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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인생콘텐츠 Apr 05. 2019

깜박깜박 신호등 아침 일상  

아침부터 집안은 고장 난 신호등 때문에 꼬이고 꼬인 도로와 같다.  



빨간 불.

오늘의 미세먼지 최악. 마스크 챙겨야겠다. 여유분으로 가득 쟁여놓은 마스크를 뜯어 식탁 위에 고이 올려놓고

첫째 아이를 깨워 식사를 챙겨준다.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앞 머리엔  헤어롤을 하고 식사를 하는 아이.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지 딴짓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늘 잠이 부족하다. 물통 챙기고 있는데 어느새 옷을 다 입은 아이가 벌러덩  침대에 누워 "엄마. 얼굴 로션 발라줘요." 한다. 여드름이 성난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난 아이의 얼굴에 로션과 선크림을 발라주는 이 시간은 유일하게 우리의 스킨십이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기에 다소 귀찮지만 정성껏 얼굴을 매만져둔다. 2~3분 겨우 이러는 시간도 더 자고 싶은 호르몬의 이상 증세는 언제쯤 끝이 날까?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다 다시 부엌에서 나머지 정리를 한다. 앗. 깨웠어야 했는데 잠깐 시간을 놓쳤다. "악.. 늦었다." 씩씩. 후다닥. 쿵쿵. 탕탕. 온몸으로 심정을 표현하며 문을 쾅 닫고 나가는 아이.  쳇. 누가 그러니 자래.. 소심히 혼자서 중얼거린다. 식탁에는 챙겨놓은 비타민과 마스크가 그대로 놓여있다.



파란 불.

그다음 미션이 남았다. "둘째. 너도 일어나야지." 귀염둥이 둘째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그 모습도 얼마나 귀여운지. 오물오물 음식을 씹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다 부엌을 정리하는데 애써 평온해진 나의 뒤통수를 치는 한마디. "엄마. 나 신발주머니 없네" 뒤돌아 바라보니 멍한 표정이다. 그 근원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아까 귀여운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한숨이, 화가 올라온다. 하나. 둘. 셋.  어느 책에서 화나가면 호흡을 3초 참으라고 하더라..."그렇구나. 어디서 잊어버렸는지 함 생각해보자." 그런데 화내지 않는 저음의 무거운 목소리가 더 무섭게 들린다는 거 그 심리학자는 알까? 어제의 행적을 는다. 학교, 피아노 학원, 놀이터.. 놀이터!......... 거기서 놔두고 온 모양이다. 예전 한 밤 중 지나치던 놀이터에 책가방이 뒹구는 모습을 보고 쯧쯧.  엄마 속 꽤나 타겠다. 싶었는데 그나마 신발 주머니임에 위안을 삼아야 하나. 친구 집 놀이터에 원정을 갔기에 차로 움직여야겠다.  자. 실내화 찾으러. 너 정신 찾으러.




이런.. 마지막 신호가 주황색을 깜박인다. 

차 키가 없다. 순간 당황한다. 아이가 발을 동동거리며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까 자신의 그 멍한 표정으로 엄마가 서 있으니 전세를 역전시킬 틈을 노리고 있다. 동선을 돌아보자. 학원, 주차장, 집 근처 마트.... 마트!  설마 마트에 차 키를 흘리고 오진 않았겠지? 전례가 여러 번 있으니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라고 믿고 싶다. 허둥거리며 키를 찾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 어느 엄마처럼 냉장고에 넣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냉장고도 열어보았다. 최대한 침착한 얼굴로 반짝이는 대안을 생각해낸다. "일단. 실내화는 옛날 언니 꺼 가져 가. 좀 커도 크록스다 하고 신어." 아이는 싫은데 큰데 어쩌고 저쩌고 툴툴거리며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출근길, 등굣길 정체는 풀리고 신호등도 정상으로 작동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고 커피를 마시며 힐링타임을 가진다. 소파에 안쪽에 뭔가 딱딱한 게 걸린다. 차 키이다. 그리고 진심 궁금한 마음에 자주 가는 카페에 글을 올려본다.



저 혹시 치매일까요?

작년 아이의 반.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요. 반 모임에서 작년 반을 물어보면 불량엄마 된 기분이에요.

그리고 아침마다 차 키, 주차해놓은 차를 찾아 주차장을 뛰어요.

저 왜 이러죠?


금세 20개의 댓글이 달린다.


정상.

지극히 정상.

저도 그래요.

전 지금 반 기억도 안 나요.

너무 챙길게 많고 할게 많아서 그래요. 누구나 그래요. 힘내요.  



순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응원에 마음이 울컥한다. 늘 좋은 엄마여야 한다는 책임감. 그걸 잘 해내지 못할 때의 자괴감. 그 와중에 내 길에 집중하고 성장하고자 하는 욕심. 엄마 그리고 나를 위한 두 개의 길에서 늘 왔다 갔다 시속 100km로 좁은 길을 질주하고 살았던 것 같다. 어느 날,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카센터를 간 적이 있다. 아무 이상이 없단다. 엔진은 굉장히 예민하니 예열도 시켜주고 무리 가지 않게 운행하라고 조언한다. 하긴 D에 놓고 시동을 끈적이 있다. 예열이란 일초가 바쁜 일상에서 있을 수도 없었다.


여행 갔던 동해안의 어느 도로였다. 시속 40km의 해안도로. 왜 사람도 안다니고 차도 많이 없는 곳에 제한속도가 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 덕에 해안도로 옆 이쁘게 펼쳐진 바다를 마음껏 천천히 감상했다. 아마도 이러한 시간을 가져보라는 의도였을까.

서행.

이제 천천히. 주변의 경치를 즐기면서 서행할 여유를 가져야겠다.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평범한 일상은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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