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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틴 Aug 17. 2023

너의 드라마에 조연이어도 난 괜찮아, <엘리먼트>

<엘리먼트>와 <나는 솔로>를 통해 본 사랑 조연 이야기


주말에 <엘리멘탈>을 보고 왔다.

개봉한 지 무려 두 달 만이다.

단순하게 치환하자면, 불 같은 여성 앰버와 물 같은 남성 웨이드의 사랑이야기인데,

그 사랑 이야기 속에서 나의 가슴을 쿵, 치고 간 것은

OST인 'Steal the show'의 가사들이었다.


#

I wouldn't mind 

If you steal the show

You and I, we go together

You're the sky, I'll be the weather

'당신만이 주인공이어도 괜찮아', 

'네가 하늘이라면, 나는 날씨가 될게'.


나의 쇼에서, 네가 주인공이 된다고 해도

네가 하늘이라면, 나는 하늘을 둘러싼 배경이 된다고 해도 괜찮은 것.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나의 자리를 내놓을 수 있는 것.

그것의 이름을 사랑이라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옥순아, 나 광수야
별처럼 빛나는 너의 옆에서
나도 잠깐 빛을 낼 수 있어서 좋았어
너의 드라마에서 나는
지나가는 조연일지도 모르지만
내 드라마에서의 주인공은 너였어
고마워




<엘리멘탈> 속 웨이드의 고백 장면과 'Steal the show' 가사를 곱씹다 보니,

<나는 솔로>의 한 남성 출연자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솔로>의 레전드 편을 꼽으라고 하면 항상 꼽히는 기수들이 있는데, 6기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옥순 사가의 시작, '네가 나를 이렇게 변화시키네' 등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나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은 것은

결혼까지 골인한 두 커플의 러브 스토리가 아닌,

다름 아닌 변호사 광수의 스토리였다.


마지막 고백의 시간, 광수는 덤덤하게 옥순에게 쓴 편지를 읽어나간다.

옥순의 4박 5일 일정에 본인은 지나가는 행인 혹은 보조출연자 정도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주인공은 너였고,

너로 인해 잠시나마 나까지 밝게 빛날 수 있어 고마웠다는 광수의 독백은

연애 프로그램 속 그 어떤 고백보다도 더 절절하고 진실되게 다가왔고,

"내가 널 처음 만났을 때, 난 물에 잠긴 듯한 기분이었어. 하지만, 네 빛, 네 안의 밝은 그 빛이 날 살아있게 만들어줬지"라는 <엘리멘탈> 속 웨이드의 고백을 떠오르게 했다.

아마 내가 옥순이었다면, 광수의 마음 하나 보고 그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것은 필경 진실된 사랑이란 감정일 것이므로.






살면서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심지어 어린 시절 나의 좌우명은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였다.

어딜 가도 조연보다는 주연이 하고 싶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그랬다.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의 사람이 나보다 더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희한하게도 종종 주눅이 들고, 가끔은 뾰족하고 못난 이가 난 경쟁심까지 묘하게 솟아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내 문제였다.

사실은 옆의 사람이 누군지와는 관계없이, 나 스스로가 나에 대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옆자리에 누가 온다 한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자발적인 조연이 될 팔자였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서 처음으로 내가 조연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 남편은 어디에서든 나를 주연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지만,

남편만 옆에 있다면, 연이든 주연이든 행인이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내가 나 그대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해주는 사람,

설령 조연일지라도 빛날 사람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

나는 그의 확신에서 덩달아 마음속 여유를 얻었다.


결국, "나는 너의 드라마의 조연이어도 돼", "너만이 주인공이어도 돼"라는 말은

홀로서기가 가능한 사람들,

타인에게 조연이어도 자존감에 상처 입지 않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불이 다가오면 기꺼이 한 몸 끓여지고, 흔쾌히 증발될 수 있물 같은 사람들.

바로 웨이드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역시

홀로서기가 가능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 말에 부담스러워하며 도망가지 않으려면, 그 말을 반듯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므로.

타인이 정해 놓은 기준을 뿌리치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용기 낸 앰버 같은 사람들 말이다.


<엘리멘탈>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줄 수 있는, 보석처럼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누군가에게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주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경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자.

그가 더 빛날 수 있도록 나의 불을 기꺼이 꺼주는 사람이 되자.


"너의 드라마의 조연이어도 난 괜찮아."

"너만이 이 쇼의 주인공이어도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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