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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Jul 13. 2020

매일매일,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야구장

전정상(아마추어 야구 동호인, 화성기아자동차 야구협회장) 님과의 인터뷰

약속시간보다 조금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경기장에 들어가 있다는 문자 메시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서둘러 입구를 찾아서 들어가 보니 관중석에 선 채로 신이 나서 구경하는 모습이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자신이 뛰는 경기도 아니고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 날도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구장에 들어가 있는 모습만 보아도 마냥 가슴이 뛴다는 사람. 인터뷰 장소를 야구장으로 잡은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지글거리던 태양이 조금씩 기울어지는 나른한 오후 시간. 땅, 하는 파열음이 시원하게 야구장에 울려 퍼진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모처럼 단체연습을 나온 고등학교 야구부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야구 방망이에 딱 들어맞는 공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릴 때 마다 보는 사람의 기분도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으싸으싸 서로 기운을 북돋아 주는 함성 소리도 기운차다. 서로 잘했다 칭찬하며 힘내라 응원하며 한 팀이 성장해 가는 공간에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왠지 설레는 마음이 생겼다. 아 이런 맛에 야구에 빠지는 구나, 잘 몰랐던 운동의 매력이 성큼 가슴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아마추어 야구 동호회에서 활동한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야구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기아자동차 공장에 입사를 하고 나서는 17년 동안은 공부만 했어요. 공고를 졸업하고 여기에서 일하면서 대학부터 석사 박사까지 다 마쳤으니까. 그렇게 죽어라 공부를 하고 나니까,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내 몸을 제대로 쓰는 운동을 한번 해 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십 년 전쯤에 시작을 했죠. 


회사에서 같이 운동을 하는 팀이 있는 건가요?

우리 공장에 근무하는 임직원이 15,000명 가까이 되는데, 우리가 뛰는 리그만 해도 소속팀이 10~12개 정도가 있어요. 그런 리그가 2개. 한 팀마다 15명 정도는 되니까 그 인원만 해도 아마추어 야구팀 치고는 꽤 규모가 큰 편이죠.  


직장을 다니면서 운동을 하는 게 쉽지가 않을 텐데요?

우리 공장이 주간조, 야간조 2개로 나눠서 돌아가니까, 주간조로 근무할 때는 오후 3시 반에 퇴근을 하고 나서 4시 반 정도에 모여서 운동을 하는 거고, 야간조로 근무할 때는 출근하기 전에 미리 아침 11시 정도에 모여서 같이 운동을 하는 거죠. 


생각보다도 더 열심히 하시네요. 팀 별로 경쟁 같은 게 있는 건가요? 

그럼요. 아마추어 야구라도 게임은 이기려고 하는 거니까요. 승패를 보는 거잖아요. 매년 12월마다 ‘야구인의 밤’ 행사를 하면서 개인타이틀 시상도 해요. 타율 홈런 포수 이런 걸 프로처럼 똑같이 하죠. 각자 개인기록을 관리하는 사이트도 있어서 다들 신경을 쓰죠. 그걸 높이기 위해서 경기 전에 미리 모여서 연습도 하고 개인적으로 레슨도 받고. 더 뛰고 싶은 사람들은 주말에 또 다른 야구동호회에 가입해서 또 뛰고 그러죠. 



야구연습을 할 때 애용하는 선글라스를 낀 모습으로는 영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젊어 보였다. 늘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운동을 하는 게 취미다 보니 잘 그을린 피부도 유난히 반짝반짝 건강했다. 그래서 “남은 정년이 6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내색은 안 했지만 살짝 놀랐다.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삶은 죽은 삶처럼 느껴진다”는 말까지 들으니, 운동이 주는 마력 같은 에너지에 흠뻑 젖어 있는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열심히 일하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부족했던 공부도 하면서 정신 없이 흘려 보낸 세월을 한스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세월도 나름의 의미가 컸으니. 비록 조금 늦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몸을 쓰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젊은 청춘이었다. 해도 해도 끝없는 일과 공부로 어깨가 무거운 나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껏 뛰고 달리고 땀 흘리며 찾은 내 몸의 기쁨이었다. 


어렸을 때도 꿈이 야구선수였나요?

어렸을 때 운동신경이 그렇게 발달하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야구를 편하게 경험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죠. 마땅한 야구 장비도 없었으니까. 중학교 때만 해도 글러브가 없어서 비료 포대를 가져다가 손에 끼는 장갑을 만들고, 야구공 대신 가벼운 테니스 공을 가지고 놀았죠. 여럿이 공을 칠 만한 공간이 없으니까 몽둥이로 치고 비료 포대로 잡고 하는, 서로 주고받는 캐치 볼 정도나 할 수 있었죠.


지금은 팀에서 맡고 있는 포지션이?

제가 2루수입니다. 사회인야구에서 제일 편한 자리라고들 하죠(웃음). 사회인야구에서는 그쪽으로 공이 안 와요. 2루 쪽으로는 마음대로 치지를 못하니까. 공도 잘 안 오고 막 심하게 달릴 일도 없는 자리에요.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좀 있으니까요. 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으니까, 더 젊은 친구들한테 최대한 뛸 기회를 많이 주려고 양보도 하는 편이에요.  


같이 뛰는 팀원들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제가 55살인데 평균연령으로 하면 47~48세 정도? 나이가 그리 적지는 않아요. 근래 한 10여년간 뽑은 신입사원이 별로 없었으니까. 화성공장의 평균나이도 43~44세 정도 돼요. 덕분에 팀에서는 40대 초반만 되어도 청년이라고들 합니다. 


주로 경기는 어디에서 하나요? 

오전 11시쯤 출근 전에 하는 경기는 보통 회사에 있는 구장을 이용하는데요. 퇴근 후에 하는 경기는 화성 드림파크 야구장에서 합니다. 야간 연습을 하려면 조명시설이 필요한데 회사에 있는 구장에는 조명시설이 없어서 해가 지기 시작하면 쓸 수가 없거든요.    


지금까지 다녀본 중에서 제일 좋았던 꿈의 연습장이 어디냐는 질문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화성 드림파크 야구장”이라는 대답이 성큼 나왔다. 드림파크 야구장에서 꿈을 키워가는 리틀 야구단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시설 수준인지는 감을 잡지 못했었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운동시설이 있구나 정도겠지만, 야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구장이란다. 


구장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나나요? 

그냥 흙, 맨땅인 곳이 많죠. 저희 야구단도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런 맨땅에서 시작했어요. 흙 바닥으로 되어 있는 곳들은 비가 오면 물도 고이고 발도 빠지고 바닥도 불규칙하고, 여러 가지로 선수들 부상 위험이 아무래도 높죠. 인조 잔디도 짧은 게 있고 긴 게 있는데, 드림파크 야구장에 깔린 잔디는 운동하기가 참 좋아요. 짧으면 물기가 묻으면 미끄럽거든요. 회사의 구장도 이렇게 바꿔달라고 건의를 하고 있죠. 


드림파크 야구장은 리틀 야구단만 이용하는 줄 알았어요.

전체 9개 구장이 있는데요. 그 중 4개는 리틀 야구단이 쓰는 용도고, 여성용 구장이 하나 있고, 나머지 4개는 우리 같은 사회인 야구단, 성인 아마추어 야구단들이 사전에 신청해서 사용할 수가 있어요. 덕분에 퇴근 후에 야간경기도 맘 편하게 할 수 있고, 이렇게 공장 가까운 데에 있으니까 우리야 좋죠. 사람 몰리는 주말이 아니라 평일에 주로 이용을 하니까요. 


그럼 누구보다도 드림파크 야구장에 자주 들르는 분이겠어요.

직접 이용해 본 소감은 어떠세요?

야구인으로서 평가하자면 최상이죠. 이런 야구장을 갖춘 곳이 전국에 없어요. 조용하고 시설도 좋고. 야구 경기에만 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괜히 경기도 잘 풀리는 것 같고(웃음). 퇴근하는 길에 항상 드림파크 야구장을 지나게 되는데요. 이 옆을 지날 때 누구라도 경기를 하고 있으면 저도 바로 막 달려가서 같이 뛰고 싶어져요. 


한참을 침이 마르도록 드림파크 야구장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또 신이 났다. 든든한 직장 잡아서 착실하게 일하는 자식 자랑이라도 하듯,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야구장 자리가 원래는 미 공군의 사격장이 있던 곳인 줄 아느냐고 되레 질문도 받았다. 


1990년부터 기아자동차 공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한창 신입사원으로 일 배우던 시절부터 꽤나 익숙해진 2000년대까지도 공장 위를 날아다니는 전투기의 소음을 들으며 일한 셈이다. 그리도 시끄럽게 웅웅거리고 쿵쿵거리는 전투기 소음이 하루 종일 들리던 사격장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단다. 미 공군의 사격연습장이 있던 마을의 변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 본 산 증인이었다. 


그럼 비행기가 내는 소음을 직접 겪어보신 거네요?

그렇죠. 기아자동차공장이 미 공군의 사격장이 있는 매향리 근처니까요. 매일 일하다가 밥 먹으러 나오거나 집에 가려고 나올 때면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가 쿠앙~ 하고 엄청 나죠. 이게 한 두 대가 나는 게 아니라 연속으로 계속 날아오니까 그 소리가 대단했어요. 계속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자체가 괴로운 소음이죠. 여객기 하고는 달라요. 전투기는 낮게 날고 속력도 빠르니까 소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완전 달라진 모습이 낯설겠어요?

솔직히 이렇게 달라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변화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게다가 그렇게 비행기가 날고 전투기가 폭격을 하던 사격장 자리를 야구장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이용까지 하고 있으니, 이게 상전벽해다 싶죠. 이렇게 평화롭게 야구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다시 가까운 곳에 군 공항이 들어올 수도 있다던데?

같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쪽 지역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하죠. 그 엄청난 소음을 겪어봤으니까.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다시 소음이 나기 시작하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걸 잘 아니까요. 그 고통을 겪어본 이들은 당연히 반대를 할 수 밖에 없죠. 방조제 쪽으로 군 공항이 들어오면 우정읍, 장안면 쪽에 있는 사람들도 소음 때문에 엄청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전투기 사격연습장이 사라지고 드림파크 야구장이 생긴 건, 

어떤 의미가 될까요?

이런 장소 하나가 생기는 게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오죠. 일단은 이런 구장이 생겨나야 사람도 뛸 수가 있죠. 야구라는 게 마땅한 공간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운동이니까요. 이렇게 좋은 운동장소가 하나 생기면 아마추어 구단도 많이 활성화가 되죠. 같이 공을 던지고 치고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거니까요. 드림파크 야구장 덕분에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마추어 야구단 활동이 많이 늘어난 걸로 알고 있어요. 


일주일마다 한 번씩 밤낮이 뒤바뀌는 교대근무만 어느 새 삼십 년 이다. 그 기나긴 날들의 뻔한 일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수행해 온 성실한 일꾼이다. 그 삼십 년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공장으로 향하던 길에서 들리던 소리가 어느 날 문득 달라져 있었다. 공장 바로 위 하늘을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던 비행기가 당연했던 게 십 수년, 어느 날 미 공군의 사격장이 문을 닫더니 머리 위를 울려대던 공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렇게 찾아 온 평화로운 출퇴근길이 또 십 수년 이어졌다.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를 공장의 지붕 위를 날던 무시무시한 비행기가 사라지고 그곳에는 넓은 공원과 야구장이 생겼다. 퇴근하는 시간이 소풍 가는 것 마냥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누가 먼저 점수를 내나 짜릿한 겨루기도 하고 같이 뛰며 땀 흘리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면 하나 둘 야구장으로 모여 든다. 경쾌하게 공이 맞는 소리, 속 시원하게 포수의 글러브에 공이 꽂히는 소리, 부웅하고 휘두른 방망이가 내는 바람 소리까지 다 들리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공이 잘 맞지 않을 때는 짝짝 기운을 북돋우는 응원의 박수소리가, 담장을 넘어가는 공에는 우와 탄성 소리가 귀에 가득 내려 꽂힌다. 비행기 소리에 가려지지 않은, 아직 비행기 소리가 앗아가 버리지 않아서 참 다행인 사람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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