하기 어려워서 잘 안 마시고. 또, 한국처럼 아이스커피를 좋아한단다. 추워도 아이스를 먹는다던 알마. 그 말에서 '얼죽아'가 떠올라 괜스레 친숙함이 느껴졌다. 알마가 들려주는 스웨덴의 이야기는 그간 여행을 하며 쌓아왔던 유럽인들의 이미지와 상당히 달랐다.


집 가는 길 젤라또


추로스가 먹고 싶다는 알마를 위해 근처 카페에 가려했으나, 모두 줄 서 있는데 비가 와서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젤라또를 함께 먹었다. 무언가를 살 때마다 그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이 모습까지 원래 친구였던 듯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문화 차이를 떠나 세상 사람 사는 건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다 똑같다.


우린 숙소로 돌아와 밖이 어스름해질 때까지 한참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일은 프라이팬을 사야겠어."

"팬을 산다고? 팬? 요리 팬?"

"응. 요리해 먹으려고."


육류와 해산물이 대부분인 스페인에서 자기에게 맞는 음식을 찾기 힘들다며 프라이팬을 산다는 알마. 최소한의 짐이 포인트인 배낭여행을 하는 친구가 팬을 산다니. 약간의 충격을 안겨준 신선함이었다. 여행 중 팬을 구입하는 건 상상도 못 해봤으니까. 이후에 계속 지니고 다니며 요리해 먹을 계획이란다. 역시 여행 방법엔 정답은 없고, 수백 가지 저마다의 방법이 있다. 


각자 밤을 마무리 짓고 다시 만난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돌아오는 나에게 알마는 또다시 말을 건넸다.

"한국 애들은 다 옷을 너무 잘 입어."

"이거 잠옷이야 사실."

"잠옷도 이렇게 입어?"


자연스레 건네는 스몰토크,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동조하는 옆에 있던 핀란드 친구. 오늘도 대화여는 법을 배웠다. 눈 뜨고 일어나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아침 먹고 들어왔을 뿐이었던지라 갑작스러운 칭찬이 무색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그들의 칭찬이 늘 진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상대의 기분이 좋아지게 시작하는 화법은 배울 가치가 있다.


"안녕. 연락 계속하고, 여행 마지막까지 잘하고!"

"그래. 우리 어디선가 다시 봐."


다른 이야기들이 더 듣고 싶었지만, 이제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할 때가 되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후문

"런던에서 예술 쪽으로 대학 다니고 싶어."

"그렇구나! 나도 예술하는데."


단순히 관심 분야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시간이 흘러 5개월 뒤 우린 런던에서 재회했다. 런던에서 나는 대학원을, 그 친구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다시 이곳에 터를 잡은 것. 심지어 같은 학교를 지원하기까지. 물론, 지금은 각자 원하는 학교에서 잘 공부 중이다. 무엇보다 신기한 인연이라 느낀 건, 저 대화를 나눌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세상은 생각보다 정말 좁고,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다른 나라 친구라서 만날 일이 없다고? 사람 사는 일 모르는 것. 그 친구를 나의 나라에서, 그 친구의 나라에서, 혹은 제3국 어디선가에서 만날 지 누가 알까. 마치 우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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