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놀라운 현장이었다. 매일매일이 다르게 느껴졌다. 덜어내는 작업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공간이 될 수 있다니. 지금까지 뜸 들인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했던가. 정말 생각한 그대로, 오더 한 그대로 자르고 가르고 사라졌다. 그러고 나니 그간 나도 모르던 새로운 모습의 공간이 드러났다.
왕벚나무 가로수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강정동>으로 가득 들어왔다.
어둡고 환기도 용이하지 않았던 공간에 해가 가득 들어차고 바람이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공간이 호흡하기 시작했다. 룸과 룸 사이의 벽을 없애고 하나로 만든 공간에는 여백이라는 요소가 생겼고 남쪽으로 향한 창을 키우기 위해 털어낸 외벽 밖에서는 높은 하늘과 파란 먼바다, 푸르른 벚꽃나무가 쏟아지듯 들어오고 있었다.
천장까지 털어내자 예상대로였다. 높아진 천정과 자연스럽게 노출된 콘크리트 면이 드러나면서 집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창 아래 벽을 털어내고 출입문을 넣을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한 눈에도 한층 밝아지고 숨이 쉬어지는 통로가 생겼다.
낮에도 불을 켜야할 정도로 어둡던 곳이 창 아래의 벽을 털어내고나니 햇볕이 가득 들어왔다.
반대로 놀라운 것들도 마주해야 했다. 아무리 겨울이 따뜻한 제주라지만 외부와 맞닿은 벽이 종잇장처럼 얇은 보온재 달란 한 장을 마감된 벽이란 걸 알았을 때엔 이 정도라면 건축 그만두어야 할 업자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설비 자재 사러 갔을 때 살짝 물어보니 아직도 이 지역에서 이것저것 지으러 다닌다고..)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화가 치밀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종잇장같은 단열재와 그저 문틀 하나 들어냈을 뿐인데 엉성하기짝이없는 골조들
꼭 덜어 내야 하는 부분만 포함했는데도 철거 견적이 1천5백만 원이 나왔다. 생각보다 큰 금액에 놀랐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조금 조정하여 1천3백만 원으로 시작. 그러나 건물 주변 수목정리 철거가 들어가서 결국 1천5백만 원이 되었다. 그 후 공간의 다용도실 천장 철거 추가, 타일공사 끝나고 마지막 마무리 폐기물까지3회에 걸쳐 총 2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 소요됐다.
다 덜어내고 난 <강정동>
그래도 뭔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더 이상 고인물같지 않았다. 그간 마음이 꽤나 불편했었나 보다.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건물이 잃어버린 생명력을 찾아가는 것처럼,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는 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