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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Oct 20. 2023

사막에서 별 헤는 밤

사하라에서의 행복한 하룻밤, 메르주가

그토록 바랐던 곳에 왔지만, 아쉽게도 주어진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날씨가 중요한 여정은 보통 만일을 대비해 기간을 여유롭게 잡지만,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었다.


감사하게도 날씨가 참 좋았다. 그곳에 며칠 머물렀던 이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운이 굉장히 좋았단다. 전날에는 모래바람이 심해서 별을 아예 볼 수 없었다고. 우린 다행히 모래바람도 없고, 하늘도 굉장히 맑았다. 사막이기에 비 올 확률은 현저히 낮지만, 의외의 날씨 변수가 많더라. 


오후 9시. 저녁을 먹고 나와 컴컴해진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분명 날씨가 좋다고 들었는데, 별이 보이지 않았다. 까만 하늘에는 언제나 별이 빛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또 다른 변수, 달 때문이다.


달이 보름달에 가까워지면 주변이 환해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별이 가득 수 놓인 사진을 보면 달이 없는 이유다. 우린 별을 보는 것이 목적임에도 달을 신경 쓸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며칠전이 보름이었다. 다시 말해, 아직 달이 환한 시기라는 거다. 


공기가 좋은 이곳은, 달이 유난히 더 빛났다. 뿌연 안경알을 깨끗하게 닦아낸 것처럼 유독 선명했다.


사막 별 관측 Tip.

사막에서 날씨 변수로 인해 별을 못 볼 것을 대비해 최소 2박을 선호하는 편이다. 방문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면 되도록이면 달의 모습이 초승달에 가까울 때로 잡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또한, 사막의 밤은 낮과 달리 기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밤에 평화로운 별 관측을 위하여 4-10월 경 방문이 좋다. 다만, 낮 기온은 그늘이 없는 사막 특성상 굉장히 덥기 때문에 6-8월은 비추.


각종 별자리와 은하수 정보가 올라오는 앱에 의하면 새벽 3시가 정점. 아직 시간은 한참 남았으니 미련을 잠시 내려두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잠을 잘 순 없었다. 야간버스를 타고 온 탓에 피로는 누적되었지만, 한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수시로 밖을 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오전 12시. 점점 선명히 보이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때부터 하늘 관측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오전 1시,

오전 2시,

그리고 오전 3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달은 넘어가고, 별이 선명하게 모습을 더 드러내더니, 은하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황홀한 별 헤는 밤

사막의 밤은 빨리 흘러갔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몇 분에 한번씩 지나가는 별똥별이 지나갔고, 은하수는 점점 선명해져 길이 보였다. 피곤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오히려 이 밤이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만 있었을 뿐.


휴대폰으로 담은 은하수


베이스캠프에 비치된 돗자리를 깔고 별로 가득한 하늘을 이불로 삼아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누웠다. 잔잔한 음악과 선선한 바람은 달콤한 별구경의 완벽한 안주. 이보다 더한 낭만은 없다. '행복'이란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한참 밤을 지새우며 하늘을 바라보니, 은하수가 영어로 왜 Milky 'Way'인지 이곳에서 깨달았다. 은하수는 하늘의 한 부분에만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길이 길게 나더라. 그동안 하늘이 그만큼 깨끗하지 않아서 일부 밖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은하수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황홀했다.


시간을 확인할 새도 없이 밤은 지나갔고, 달이 넘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이 트기 시작했다. 보름달에 가까웠던 때라 정말 어두운 밤하늘을 볼 시간은 비교적 짧았지만, 감사하게도 충분히 즐길 만큼 밤새 모래 폭풍 없이 잘 넘어갔다.


사막의 아침


사막투어는 굉장히 이른 시간에 끝난다. 이곳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그 점을 고려한 듯했다. 이 때문에 동이 트기 시작할 때부터 떠나기까지는 시간이 굉장히 촉박했다. 하지만, 가시거리가 생긴 해가 뜬 이른 아침의 사막은 내 발로 이곳을 경험할 마지막 기회여서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짜내어 베이스캠프에서 조금 걸어 나갔다.


모래 밖에 없는 허허벌판이 어찌나 아쉬운지. 미련 가득한 마음으로 일출까지 알뜰하게 보고 사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은 차를 탔다. 덜커덩거리는 트렁크 위에 앉아 15분을 달렸더니 금방 도착했다. 2시간에 걸쳐 낙타 타고 들어갔던 꿈 속에서 현실로 순식간에 깨어 나온 듯했다. 



행복이 가득했던 사막

이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사하라. 지금까지 거쳐온 여정은 모두 이를 위한 발판이었다. 그런 사막에서의 하루는, 오로지 긍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황홀함, 행복, 치유' 등의 그간 온전하게 겪어보지 못했던 단어를 제대로 느꼈던 밤이었다.


사막하면 열악한 환경이 먼저 떠올랐기에 가장 가고 싶으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꺼려했던 여행지였는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또 다른 국가의 사막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면 마음의 안정이 온다. 삶에 지쳤을 때 가면 가장 좋은 곳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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