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발견: 슬랙, 애플, 카카오택시, 테이블링
간만에 돌아온 랜덤 UX 인사이트는 전부 생활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UX 장치들로 꾸렸다. 대놓고 표출되는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의 맥락에 따라 은근히 침투하는 케이스들이다. 세심하고 매력있는 UX로 브랜드의 호감도가 급상승한 경우도 있었고 거슬린 경우도 있었는데, 그 경험을 소개해보겠다.
필자는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툴로 슬랙을 사용한다. 원격 근무 중심이라 업무 중 수시로 발생하는 미팅들은 슬랙의 허들(huddle) 기능을 활용하는 편이다. 이 날도 여느때와 같이 동료 디자이너와 허들 중이었다. 한창 미팅 중 동료가 자리를 잠시 비우겠다고 양해를 구하길래 알겠다고 한 뒤 허들에 접속한 채로 일을 계속 이어갔다. 그랬더니 갑자기 화장실에서 틀어줄 법한 재즈풍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혼자 미팅을 기다리는 나를 위해 동료가 호의적으로 노래를 틀고 간 줄로 알았다. 1시간 만에 다시 만나도 꼭 'How are you?' 인사를 건낼 정도로 사려 깊고 친절한 분이기도 하고, 파키스탄인이라 문화적인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돌아온 그에게 "Thank you for your music, I really enjoyed it" 했더니, 본인이 아니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고 그제서야 슬랙에서 제공하는 기능임을 알았다.
슬랙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슬랙의 사용자는 대부분 멀티태스킹을 하며 허들을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에게 오디오로 힌트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동시에 사용자의 마이크를 뮤트시켜주어 그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순간을 주는 섬세함도 챙겼다. 오디오 음성으로 허들에 당신만 남았음을 직접적으로 안내하는 대신 재즈 음악을 튼 것이 아주 센스있고 유머러스했다고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관련한 아티클과 트윗에서 사람들이 그 상황을 즐겼음을 알 수 있었다. 딱딱한 근무 시간 속에 아주 적절하게 스며든 UX라고 생각한다.
맥은 언젠가부터 오른쪽 하단 코너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대면 즉각적으로 노트를 작성할 수 있도록 노트 팝업을 제공하고 있다. 사용자가 어느 상황에서든 빠르게 노트를 작성할 수 있게끔 하려는 선한 의도는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PC 환경에서 스크린 위치 중 가장 접근성이 높은 위치는 사용자의 현재 커서 위치 다음으로 오른쪽 하단 코너이다(오른손잡이 기준). 마우스를 던지듯이 갖다대면 코너에 안착할 정도로 도달하기 쉬운 지점인 것이다. 처음에 이 기능을 발견했을 때는 애플의 치밀함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을때도 까꿍하는 메모장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워질 수 있는지 얼마 안 가 깨달을 수 있었다.
우측 하단 코너는 스크린상 너무나도 활발히 쓰이는 영역이다. 영상을 전체보기로 볼 때 클릭하는 버튼의 위치도 우측 하단이다. PC의 넓은 화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분할 화면을 이용해 화면을 여백없이 쓰는 사용자는 흔하며, 부가적인 기능을 위해 우측 패널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매우 많다. 피그마 작업을 하면서 오른쪽 시트에 기능을 조작할 때 눈치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메모장은 방해 요소로 작용할 뿐이었다.
화면 잠금 상태에서 펜으로 화면을 톡톡 치면 메모가 등장하는 아이패드의 퀵 메모 UX는 아주 애용하는 입장으로서, PC에서도 노트를 제공하는 방식은 사용자의 니즈보다 과한 수준이 아닌가 싶다. 해당 기능을 구글링했을 때 기능을 해제하는 방법 문의 글이 많은데, 그 중 아래 문의 글이 웃겨서 캡처했다.
카카오택시를 타면 우측 뒷자석에 모니터가 설치된 경우를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터치스크린이기 때문에 사용자는 이동 중에 카카오TV의 콘텐츠를 선택해서 시청하거나 네비게이션으로 현재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간을 확인할 수도 있다. 카카오 택시 탑승자에게 카카오 TV를 홍보하고 중간중간 광고도 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카카오에게 일석이조 그 이상일 듯 하다. 역시 플랫폼이 짱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회사에서 외근갈 때 팀원이 그 자리에 탔는데 <나는 Solo>를 틀어 시청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가 팀원들끼리 오가며 수다수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였으면 조용했을 이동 시간에 아이스브레이킹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택시에서 모니터를 부착해 보여주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불호인 서비스이다. 비행기나 기차였다면 익숙하게 써왔겠지만, 멀미가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특히 택시를 탈 때면 이상하게도 멀미가 극심해 창밖을 보거나 정자세로 멍하니 가는 편인데, 앞에 고정돼 디폴트로 틀어져있는 모니터는 멀미를 돋우기에 충분했다. 조용히 앞을 보며 이동할 권리를 박탈당한 기분이 들었다면 살짝 과하겠지만, 아무튼 없는 편이 더 좋다.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서 가족 휴가를 보냈다. 5성급이라 비쌌고 부모님께 끼니를 거르는 것은 사전에 없기 때문에, 휴가지만 늦잠도 못자고 매일 아침 부지런히 나와 조식을 챙겨먹었다. 첫 날 다같이 뷔페로 내려갔는데 입구에 어디서 많이 봐왔던 키오스크가 자리잡고 있었다. 테이블링이었다. 화이트 레이블링 되지 않은 채 모니터에 크게 자리한 빨간 테이블링 로고는, 미안하지만 조금 깼다. 서울 맛집을 갈 때면 테이블링에 등록하고 길거리에서 멀거니 서서 기다리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떠올랐고, 꼭 그 상황에 놓인 것 같았다.
부모님은 필자보다 더 당황했다. 간만에 같이 떠난 휴가에는 전과 다르게 키오스크라는 과제를 뚫어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공항에서의 체크인, 마일리지 적립도 그랬고, 렌터카 센터에서 차를 등록할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 호텔 조식을 먹으려면 대기 등록을 하라니. "딸아 너가 얼른 해봐라"하며 급히 넘기셨다. 등록 후 대기하며 조금 지켜보니 몰려드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에 결국 직원이 나와서 등록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필자에게는 기존에 연상되는 테이블링의 이미지가 특급 호텔의 이미지에 해가 되었고, 부모님께는 명백한 불편함으로 느껴진 케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