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로그 Feb 21. 2024

말라가에서 꼭 먹어야 하는 것

현지인 추천 식사, 정어리구이

바닷가를 한창 걷던 중 동행의 연락이 왔다.

"현지인 친구가 소개해 준 맛집이 있는데 가실래요?"

"너무 좋죠!"

"정어리 괜찮아요?"

'정어리..?'


스페인에서 정어리 구이가 유명한지도 몰랐고, 말라가 바닷가에서 이렇게 구워 먹는 건 더욱더 몰랐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면서 모래사장에서 굽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는데, 나름 말라가의 별미란다. 한국에서도 안 먹어본 정어리. 순간 멈칫했지만, 별미라니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가요."

"근데 좀 멀어요. 걸어서 1시간?"

"상관없어요."


현지인이 좋아하는 곳이라면 무조건 달려가는 내가 도보 1시간으로 이 제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여행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 이상을 걷는데 그것쯤이야. 소식가에겐 오히려 소화시키는 시간이라 더 좋다.


숙소에서 재정비를 마치고 나와 동행을 만났다. 사실 이 동행은 이미 발렌시아에서 한차례 만난, 이번 여행에서의 가장 특별한 인연. 우린 그대로 근황을 털어내며 바다를 따라 걸었다.


말라가 바다 노을


대화를 나누고 또 등 뒤로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며 걷다 보니, 지루할 틈 없이 걸었다. 이내 어느덧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또 다른 마을이 나왔다. 말라가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2층 정도 되는 주택으로 가득 찬 마을. 바다를 따라 꽤나 높을 건물이 줄지어 있는 시내와는 상당히 달랐다.


"여기 식당이 있다고요?"

너무 거주지역 같아서 계속 의심을 했다. 바닷가 옆의 분위기 좋은 곳이라는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고, 바다조차 보이지 않았으니까.


출발한 지 1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이내 우린 가고자 하는 식당에 도착했지만, 불은 꺼져있었다.


"아직 안 연건가?

"안 열었다기엔 이제 너무 저녁 시간 아니에요?"

"그렇죠. 여기까지 왔는데 옆 식당이라도 갈까요?"

"좋아요. 여기도 현지인 가득해 보이는데, 갑시다!"


무르익어 가는 노을


먼 곳까지 걸어왔으니 허탕치고 그냥 돌아가기엔 아까웠다. 옆에 열려있는 식당들도 현지인들로 가득해 보여 눈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정어리 한 꼬치 2유로'

눈길을 확 끄는 문구였다. 식사 하나에 10유로 이하는 찾아보기 힘든 유럽에서 줄줄이 꽂혀있는 생선이 2유로라니. 정어리를 먹으러 온 건 맞지만 가격이 이렇게 저렴한지 몰랐다.


정어리 구이, 문어, 그리고 환타.

실패를 대비해 평균은 되는 문어를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스페인에선 놓칠 수 없는 환타까지.


사진이 어두워서 명확하지 못한 관계로, 참고자료와 함꼐


2유로에 걸맞은 비주얼의 정어리가 나왔다. 정직하게 그 메뉴만 올라간 플레이트. 하긴, 이 가격에 무엇을 더 바라는 것도 웃기다.


생선을 그대로 꼬치에 꽂아 굽고, 꼬치를 빼기만 하고 접시에 올려 주었다. 생선 대가리는 물론 뼈까지 먹는 생선 요리인지라 지나치게 정직한 비주얼에 떨떠름했다. 한입 먹어볼 시간. 생전 처음하는 경험에 눈이 질끈 감겼지만 또다른 배움이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한입 먹었다.


조금은 비릿하지만 웬만한 음식을 잘 수용하는 나에겐 괜찮았다. 그냥 꽁치 먹는 느낌. 문제는 침샘이 절로 터질 만큼 자극적인 짠맛이었다. 어둠을 뚫고 보이는 소금 결정을 보니 짠맛의 이유를 대충은 알겠더라.


"소금 뿌리는 거 봐요."

"이러니까 짜지."

야외에 자리를 잡아 생선 굽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다. 꼬치에 정어리를 잔뜩 꽂아 활활 타오르는 불에 꽂아두고 가끔 직원이 와 관리를 하는 방식. 그런데 직원이 소금 뿌리는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소금이 보이면 안 될 거리에서 소금이 함박눈처럼 내리는 게 보일만큼 뿌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건 스페인 소금은 맛있다. 조금 맛을 느끼다가 바로 탄산으로 잠재우는 게 먹는 방법. 우린 이 방식이 익숙해져버린 스페인 여행러들인지라 당연하다는 듯이 먹었다.


정어리 굽는 모습


해가 완전히 저물어 어둑어둑해지자, 멀리 오두막에서 장작 피우던 불이 더 선명해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화려한 장소도, 음식도 아니지만, 기대 없던 야밤의 바닷가 풍경이라 그런지 인상깊었다. 여행을 거듭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시끄럽고 가득 차 있는 도시 삶에 지쳐서인지 나는 이런 소박함이 오히려 좋다.


막차만 아니었으면 더 이 바다를 즐기는 건데. 시간에 쫓겨 서둘러 계산을 하고 자리를 떴다.


정어리 자석


여담으로, 마지막 날 시내에서 돌아다니다 마그넷을 사러 갔는데, 이전엔 없던 정어리 구이 자석이 생겼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때는 있었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겠지. 말라가 관광지가 담긴 마그넷은 이미 지난번에 샀으니, 이번엔 특별히 정어리 자석을 샀다. 그만큼, 이번 말라가에선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다.


이후 누군가 말라가에 간다면, 늘 그들에게 추천하곤 한다. 맛이 그들의 취향이건 아니건, 특별함은 있으니 바닷가에서 정어리 꼭 먹어보라고.

이전 18화 내가 3만보를 걸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