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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Oct 19. 2023

웰컴 투 사하라

잊지 못할 생애 첫 사막, 메르주가

산도, 바다도 아닌, 사막.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

사진으로만 보고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


그리고, 이 여행의 시발점.


8시간 가까이 밤새 페즈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달려와, 마침내 사막의 도시, 메르주가에 도착했다. 동이 트고 버스 창밖의 풍경이 사뭇 달라진 게 보이는 순간부터 마음이 어찌나 설레던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선 차창에 철썩 붙어서 구경하며 왔다.


메르주가 핫산네


도착하자마자 예약해 둔 숙소부터 찾아왔다. 이곳의 숙소 시스템은 독특하다. 여행객 대부분이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하기에 아침부터 체크인을 받고, 실제 잠은 베이스캠프에서 자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짐을 빼는 방식이다. 잠시 몸을 뉘일 공간을 제공해주는 격이다.


메르주가 풍경


잠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사막에 위치한 마을이라 그런지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마을 건물이 모두 사막모래 빛을 띠는 게 가상공간에 들어온 듯했다. 어릴 적 하던 게임 속의 공간 같았달까? 현실감이 없었다.


사막 투어 Info.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모로코 사하라 사막 내 숙소는 알리네와 핫산네. 음식, 사진, 숙소 환경 등 여러 면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갖추고 있어 인기가 많다. 우리가 간 곳은 핫산네. 오전, 오후 출발이 있는데, 우린 해가 넘어갈 때쯤 출발해서 비교적 시원하게 사막을 즐길 수 있도록 오후 출발 투어로 선택했다.


숙소는 작년 사막 모래 태풍으로 피해를 입었던 베이스캠프를 새로 지은 지라 굉장히 깔끔하고 정착해서 살아도 될 만큼 시설이 잘 갖춰진 편이다. 또, 음식은 모로코 전통음식이 한식과 비슷한 결이 있어서인지 한국인 입맛에 딱. 또, 부족함 없이 제공된다. 마지막으로, 사진은 낙타를 타고 갈 때도 찍어주고, 일몰 스팟에서도 찍어주니 충분히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퀄리티는 복불복. 하지만, 복이 우세한 편. 배경이 우선 워낙 멋있기 때문에 잘 나오는 사진이 상당히 많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마을에서 베이스캠프까지, 설렘이 가득한 시간

오후 4시가 지나자 출발시각이 다가오니 '질레바'라는 전통의상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옷은 사실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재미다. 두건은 스태프가 직접 둘러주었다. 전통의상의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인 이 두건은 꽤나 유용했다. 작은 모래 먼지와 햇살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더라. 덥지도 않고. 역시 어디서나 생활의 지혜가 있다.


낙타와 베르베르인들


"카메라 좋네. 이 카메라는 앞자리 타야지?"

사막 베이스캠프까지는 낙타를 약 2시간 타고 간다. 동물과 평소 친하지 않은 나이지만, 웬일인지 설레는 마음이 앞섰다. 낯선 마음에 머뭇거리며 탑승을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가이드가 나를 첫 번째 낙타로 안내했다. 선두에 있는 가장 덩치가 큰 낙타로. 이 정도의 카메라를 들고 왔으면 사진 찍기 좋은 앞에 타란다. 처음엔 모두를 등지고 가는 맨 앞자리라 부담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자리에 꽤나 만족했다.


가장 몸집이 큰 낙타여서 나중에 사타구니가 더 아팠지만.


승차감은 묘했다. 높이 때문에 올라가는 순간 굉장히 당황했지만, 그 위는 꽤나 안정감이 있었다. 생각보다 낙타의 등은 더 단단했다. 뼈일까 근육일까?


사하라 사막


사막의 인상은 압도적이었다. 끝없이 모래만 펼쳐진 대지를 거닐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라니. 처음엔 가이드와 대화도 없이 갔는데, 그래서인지 자연 속의 점 하나 같은 존재란 게 더욱 크게 느껴졌다.


몇 시간을 모래만 보고 가는데 지겹지 않았다. 가장 보고 싶었던 사구 한 편이 더 강하게 그림자가 진 모습이 해가 넘어가면서 더 선명해지고, 사구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사막의 풍경. 사막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내어주게 하는 그런 매력이.


곱디고운 모래 입자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곳. 밟을 때마다 연차적으로 줄줄이 내려오는 모래만 봐도 즐거웠다. 계속 무너져 내리는 탓에 걸어 오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중요치 않다. 한 발 디딜 때 일어나는 연쇄작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게 되니까.


사하라 사막


가이드도 사막 속에서 재미를 찾는데 한 몫했다. 다른 일행과 함께 어색하게 묶여 있으니 대화마저 단절되고, 사막의 적막함만 남아있었는데, 가이드의 센스로 이 벽이 허물어졌다. 베르베르인인 현지 가이드는, 걷기도 힘든 사막 위에서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며 우리의 웃음을 샀다.


"이 휴대폰 비싼 거네. 낙타랑 이거랑 바꾸자!"

농담처럼 계속 말하던 그. 자기는 이 휴대폰 들고 서울 갈 테니 우린 낙타와 함께 이곳에 있으란다. 당연히 농담이지만, 진심인 듯 계속 설득하는 그의 말이 그저 웃겼다. 조금 전 사막에서 뛰어다니며 즐기는 그의 모습 자체 그대로 서울에서 노는 걸 상상해 보니 더욱더.


솔직히 그 말을 자꾸 들으니 솔깃했다. 1주일 정도는 휴대폰 주고 사막에 있고 싶었으니까.


사하라 일몰 때


해가 넘어가는 이 시간대의 사막은 가장 아름다운, 절정의 타이밍이라 하겠다. 사구 능선을 기준으로 한쪽엔 완전한 햇빛이, 또 다른 한쪽엔 완전한 그림자가 지는, 음양 조화의 정점의 풍경이 드러날 때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이 황금 시간에 모두 낙타에서 내려 시간을 보냈다.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들이 준비해 온 사막 서핑보드도 탔다. 자막 속에 나를 그대로 맡기는 순간. 내려가는 것도 허우적대며 올라오는 것도 즐거웠다. 일몰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넘어가는 해를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있는 것도 좋더라. 대자연 속에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어 완벽하게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면서 마음의 평안이 찾아와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아름다움 뒤에는 고생이 어김없이 뒤따른다. 낙타에 다시 오른 순간, 사타구니에 근육통이 어찌나 심하던지. 낙타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덜커덩거림과 함께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해가 넘어가고 어스름해지니 가시거리도 줄어들고 볼거리도 없으니, 낙타 위에서의 시간을 즐기기는커녕 베이스캠프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베이스캠프


한 줄기의 빛이 보일 때마다 사람의 흔적이 있단 생각에 설레기 시작했다. 기쁨과 좌절 사이에서 감정이 롤러코스터처럼 몇 번 요동치고 나니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전날 와서 사막을 즐기던 이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과자와 시원한 얼음물과 함께. 소문난 맛있는 저녁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도 과자를 그렇게 맛있게 먹어본 건 처음이다. 극에 달한 목마름과 허기짐을 달래줄 최고의 웰컴푸드였다.


"날씨 좋을 때 오셨네요. 어젠 진짜 안 좋았는데."

물을 건네주던 한 남성이 말했다. 그렇다. 우리의 모로코 여정이 시작되었던 건 바로, 사막의 밤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학수고대하던 곳에 발을 딛었다는 게 확 와닿았다.


경험자의 희망적인 말 한마디에 설렘이 더 커졌다.

이제 남은 건 별사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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