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로그 Oct 22. 2023

여행 매너리즘 탈피에 효과적이었던 자극제

꿈 같이 흘러간 6일을 떠나보내며, 에필로그

정신이 번쩍 드는 여행이었다.

실망할 법한 고생길이 줄지었던 여행이었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언제나 그렇듯, 기억은 두 가지 양극단의 모습을 오래 간직한다. 그 사이에서 느낀 애매한 감정은 순간의 쾌락 같을 뿐, 금세 휘발된다. 모로코 직전에 다녀온 여행에서 ’여행을 왜 좋아하는가?‘, ’이곳에서 진정 느끼고 얻은 것이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이 모든 건 ‘좋다’의 감정만 어렴풋이 남겼던 지난 최근 여행 때문이었다. 알 수 없는 강박에 휘둘려 중독된 사람처럼 여행을 갔고, 어느 날 기계처럼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물론, 고생만이 답은 아니다. 그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통해 이상적으로 바라는 것은 ‘나의 성장’이다. 자그마한 한 가지라도 영향을 받아 변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성장을 위한 자극이 들어오려면, 지각을 위해 자극제가 될 새로움이 필요하다. 이 모로코 여행이 그런 역할을 했다. 도착한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모든 것이 도장깨기 하듯 도전 같았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를 보는 것도, 역경을 이겨내는 것도, 이 세상을 단단히 살아가도록 도와줄 자양분이 되었다.


글을 적으며 여행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니, 작성한 내용 외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숙소비 때문에 한국어로 욕까지 하면서 싸워보기도 하고, 택시비 흥정하다가 돌아서서 그냥 가버리기도 하고. ‘처음’이란 단어가 딱인 일들의 연속이었다.


모로코는 비교적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많이 알려진 여행지이지만, 대중성은 아직 떨어지다보니 정보가 여전히 부족하다. 이러한 점과 부족했던 여행 준비 기간이 이 다채로운 여정을 완성하지 않았나 싶다. 얕은 정보 검색으로 인해 갖고 있던 배경지식이라곤 가는 목적지의 가장 유명한 점과 호객행위가 심하다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유럽 프로여행러의 첫 아프리카 여행에서  경험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적어보고자 한다. 앞으로 갈 사람들의 정보를 위해서.



1) 활발한 야간 활동

유럽에 익숙한 사람들은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일찍 문 닫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모든 상점이 오후 8시 이후면 닫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 밤 12시가 되어도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몇몇 가게들만 늦게까지 여는 게 아니고, 대부분이 그렇다. 늦게 열고 늦게까지 장사하는 게 일반적. 스페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터라 그의 영향으로 시에스타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에스타를 가질 시간에 문을 열었다.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에 휴식을 갖는 유럽인들과 달리, 기후는 비슷한데도 이곳은 정반대의 생활을 한다. 되려 이런 생활패턴은 한국과 비슷하달까.


새벽 1시 공항 앞


공항 근처도 마찬가지. 밤 12시 넘어 도착한지라 치안이 걱정되었지만, 공항을 나서자마자 그 걱정이 전혀 필요 없었단 걸 알았다. 눈앞에 보였던 건 놀고 있는 사람들. 공항 앞에서 공원 온 듯이 놀고 있는 그들이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가족끼리 와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이들은 대부분이 야행성이다.


2) 도시 간의 장시간 이동

모로코는 생각보다도 굉장히 넓다. 도시 간의 이동시간은 약 4-10시간. 알려진 도시도 많지 않아 중간 거점지를 찾아 여행하기도 힘들고, 기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대부분의 이동은 버스 또는 택시를 탑승해야 한다. 버스도 정보가 충분치 않아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고, 또, 버스는 좁기 때문에 빠듯한 일정에서 계속 타고 다닌다면 체력적 부담이 상당하다. 그래서 택시를 추천한다. 실제로 탕헤르에서 셰프샤우엔 갈 때 2시간 거리를 로컬버스를 4시간 타고 갔는데, 택시 타지 않은 걸 후회했다. 비용은 한화로 생각하면 거리에 비해 많이 비싸지 않기 때문에 돈을 많이 아낄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면 약간의 투자를 하는 것도 좋다.


*각 지역 별 이동시간 

탕헤르-셰프샤우엔 4시간 (로컬버스)

셰프샤우엔 - 페즈 4시간 (개인택시)

페즈 - 메르주가 8시간 (야간버스)

메르주가 - 마라케시 10시간 (합승택시)


좌측은 휴게소, 우측은 로컬음식


택시를 타면 오히려 휴게소도 들르고 좋다. 개인택시를 탔을 땐 기사를 따라 로컬 음식도 챙겨 먹었다. 합승 택시의 경우, 10시간의 장거리 이동이라 휴게소를 몇 번 들렀는데, 점심에는 마치 패키지여행처럼 한 식당에서 다 같이 먹게 하더라. 맛은 당연 일반적인 식당보다는 별로다. 그래도 중간 식사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점. 장거리 택시를 잡을 땐 숙소에 문의하면 아는 곳에 연락해 연결해주니,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가격 확인은 필수.


대형 합승택시


또, 장거리 이동하면서 느낀 건, 숙소에서 잠을 길게 잘 필요가 없다. 침대에서 자는 것과 차에서 자는 것의 차이는 상당하겠지만, 장거리를 자지 않고 그냥 간다는 건 그야말로 고문. 실제로 잠이 없는 나는 8시간, 10시간의 장시간 이동이 걱정되었으나, 매일 이동하는 일정에 밤마다 같이 간 언니들과 함께 수다 떠느라 늦게 잤더니, 누가 깨워도 힘들게 일어날 정도로 기절을 해버렸다. 특히 메르주가에서 마라케시로 갈 때 험준한 산맥을 지나가는데, 그 길이 상당히 아찔하고 구불구불해 악명이 높다. 이곳을 합승 택시라 뒤에서 누워서 잤더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문제없이 지나갔다.


3) 기본 이동 수단, 택시

대부분의 물가가 저렴하지만,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택시 물가. 버스가 아직 많지 않은 이곳은, 엄청난 양의 택시가 거리에 있다. 모로코인들의 가장 보편적인 이동 수단인 듯하다. 문제는 택시 수가 많은 만큼 탑승하는 사람도 많아 비어있는 택시를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곳의 가장 큰 문제는 미터기가 있지만, 무용지물이란 점. 미터기 사용하는 기사는 단 한 명도 없다. 또, 다른 사람과 합승은 흔한 일. 목적지가 비슷하면 함께 태워간다.


페즈 택시


현지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가격은 약 10분에 약 1천 원. 짐을 들고 있으면 더 비싸지는데, 짐을 고려해서라도 10분에 5천 원 정도면 꽤 주는 격. 하지만, 관광객은 이 물가를 모르기에 무조건 비싸게 부른다. 실제로 마라케시에서 택시를 짐 들고 탈 일이 있었는데, 5배를 부르더라. 그들의 사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특히 마라케시는 많은 여행객의 출발지이기 때문에 이곳의 물가를 파악하기 전이라 올려치기가 상당한 듯하다. 보통 거절하고 돌아서면 가격이 낮아지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 찾으면 된다는 듯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을 미루어 보았을 때, 사기의 성공 확률이 높은 듯했다. (사실 이것이 탕헤르부터 여행을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도는 걸 추천하는 이유다.) 그러니 무조건 과감한 흥정은 필수!


셰프샤우엔 택시


마지막으로 택시 경쟁 상대가 많은 경우 알아야 될 한 가지. 이들은 줄 서기 문화가 없다. 새치기를 밥 먹듯 하는 곳. 택시를 타려고 문 열고 기사와 대화하는데도 당당하게 앞자리에 앉아 채가는, 조금은 무질서한 곳이다. 택시 탈 땐 탑승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서 타는 게 가장 좋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택시를 확실하게 마킹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라서 다행이다.‘

여행 중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이다. 여행 경험이 적은 수용력이 아직은 부족한 다른 누군가가 왔더라면 이 여행은 끝을 보기까지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럴 수 있어.’라며 어떤 일이 있어도 즐거움을 찾고 넘어갈 수 있는 셋이라 무사히 좋은 기억으로 여정을 마쳤다. 이젠 누군가가 방문한 곳 중 추천할 만한 여행지를 묻는다면, 모로코를 이야기할 만큼 깊은 인상과 함께.


모로코는 그만큼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곳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추천할 땐 항상 주의를 준다. 여행 경험을 반드시 쌓고, 어떤 일이 생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라고. 그만큼 여행 초보자가 갈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행 경험이 많은 우리도, 좋았지만 다시 올 거 같진 않다고 말할 정도니까. 사막을 제외하면 한 번의 경험이 충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만, 사막까지의 인프라가 잘 갖춰지는 날이 온다면 다시 올 거라는 것이 우리의 공통적인 평이다.


사하라 사막 은하수


4월의 어느 날, 무료함과 익숙함에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나에게 한 자극이 들어왔다.

그 자극제는 생기를 잃었던 나의 세포를 깨웠다. 덕분에 세상을 보는 눈도 또 한 번 넓어지고, 여행의 이유도 되찾았다.

동시에 선물 받은 엄청난 이야기보따리로 돌아온 일상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고맙다, 모로코.

이전 09화 호객꾼 잠 재우는 한 가지 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