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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_아가의 까치발과 발레의 relevé

탈리오니의 포인트 슈즈 그리고 쉬르 라푸앙트(Sur le poite)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어릴 적 앨범이 한가득 있는 집이다.


한 번은 이삿짐센터에 짐들을 보관해 두었는데 후에 다시 짐을 찾으려 했을 때 보관업체가 문을 닫고 연락이 되지 않아 짐이 통째로 사라졌다. 제일 한이 되는 건 아직도 혜화동을 가면 심장이 쿵쾅대며 만감이 교차하는 기억들이 담긴 추억의 어릴 적 사진들도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의 앨범 보는 방법을 터득했다.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리면 특정 장면들이 내면에 상영이 된다. 눈을 감고 있어서 시커먼 암실처럼 되어있으면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인화해서 오랜 시간 바라본다.

1987년 옷차림이 가볍고 마당에 나뭇잎이 푸르기에 계절은 봄이다. 6살 터울의 우리 누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직 학교에 있는 모양이고 아버지는 일터에 계시고 어머니는 시야에 들어오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5살 꼬마는 불안하지 않다.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바로 보이는 주황색 식탁 조명 뒤로 어머니의 기분 좋게 요리 준비를 하시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소파 바로 뒤에 큰 창문을 열면 우리 집 이층 발코니까지 감싸 안고 있는 큰 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왼편을 바라보자면 윤기 나는 초콜릿 빛깔을 한 도베르만 한 친구가 턱을 괴고 꼬꼬마를 바라보고 있다.


어릴 때 지레 겁먹어서 마음 표현 많이 못해줬던 지금은 다른 곳에서 행복하게 뛰놀고 있을 아벨.. 그렇게 아벨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 뒤에 등 뒤를 바라보면 금성 텔레비전과 바로 옆에 중후한 영국 신사 같은 전축이 놓여있다.


유치원을 마치면 넘치는 흥분을 주체 못 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 전축 쪽으로 달려간다. 내 얼굴보다 큰 레코드판을 올려놓고는 표지를 쳐다보며 황홀경에 잠긴다. 레코드 케이스에는 일곱 빛깔 무지개 색보다 화려한 색상의 마스카라를 한 여인이 엘레강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곧 "우와, 천국에 가면 천사 누나야들이 이렇게 나를 불러주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목소리와 선율이 나무로 된 우리 집 거실 천장 전체를 타고서 봄바람과 함께 앙상블을 이룬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다.


오후에 늘 들려오는 애국가 수준으로 집안에 울려 퍼지던 이 곡은 키메라(한국명 김홍희)라는 아티스트의 팝페라 메들리 중에서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고'라는 곡이다. 조수미 성악가가 부른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많이 알려져 있다.

키메라는 우리나라 최초로 ‘팝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아티스트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 아티스트의 정보들을 만나볼 수 있어 다시금 찾아보자면 정말 시대를 앞섰던 한 사람 아닌가 감탄하게 된다.


1980 년도 프랑스라면 한국이 지구본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잘 모르고 다들 소를 타고 이동하며 옷도 잘 걸치지 않고 다니는 원주민 정도로 인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시기에 팝페라라는 장르를 가지고 뮤직비디오에 한복을 입고 위풍당당하게 등장하질 않나 자신의 졸업 연주회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는 사실도 참 놀라울 따름이다.


꼬마 시절 그런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이 목소리와 레코드 케이스의 디자인을 보는 5살의 강렬한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키메라의 아리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기 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전축에 레코드판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올리려고 까치발을 있는 힘껏 들어 올린다. 어머니가 도와주시려 하면 굳이 자기가 하겠다고 떼를 쓰며 낑낑댄다.


이것이 발레 댄서들이 중력을 거스르며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하는 를르베(relevé)라는 동작이라는 것을, 긴장의 연속인 무대 위에서 근육통과 애증의 관계를 가지며 죽어라 까치발을 드는 2000년도의 무용수가 되기 이전에 그때의 나는 잠재된 의식 속에서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까.


를르베라는 단어에도 포함된 르베(lev)는 '가벼운'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영어 레버(lever)의 어원이기도 하다.

'레버를 돌린다'라고 말할 때 레버는 손잡이 같은 것을 의미 하지만 이 단어의 원래 뜻은 지렛대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손잡이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가볍게 돌릴 수 있는 장치를 의미하는데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서 들어 올려지는 엘리베이터에도 레브의 어원이 들어가 있듯이 발레에서의 를르베도 발목을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이다.


밤의 여왕의 아리아의 멜로디를 듣기 위해 흥이난 아가의 순진한 까치발이 인간의 끝없는 갈망과 생존의 몸부림이 되면 뒤꿈치만 들렸던 까치발에서 아예 발가락까지 지면에서 다 띄워버리는 발레의 쉬르 라 푸앙트 (Sur le poite)가 된다.

쉬르 라 푸앙트 (Sur le poite) 동작을 했을 때 푸앙트 슈즈(Pointe shoes)의 모습

1832년 파리 오페라 극장의 무대는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꾸며져 있다. 낭만발레 작품 라 실피드(La sylphide)의 무대이다. 여자 발레 무용수들은 신비로운 요정의 모습을 하며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데 그중에 한 여자 무용수는 깃털과도 같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마치 몸무게가 없는 것처럼 자신의 발끝 하나로 전신을 위로 들어 올린다.


이 동작은 발레에서 쉬르 라 푸앙트 (Sur le poite)라고 불리는데 이 동작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녀가 신은 슈즈가 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포인트 슈즈(흔히 토슈즈라고도 불리는)이며 이 마법의 슈즈를 통해 1830년 나폴레옹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등으로 불안해진 프랑스인들을 낭만에 빠져들게 한다. 로맨틱 발레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안무가이자 무용가 필리포 탈리오니(Filippo Taglioni)는 포인트 슈즈를 만들어 자신의 딸  마리 탈리오니(Marie Tagliono)에게 그것을 신도록 하였다.


사실 지금이야 제품의 공장화에 따른 대량생산과 수많은 소재가 뒷받침이 되어 여성 발레 댄서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쉬르 라 푸앙트 (Sur le poite) 동작을 시도할 수 있지만 지금의 잘 만들어진 푸앙트 슈즈에 비해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신고서 발가락에 피고름이 터지도록 무대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온 힘을 다하며 위태롭게 움직였을까.


그러나 반드시 해야 했을 것이다. 신을 이기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인간은 어딘가 미지의 곳을 향해 위로 오르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 같다. 발레에서도 보다 높게 마치 중력에 구속되지 않아 보이는 이 슈즈와 동작으로 인해 시대적 공황 속 프랑스인들은 미지의 환상에 빠져든 게 아닐까.

가끔 발레를 처음 접할 때 남자 발레 댄서들도 포인트 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서 춤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 발레에서는 남자들도 토슈즈를 신으면서 여러 가지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기존 클래식 발레에서는 포인트 슈즈는 여성들의 전유물이고 남자는 발가락을 다 펴지 않은 드미 푸앙트(demi pointe) 상태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까치발 모습의 를르베(relevé) 동작을 수행한다.


이 까치발 상태로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남자 무용수의 강인한 힘을 더해 수많은 회전을 하기도 하고 최대한 발끝까지 지면을 밀어내면서 마치 공중에 머물러 있는 것이 높게 도약하는 점프를 수행하기도 한다.


5살 꼬마가 성인이 된 표식일까, 나는 를르베를 통해 어찌 보면 영광의 상처일 수도 혹은 아주 큰 아킬레우스의 뒤꿈치 같은 치명적 약점을 지니게 된다.


현대무용 동작은 고전 발레와 다르게 남자 댄서가 남자 댄서를 들어 올리기도 하고 다채로운 신체 움직임으로 서로 몸과 몸을 맡긴다.


한 번은 3인이 하나의 그룹이 되어 무용수 한 사람이 똑바로 내 어깨 위에 상반신을 기대고 뒤에 있는 파트너가 기대어 있는 무용수의 발을 받쳐 올려 공중에 동료 무용수가 누운 채로 이동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위에 있던 동료 무용수가 내 뒤꿈치로 곧바로 떨어졌는데 이후 대미지가 상당했다.


 그 당시에는 매일의 작업 중에 캐스팅이 이어졌고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어 연습을 계속 진행했었다.


이전부터 발레단 활동 중에는 전국으로 투어 공연을 다닐 때 좋은 컨디션의 대형 극장 무대에서 공연도 하지만 폭신한 댄스 플로어가 아닌 시멘트 바닥이나 그날 가봐야 아는 곳에서 차에서 내리기가 바쁘게 무대를 설치하고 뛰고 또 도는 일도 많았는데 발목은 이때부터 많은 대미지를 입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어떻게든 만들어 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 계속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남자는 더 높게 도약 또 도약, 더 많이 회전하고 또 회전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때도 나는 많은 회전이나 점프보다는 정교하고 세심한 동작들과 표현력에 관심이 많았는데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남자들은 전부 거울을 보고 뱅글뱅글 돌 준비부터 하고 있으니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같은 느낌으로 계속 뛰고 돌아야만 할 것 같았다.


1837년 이후 낭만주의 발레가 쇠퇴하듯이 나의 발목도 서서히 노화하면서 어느 날 강한 신호를 보냈다. 단순히 정신력만으로는 를르베를 시도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때 순간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발목으로 오를 줄만 알고 내려가는 연습은 하지 않았구나"


그 시절의 나는 치열한 경쟁 중에 '라 실피드'에서 중력을 이기려 한 탈리오니처럼 위로 튀어 오르기 위한 발롱(ballon : 무용수가 공처럼 가볍게 튀어 오르는 동작)만을 시도하였다.


큰 산에 오를 때 정상에 오르는 길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집중해서 하산해야 나의 집으로 무탈하게 돌아올 수 있듯 세상 일들 또한 비슷한 듯 느껴진다. 더 높게 뛰고 더 많은 회전을 위해서 발목을 들어 올리는 를르베 동작만을 수 없이 시도했었지만 뒤꿈치를 바닥에 내려놓는 재활 운동을 할 때마다 다시금 오름만큼이나 내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 발목이 기억하고 알아간다.


발레 동작을 촬영할 때 포토제닉을 뽑자면 를르베나 쉬르 라 푸앙트 (Sur le poite) 동작이 수행되는 최고 정점의 이미지를 뽑지 발을 내려놓는 동작을 매거진 표지로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멋스러운 해외 댄스매거진을 보아도 남자 발레 댄서들이 트램펄린을 타고 공중에 떠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힘을 빼고 내려놓은 자세의 모습은 본 기억이 희미하다.

발레 수업을 하게 되면 막 포인트 슈즈를 신고 쉬르 라 푸앙트 동작을 시도할 수 있게 된 학생이나 취미 발레 수강생분들의 경우도 곧바로 두 발을 옆으로 펼치는 에샤페(echappe: 도망치는, 미끄러지는 것 같은 모습에서 이름이 생겨났고 모은 두 발을 어깨넓이만큼 양 옆으로 한 번에 밀면서 를르베 또는 쉬르 라 푸앙트 동작 후 다시 다리를 모으는 동작) 동작을 빠르게 반복하면서 워밍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나는 얼른 달려가 오르기 위한 동작만 하지 말고 내리는 힘도 똑같이 병행하면서 다음 움직임들을 준비하라고 권유한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장르로 뮤직비디오에 한복을 입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키메라는 자신의 딸이 납치되는 충격적인 일이 있은 이후에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가족들과 또 다른 삶을 살았다고 하고 실제로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서 그 모습을 스치 듯 본 기억이 있다.  


이 글을 보게 된 삶의 무대에서 오늘도 춤추는 당신과 특히 취미 발레 애호가분들. 현재 무대 위에 오르는 무용인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오르는 것만큼이나 내려놓는 것에 대한 것도 잊지 말고 병행해보면 어떨까

 

힘으로만 중력에 반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오름만큼이나 내림 또한 익숙해질 때 이것이 몸과 마음에 좋은 밸런스를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나누어 본다.

무용수는 쉬르 라 푸앙트 (Sur le poite)로 관객의 감탄사를 불러낼 때만이 아니라 무사히 극을 마쳤을 때 마지막 커튼콜에서 진정한 함성과 박수를 받을 수 있다.

2019 안무작 'TANZ OPERA 춘향' 커튼콜 中





https://youtu.be/v4cQz5dfMt4

한쪽 발로 발레의 를르베(relevé) 동작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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