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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Aug 05. 2023

맥락을 잃어버린 사람들

왜 이렇게 흉흉한 사회가 되었나


뉴스에 연일 안타까운 소식이 보도된다.

꼭 유명한 인물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나는 요즘 실패한 개인이 많아졌음을 체감한다.

이성의 고삐가 끊어진 것 같은 사람부터, 될 대로 돼라 식의 사소한 반항 혹은 방황(?) 중인 사람들까지.

퇴사하고 여행 간다고 해서 번아웃이 극복되는 게 아니고, 남들까지 못살게 군다고 해서 이미 망한 것 같은 본인 인생이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회가 맥락을 잃어버렸음을 인정해야 한다.

맥락이 무엇인지는 밑에서 설명하겠지만, 풍성한 맥락이 부재한 이유는 오늘날 개인이 비대해져서 최대자아가 되어서인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구매력을 갖게 된 개인들에게는 앞선 시대의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옵션, 선택, 취향 등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개인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쾌락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아가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것을 믿는지가 중요해졌고 개개인은 타인과 섬세하게 구별된다.

“나답게 살자”로 브랜드들의 마케팅 슬로건이 뽑히는 이유가 있다.



최대자아에서 비롯된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실패를 개인적인 원인으로 해석하게끔 만든다.

왜냐, 세상에 나 말고 누가 있는데?

“남들은 코인으로 다 벌 때 나는 바보같이 뭐 했지“ 이렇게 문제를 자신에게서 찾는 식이다.

자아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모두 개인 탓이다.


인간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실패에 직면했을 때 무기력해진다.

내가 믿고 있던 비전이 무너졌거나,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바뀌는 게 없는 상황을 깨달을 때, 일상적인 실패를 겪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실패를 개인적인 원인으로만 설명할 때 무기력은 절망이 되고 번아웃 및 우울증까지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인 상실이 생겨도 사회적인 위안을 받는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상실을 경험한 개인을 돌보는 공동체, 즉 맥락이 없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상호관계가 약한, 맥락이 없는 개인은 위험하다.

자기의 삶 이상의 것에 헌신할 줄 모르는 삶은 사실상 부실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의미와 희망, 목적을 가지려면 어떤 큰 맥락 속에 있어야 한다.

이 맥락은 국가, 가족, 커뮤니티 같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든든한 배경 같은 거다.

어떠한 맥락 속에서의 개인의 실패는 덜 영속적이고 파급효과도 덜 광범위하다.



그렇다면 개인주의만 타파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사실 우리가 공공의 이익은 등한시하고 사적 이해관계만 따지게 된 것은 국가에 대한 믿음에의 배신, 가족의 붕괴, 신에 대한 믿음의 결여 등등 역사 속의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내재화된 것이기 때문에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 사그라들며 사람들이 자기 삶에 초점을 맞추고 내면에서 만족을 찾게 되면서 완충장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자기 자신보다 큰 어떤 것에 대한 애착이 생겨야 한다.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실체가 클수록 우리는 거기에서 더 많은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맥락을 찾으려면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늑대들은 무리에 왕따가 생기면 그에게 가족을 만들어준다고 한다. 가족의 일원이 되면 책임감이 생기고 삶의 의미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도 자신의 성공과 실패에만 몰두하기보다 공동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기부나 공익 증진을 위해 돈이나 시간을 들이는 희생은 우리에겐 이미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하다.

혼자서 쾌락에 빠지느니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더 즐겁고, 내면의 공허함을 의미 있게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학습해야 한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하던 활동을 타인이나 전체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활동, 예를 들면 무료 급식소 봉사나 공공시설물 청소, 모금활동 등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최대자아를 지키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자기가 변화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데에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력을 동원하여 공동체의 혜택과 대가를 취하는 선택을 하는 개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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