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Oct 20. 2022

프로젝트 강정동

제11화 안색을 바꾸다

누군가 그랬다. 그냥 겉에 페인트칠만 다시 하라고. 그럼 된다고.  뭐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겉이 그럴싸한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 식은 싫었다.

나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남 들어가고 싶을까. 우선 내가 들어가고 싶어지는 공간이어야 했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꾸며대거나 필요 이상의 행위에 이따금 비릿한 감정이 든다. 애쓰는 것이 역력한 감정노동자의 밝고 목소리, 이른 봄에 완연한 봄처럼 보이려고 뽑아내기 쉽게 화분째 땅에 심긴 식물원의 꽃, 계절마다 모종을 심었다 뽑았다를 반복하는 화단들. 뭐든 제대로 된 진정성 하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밖으로 향해있는 시선가득 찬 행위들이 탐탁지가 않다.


진정성을 좋아한다. 앞과 뒤가 다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좋다. 거짓이 없는 것, 눈속임이 없는 것, 타인에게 예뻐 보이려고 한 치장과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는 것에 끌린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느리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당당하다.


<강정동>을 리뉴얼하는 데 있어서도 '나'이고자 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고자 했다. 남 의식한 그저 그런 공간으로 만드는데 돈과 시간, 에너지를 들이고 싶지 않았다.  


장마 전 외부 마감 완료를 목표로 그간 차근차근 부지런히 달려왔다. 제주의 장마는 육지보다 이르다. 월 초 철거로 시작된 공정은 유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 무조건 창호 설비와 방수/페인트 작업까지 외부 마감끝내야 했다. 내부야 비가 와도 진행이 가능지만 외부는 일단 장마 시작되면 바싹바싹 마르는 해가 내리는 기간이 올 때까지 일단 멈춤으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장기간의 장마를 기록했던 지난해를 떠올리며 장마가 지기 전 어떻게 해서든 외부는 마무리하려고 스케줄을 맞추고 또 맞췄다. 두 손발이 척척 맞는 베테랑 파트너들이기에  큰 변수만 없다면 맞춰둔 일정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작업자인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외벽 페인트 시공은 건물의 안색을 밝히는 공정이다. 누군가는 공간의 속 화이트는 이제 진짜 지겹다 하지만 그래도 명불허전 화이트다. 어둑어둑했던 공간을 밝고 맑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처럼 깨끗한 화이트로 간다. 선택은 더없이 탁월했다. 화이트 톤의 외벽은 그동안 칙칙해 보였던 주홍빛 기와마저 빛나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보낸 세월보다 더 나이 들게 보이는 건물에게  페인트 작업단순히 시간을 지우고  안색을 밝히는 작업이 아니다. 진짜 제대로 된 집이 되기 위한 공정이다. 물안 새는 집이 되기 위한 '방수'라는 기능을 보완하고  다진다. 너무나도 고대하던 작업이다. 그간 여기저기 어딘가에서 스미는 습기와 물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던가. 비가 온다는 예보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고 밤잠을 설다.  기와가 얹어진 지붕을 제외한 모든 면에 난 크고 작은 크랙을 꼼꼼히 확인하고 운 뒤 방수작업을 하고 건물 노화 방지용 페인트를 바른다. 인간도 건물도 최대 관심사는 노화방지였다.



벽체 페인팅을 끝내고 마지막 스카이 장비가 들어온다. 그동안 유리 없이 덩그러니 끼워져 있던 창호 틀에 유리까지 끼워줄 차례. 깨끗한 유리를 끼우고 틀과 유리 사이의 틈을  실리콘으로 꼼꼼히 쏘아준다. 창호 작업 끝나고 다시 페인트 팀이 들어왔다. 주차장과 외부 바닥을 우레탄으로 코팅할 차례. 비로소 외관을 마무리됐다. 곧 장맛비가 쏟아지기라도 할 듯한 무척 흐린 날이었다. 이제 비가 와도 안심, 발 뻗고 잠잘 수 있다. 비로소 나는  큰 안도를 한다.


제10화 없는 마감

제11화 안색을 바꾸다

제12화 <강정동>에서 나를 엿보다


작가의 이전글 프로젝트 강정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