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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Oct 03. 2023

현지인들 속 3명의 외지인

동물원 속 동물 체험기, 페즈

사진 찍어도 돼요?”

한 아이가 공원 한편에 앉아 쉬고 있는 우리에게 달려와 물었다. 휴대폰을 들고 달려오는 그 아이를 보며 당연히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할 줄 알았는데.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단다.


관광객이 드문, 특히 동양 여행객이 드문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이런 요청을 가끔 받곤 한다. 스몰토크조차 없이 갑자기 들어오는 요청은 언제나 당황스럽지만, 유쾌하게 넘길 수 있는 정도였다. 즐겁게 웃으면서 찍곤 서로 고맙다며 인사까지 하고 헤어지니까. 유명인도 아닌 일반 사람과 찍고 싶어하는 그들의 의도는 여전히 미궁 속이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공원 속 꽃


이 공원은 페즈 구시가지 밖에 있는, 현지인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염색공장 다녀온 후로 여유롭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고, 단순히 지도에 눈에 띄는 한 공원으로 왔다.


입구부터 히잡을 두르고 있는 여성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고,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남성들도 꽤나 있었다. 나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공원은 흥미로웠다. 관광보다 현지 체험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최적의 목적지였다. 우리가 엄청난 관심을 끌기 전까지는.


공원 분수


그 꼬마 아이와 언니로 보이는 두 친구가 달려올 때까지만 해도 우린 이 사태가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 이 일을 '사태'라고 칭할 만큼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해봤고. 영문도 모른 채 찍어준 사진 한 장이, 커다란 눈덩이처럼 불어 돌아왔다.


시작은 그 아이가 있던 무리에서부터였다. 다른 아이들도 하나 둘 와서 부탁을 하더니, 나중엔 하다 못해 엄마가 아아를 데리고 와 억지로 사진을 찍게 했다. 관심도 없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왜 굳이 사진을 함께 찍게 했을까. 군중 심리 때문이었을까?


부끄러워하며 사진 찍고 도망가는 아이들을 볼 때까지만 해도 황당했지만 괜찮았다. 문제는 무례한 몇몇 어머니들. ‘부탁’이라는 걸 모르는 건지, 툭툭 건드리며 자기 아들이랑도 사진을 찍어달란다. 한 장 찍고 휙 가더니 또다시 툭툭 치며 다른 아이를 가리켰다. 사진 찍어주는 게 당연한 일이란 듯이.


나무 숲길


빗발치는 사진 요청에 더 이상 쉼터에서 '쉼'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공원을 서둘러 나가야겠단 생각에 길을 나섰다. 동물원 속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나가는 길에도 멈추는 순간 사진 요청은 계속되었다. 그새를 놓치지 않더라.


공원 문을 나서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있었지만, 맞은편에서 공원에서 봤던 사람들과 비슷한 한 가족이 와도 어떠한 요청도 없었다.


결국 편히 쉴 공간을 찾을 수 없던 우린 숙소로 돌아왔다. 이미 체크아웃은 했으니 이마저도 발 붙일 곳이라곤 공용공간뿐이었다. 잔잔하게 들어오는 빛이 전부인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같은 인종이 드문 덜 알려진 도시에서 현지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여럿 생각이 지나가는 경험이었다. 가끔 관광지에서 여행하다보면 서로 사진 찍다가 장난치고 함께 찍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여전히 그 심리가 궁금하다. 마치 새로운 인종을 처음 보고 신기해서 찍는 느낌이었으니까.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한 그 행동들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의도를 나쁘게 해석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다시 한번 느낀 건, 덜 알려진 국가는 여행할 때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래서 많은 걸 각오해야 한다는 것. 어디서든 소수가 되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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