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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로그 Oct 21. 2023

호객꾼 잠 재우는 한 가지 방법

고수 호객꾼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마라케시

유독 길게 느껴졌던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사막에서 한참 차를 타고 이동해 몸은 축 늘어져있었지만, 마라케시 야시장은 놓칠 수 없었기에 집을 나섰다.


마라케시 야시장은 호객행위로 악명이 상당한 곳이다. 많은 곳이 호객행위가 심하지만, 이곳이 최악이란다. 모로코에 학을 떼버릴 정도로.


솔직히 이미 귀가 아플 정도로 호객을 많이 당해서 귀찮음이 컸다. 아마 마라케시에 볼거리가 다른 것이 있었다면, 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마라케시는 야시장 빼면 갈 곳이 없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또, 그 악명이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고.


야시장 가는 길


숙소 앞 거리는 밤에도 인산인해였다. 오히려 낮보다 사람이 더 많아졌다. 야시장으로 쭉 이어진 거리는, 정신없이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순한 야시장일 뿐인데, 마치 근처에 축제라도 벌어진 듯이.


4월 말에도 37도에 육박할 정도로 덥고 건조한 마라케시. 갈증 난 우린 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시작했다. 한화로 약 200원. 저렴한 만큼 맛도 그렇다. 애매하고 끈적이는 게 어딘가 불량한 느낌.


마라케시 야시장 전경


야시장이 열린 광장에 도착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그만큼 인파도 엄청났다.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멀리 있는 건물의 불빛관 눈앞에 지나가는 사람들 뿐. 발이 갈 곳을 잃었다. 선뜻 움직이기가 애매하고 막막했다. 소매치기에 대한 긴장감도 올라가고.


야시장 노점상


규모가 큰 만큼 판매 물품은 다양하다. 중간중간에 바닥에서도 크게 깔고 장사를 하는데, 이들의 호객행위는 덜하다. 현지인들이 많이 사갈 법한 물건들을 많이 팔아서 그런 걸까,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간이 식당들


사람들이 가는 곳을 뒤따라 간 곳에는 야시장 특유의 간이식당이 줄지어 있었다. 한창 저녁 먹을 시간이기에 잠깐 먹을까 고려해 봤지만, 우린 생략했다. 배가 많이 고프지도 않았고, 위생 문제도 있고, 또 쏟아지는 메뉴에 결정도 못하겠어서.


"이거 먹어봐. 맛있어. 자, 저기로 들어가서 앉아. 응? 어? 어때?"

가장 문제는 호객행위로 인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 이곳의 호객꾼은 엄청난 스킬을 갖고 있다. 3명이 그를 피하기 위해 흩어져서 지나가는데 혼자 이 셋을 다 가로막으며 얘기를 하더라. 시선을 애써 다른 곳으로 돌리며 다른 곳에 관심 있는 듯 걸어갔다. 호객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점점 격하게 영업을 할 뿐.


가끔은 우리 몸을 건드리면서까지 말을 한다. 주의를 끌기 위해서. 툭툭 치는 것일지라도 단호하게 화를 내야 한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 됐든 우리가 기분이 나쁘면 잘못된 것이니까. 이렇게 한번 단호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일정 구간을 넘어설 때까지 호객은 멈추지 않지만, 정도는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호객은 우리에겐 역효과가 돌았다.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계속 주변에서 말을 거니, 식당에 영업당해서 들어가기는커녕 되려 이곳을 서둘러서 벗어나고 싶었다.


결국 밀리고 밀려서 시장 외곽까지 갔다. 누구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 곳까지 나왔지만, 멀리서 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까지 온 의미가 사그라졌다. 이건 시장도 마라케시 구경도 아니니까.


과일 주스 매대


다시 야시장으로 들어가, 이번엔 매대 앞으로 지나갔다. 대신, 상인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순간, 반가운 주인 보고 달려드는 강아지 마냥 미친 텐션으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보면서 손 흔드는 거 봐. 미쳤어!"

사실 그 모습이 웃겨서 멀찍이서 바라보며 따라 했다. 한 구석에 서서 셋이 미친 듯이 손 흔들며 어찌나 웃었는지. 조금씩 이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종합 과일 주스


한참 야시장을 둘러보니 손에 뭔가 쥐고 있는 사람들에겐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단 걸 알았다. 우린 그들의 입막음 용으로 결국 주스를 하나씩 사기로 했다. 팀플레이라고 생각하면 그들의 승리이긴 하다. 결국 우리가 물건을 사긴 했으니까.


"작은 걸로 하나씩 줘."

"큰 걸로 사면 더 싸게 해 줄게."

그 와중에 장사도 잘한다. 관심을 보이자마자 만들고 있던 주스를 따라 주더니 맛보란다. 구아바, 파인애플 등 5개 정도의 과일이 마구 섞여있던 미스테리 주스. 하필 제일 비싼 주스를 들이밀어서 경계하면서 먹었는데, 웬일, 맛있다. 결국 이걸로 세 잔 주문. 이번엔 또 큰걸 사면 싸게 해 주겠다며 강요를 한다.


정찰제로 적혀있는 가격을 할인하며 장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모로코엔 역시나 정찰제인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가격 보고 고민은 하지만, 사실 한화로 해봐야 얼마 안 한다.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가격의 생과일주스니 어떻게 사 먹어도 이득. 맛도 있으니 결국 큰 사이즈로 3개 구매했다.


과일 주스 장사꾼들


기분 좋은 그들의 텐션은 급속도로 변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우리를 향해 자기들을 찍어달라는 듯 온갖 행동을 취했다. 화려한 퍼포먼스에, 익숙한 듯한 포즈에. 참 밝다. 주스를 만들고 있는 내내 끊이지 않았다. 덕분에 주스를 사는 우리도 기분이 좋아졌다.


야시장 전경


우리의 관찰은 정확했다. 주스를 손에 쥐고 있는 우리에게 이전처럼 호객하는 이들이 사라졌다. 이미 손에 먹을 게 들려있으니 살 확률이 높다는 걸 그들도 아는 거다. 덕분에 매대 앞을 여유롭게 구경하며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배도 안 고픈 상태로 주스까지 먹은 우리의 저녁을 물 건너갔고, 주스를 손에 쥔 채 시장을 떠났다.


진작 주스를 살 걸.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방문한다면, 들어가자마자 주스를 사들고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야시장의 호객행위는 여느 지역보다 심한 건 사실이다. 유독 더 끈질기달까. 하지만, 이곳을 여행하기 쉽지 않은 건 비단 호객꾼들 때문 만은 아니다. 수많은 현지인과 관광객이 뒤섞인 이곳은 그냥 걷기만 해도 벅찬 곳이다. 특히 혼자 온다면 신경이 날 설 일이 많기에 여행자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마라케시는 사막이 있는 메르주가를 방문하는 이들은 꼭 지나가는 거점지다. 그만큼 방문객이 많기에 야시장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꽤나 찾아볼 수 있다. 현장에서 둘러보고 결정하는 것도 좋겠지만, 비교적 원활한 저녁식사 경험을 원한다면, 특정 가게를 마음속에 정해두고 가는 걸 추천하겠다.



(마지막으로, 지난달 있었던 마라케시 지역의 지진 참사에 대한 애도을 표하며, 빠른 시일 내 복구가 되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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