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스페인인?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 구글맵 열어 아침 식사 장소 정하기.
늘 주변에 평이 좋은 카페에 갔지만, 이번엔 먹고 싶은 특정 메뉴가 있었다.
추로스.
한국인에겐 놀이공원 간식으로 더 익숙한 추로스는, 스페인인들에겐 간식을 떠나 아침식사 메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꾸덕한 초콜릿 (초코라테)에 찍어먹는 걸 어찌 먹나 싶긴 했지만, 이날따라 구미가 당겼다.
출근하는 현지인 외에는 사람을 보기 힘든 허전한 거리를 뚫고 카페를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깨끗한 말라가 거리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아침엔 상쾌한 공기까지.
이곳저곳 둘러보고 싶었지만, 후줄근한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나왔던지라, 미리 봐둔 카페로 곧장 달려왔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찍 다니는 편인데도 이미 이 카페 야외는 사람들로 가득해 당황스러웠다. 거리는 분명 한산했는데. 마지막 빈자리 주변에서 서성이다 자리를 겨우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의 유명한 맛은 무엇일까. 메뉴판도 요구하지 않으면 제공하지 않는 스페인 현지식당들은, 주변 테이블이 곧 내 메뉴판이다. 마음속에 메뉴가 오기 전부터 정해져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둘러본다. 혼자 여행할 때 관찰을 통한 동향 파악은 나에게 일종의 소소한 재미다.
스페인식 샌드위치 보까디요가 주를 이뤘지만, 곳곳에 추로스가 놓여있었다. 나는 줏대 있게 추로스를 주문했다. 여기에 스페인에서 많이 먹는 코르타도까지 함께.
커피를 잘 모르는 나는, 여태껏 스페인에서의 아침은 오렌지 주스와 함께했다. 오렌지만 착즙한 주스가 상당히 저렴하고 맛까지 좋아 굳이 다른 걸 찾을 생각을 못했다. 거기다 아직까지 우유와 에스프레서가 1:1로 섞인 코르타도의 특별함은 모르니, 한번 맛 본 후에는 관심이 다시 생기지는 않았다.
우유가 들어가면 쓴맛이 희석될 줄 알았더니, 얼마나 강한 샷을 넣었길래 에스프레소보다도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 여전히 입에 맞는 걸 찾지 못했지만,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여행할 때만큼은 내 취향보다 누군가를 따라하는 게 나만의 재미이니까.
눅눅한 듯 바삭한 듯 말라비틀어진 이 추로스를 초코레타에 푹 담갔다. 혈당 스파이크가 두려워 끝에만 살짝 담그던 과거의 나는 이제 없다. 꾸덕한 초코가 가득 묻은 빵 한입에 코르타도 한 모금. 달달한 디저트를 먹을 때 아메리카노를 먹는 그 기분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 현지인들이 가정에서 먹는 아침식사와는 물론 거리가 있겠지만, 이또한 그들의 문화 중 하나이지 않나. 서양이라고 모두 빵에 잼만 발라먹지 않는다. 빵도 종류가 여러가지 있고, 그 또한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여행지에서 '현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지라도 존재하는 문화 중 하나를 유사하게나마 경험하는 게 개인적인 여행지를 즐기는, 의미있는 방법이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스페인어에 추로스를 함께 먹으니 이보다 더 스페인스러울 수 없었다. 일종의 노랫말처럼 귀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를 배경으로, 현지식 아침식사, 꽤나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