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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Sep 29. 2023

염색 공장의 아찔한 추억

민트가 싫어지는 여행, 페즈

가죽 염색 공장으로 유명한 페즈

모로코엔 사막 외에도 널리 알려진 명소가 한 곳 더 있다. 염색 공장. 이들 말로 하면 ‘Tannery(테너리)’다. 그들만의 전통방식을 오랜 시간 이어온 역사적 장소인 데다가, 세계에서 품질 좋은 가죽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저렴하면서도 부드러운 가죽으로. 가죽과 독특한 풍경 때문에 해마다 상당한 수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페즈이지만, 맹점이 하나 있다. 악취. 가죽을 부드럽게 하는데에 비둘기 배설물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누적되어 나는 냄새가 엄청나다. 세계에서 더러운 여행지 중 하나에 꼽히기도 할 만큼.


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게 웃기다. 누가 악취 나는 곳에 가고 싶은가. 하지만 특이함이라면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나는, 머뭇거림 조차 없었다. 호기심에 되려 기대감이 올라갔다.



미로 같은 페즈의 골목

얼핏 구글맵만 열어봐도 알 수 있지만, 페즈는 엄청난 양의 골목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길 쉽게 찾는 요즘 세상에 길 잃을 조심하라니. 미로 속에 갇히는 게 아닌가 조금 걱정됐다.


페즈 골목


"여긴 구글맵 보고 길 찾지 않는 게 좋아."

페즈 숙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이 웰컴티를 가져다주며 우리에게 한 말이다. 지도에 의존하지 말 것. 지도에 길이 있다는데 없고, 없다는 데 있는 경우가 허다하단다. 그래서 나침반처럼 방향만 참고하고 가는 걸 추천했다.


현지인이 그렇게 말을 할 정도라니. 신뢰도가 전혀 없는 이곳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길을 되돌아가고 사람들에게 묻다 보면 제 갈길이야 갈 수 있겠지만, 잠시만 걸어도 혼이 나가는 이 모로코에서 최소한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이 없었으면 했다.



가죽 제품의 처음과 끝, 염색 공장 그리고 시장

가는 길은 염색 공장으로 유명한 곳답게, 상당한 양의 가죽 제품을 구경할 수 있다. 가끔씩 다른 물건도 있지만, 가죽 제품이 워낙 많아 골목은 특유의 가죽 냄새로 가득하다. 이곳에 구석구석 잘 돌아다니다 보면 가죽 장인들도 볼 수 있다. 이 볼거리를 마냥 서서 구경할 여유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시장의 가죽제품들


“니 하오”

페즈는 마라케시 다음으로 호객행위가 심한 곳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공장 근처가 가장 심하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 역시도 보통이 아니다. 혼자 걷는다면 험난한 세상이 펼쳐질 만큼. 특히 동양인에겐 더 하다. ‘니 하오’만 수십 번, 아니, 수천번을 듣게 될 것이고,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듣고 나서야 공장을 구경할 수 있다. 유럽에서 하도 들어서 익숙한 나에게도 혀를 내두를 만큼 심했다.


염색 공장


공장 근처로 오면 후각을 통해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광장 같은 널찍한 공간에 놓인 공장인지라, 주변엔 냄새가 깊게 배어있다. 또, 그 쯤 도달하면 어디선가 청년들이 나타나 공장이 잘 보이는 테라스의 위치를 안다며 계속 호객행위를 한다. 이들을 쫓아가면 대부분 팁을 내야 하기 때문에 따라가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어디든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관광지처럼 ‘어떤 가게가 있는 어떤 건물로 들어가면 있어요’가 통하지 않는 구조의 마을이기 때문. 우리도 이 현실을 깨닫곤 곧바로 한 청년의 안내를 받아 테라스에 올라갔다.


첫 번째로 올라간 테라스에서 주변 건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완벽히 보이진 않지만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전체 규모 역시 생각보다 작았다. 기대가 컸던 지라 실망도 컸다. 그래도 좋은 기회였다. 그들은 팁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우린 정보를 탐색해 이곳을 발판으로 다른 테라스를 방문했다.


염색 공장을 둘러싼 모든 건물의 옥상은 사람들에게 열려있다. 우린 각각의 옥상에서 구경하고 있는 그들의 시각을 상상해 보며 명당을 찾았고, 그렇게 방향만 대략 잡고 추측되는 건물로 찾아갔다.


두 번째로 찾아온 옥상은 사람도 거의 없고 평화로웠다. 다른 방향에서 보아도 생각했던 거에 비해 공장이 작아서 실망했지만, 첫 번째로 갔던 곳보다는 잘 보여서 만족했다. 그렇게 우리만의 시간을 한참 즐기던 때, 누군가가 왔다.


“시간 다 됐어. 나가야 돼.”

이 건물에 들어올 때에는 제약도 없었고, 어떠한 안내도 없었다. 그저 여느 건물처럼 가죽 제품 파는 상가 같은 건물이었다. 마주친 적도 없는 이 사람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우리를 감시했던 것처럼 시간이 다 됐다며 나가란다. 게다가 우리를 데리고 내려가더니 갑자기 팁을 요구했다. 앞서 간 곳에선 우리를 데리고 가고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여기는 쫓아내는 사람이 돈까지 달라니 어이없었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던 그. (모로코에선 언제나 흥정은 필수다.) 이미 사진도 찍고, 나름대로 뷰 괜찮은 곳에서 시간을 보냈으니, 자릿값이라 생각했다.


왼쪽이 Tanneries de fes, 오른쪽이 Chouwara Tanneries



의도치 않은 두 번째 염색 공장, 민트와의 만남

야간 버스까지 시간이 꽤 남아 숙소 공용 공간에 앉아 있었다. 피곤하게 몰아치는 일정에 할 일도 없으니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러다 눈앞에 걸린 사진을 봤다. 염색 공장 사진이었다. 무념무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뭔가 이상하단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보고 온 염색공장과는 다른데? 다른 곳이 또 있었던 거 아닌가?


“공장이 또 있네?”

지도를 열어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갔던 곳은 ‘Tanneries de fes’. 페즈 염색공장이란 뜻이다. 누가 봐도 페즈의 대표적인 곳 같지 않나. 우린 감쪽같이 이 말에 속았다. 염색공장이 2개 이상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거기다 규모가 더 큰 공장의 이름이 ‘페즈’라는 이름을 딴 곳이 아니라곤 더욱더.


염색공장 Info.

규모가 큰 공장의 이름은 Chaouwara Tanneries. 마을 중심에서는 거리가 꽤 있는 곳이지만, 충분히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가볍게 맛보기로 보고 싶다면 가장 오래된 역사적 의미가 있는 Tanneries de fes를, 진정한 염색공장을 보려면 Chaouwara Tanneries에 갈 것을 권한다.


“지금 가? 어떡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애매하지만 택시를 타고 간다면 다녀올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있었다. 문제는 지친 심신과 불확실성. 겨우 회복하고 있었는데, 다시 스스로 정신없는 소굴로 갈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고, 워낙 사람들이 정보를 마구잡이로 올려두어 우리가 원하는 곳이 맞는지 확신이 없었다. 두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다시 올 거 같지 않으니 속는 셈 치고라도 다녀오자는 마음 반, 어차피 다 비슷한 것이니 하나 봤으니까 괜찮다는 마음 반.


Chaourawara Tannery


‘후회’라는 단어가 떠오르면 언제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맞다. 결국 우린 급히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기사는 공장 입구 근처에 내려주었다. 조금 걸었더니 공장 입구에서부터 테너리 찾냐고 한 청년이 묻더니 우리에게 민트 한 줌을 쥐어주곤 어디론가 데려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입구 너머로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작업장. 이 앞까지 가면 냄새가 상당하다해서 코앞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제 발로 찾아왔다. 우리가 원하는 옥상까지 가려면 좁은 길을 지나가야 했는데, 말이 좁은 길이지, 그냥 염료통 위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바로 비둘기 똥이 가득 들어있는 통행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여행지를 다니면서 경험한 것 중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함이 온몸에 퍼졌다. 오죽하면 민트 즙이 손에 벨만큼 꽉 잡았을까.


공장에서 준 애플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면서도 몸은 바빴다. 카메라 챙기랴, 민트 코에 갖다 대랴, 주변 구경하랴, 긴치마 챙기랴. 언제나 강렬한 기억은 오래 남는다고, 여전히 그 기분은 생생하다.


페즈 테너리가 유서가 깊을지라도, 이제 페즈를 대표하는 곳은 이곳인 듯했다. 한눈에 봐도 규모가 두 배쯤은 될 듯한 이 테너리는 민트 없이 다니기 힘들 만큼 냄새가 심했다. 원래 후각은 같은 냄새에 둔해져서 시간이 지나면 느끼지 못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냄새가 없어지지 않더라. 하지만, 구역질 날만큼의 최악을 생각했던지라 타격은 별로 없었다. 그들이 건네준 민트가 이 냄새를 이겨내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하더라. 결국 여기에 트라우마가 생겼지만.


여담으로 이곳의 민트는 우리가 아는 화한 맛이 강하지 않다. 연한 화한 맛이 나고, 설탕을 넣어 단 맛이 더 강느껴지는 정도. 이 차를 마실 때 민트 잎을 그대로 물 속에 집어넣다보니 잎의 향이 그대로 올라온다. 그래서 마실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때의 추억에 긍정적이었던 이 민트 티에 대한 첫인상과 달리, 페즈 이후론 부정적으로 변했다. 신기하게도 한순간에 인식이 바뀌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싫어졌다. 이 여행을 다녀온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테너리 호객행위 팁에 대한 Info.

몇 차례 테너리 옥상을 다녀와 본 결과, 팁을 요구하지 않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은 한다. 그들이 선제시하는 금액은 원화로 환산하면 그 가치가 얼마 되지 않기에 자칫하면 남들의 몇 배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제나 흥정은 필수. 그들이 아무리 더 큰 금액을 불러도 말도 안 되는 만큼의 흥정도 가능하니, 흔쾌히 돈을 주지 말고 도전하길 바란다. 도와준 정도를 생각해서 미리 적당히 선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안내해 준 이가 직접적으로 본인에게 팁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서 주지 말 것. 실례로 여행 중 Chaouwara 테너리에 갔을 때, 처음 우리를 인도해주던 청년에게 20 디르함을 주면서 더 공장이 잘 보이는 옥상을 소개해달라고 해 소개받은 한 건물이 있었다. 이곳엔 한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이미 들은 이야기를 반복하셨지만 나름 정성껏 안내를 해주었다. 구경을 마치고 1층에 내려왔을 때 처음 봤던 청년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와서는 할아버지에게 팁을 줘야 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우리도 팁을 요구할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던 지라 10 디르함 정도를 고려하고 있었던 터라 거부감은 없었고, 대신 직접 드리고 싶어 할아버지를 굳이 불러다 드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돈을 받은 듯한 놀란 표정이었다. 아마 그 청년이  중간에서 돈을 떼어먹으려고 한 듯하다.


우리도 처음엔 잘 모르고 30 디르함을 줬다. 흔쾌히 OK 하는 그의 모습에서 찜찜함을 느꼈지만, 그땐 처음이라 저렴하다 생각했다. 20 디르함을 받고 활짝 웃던 청년, 10 디르함을 받고 놀라는 할아버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을 보니, 그들에게는 10 디르함도 큰돈이더라. 물론, 상대가 얼마나 잘해주는지에 따라 돈을 더 줄 가치가 있을 수도 있고, 팁이라는 건 원래 개인이 주고 싶은 만큼 주는 것이니 참고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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