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클베리 핀의 모험](3) 청소년의 반사회적 경향성

사춘기의 건강한 공격성

청소년에게 금서가 된 청소년 이야기


Mark Twain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은 이 책에서 인종적 비방 사용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묘사와 관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부 비평가들은 이 책이 인종 차별적 고정관념을 영속화하고 있으며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이 역사적 배경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맥락에서 읽고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 책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결정은 학군이나 조직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미국의 사회적 상황에서는 인종차별적 관념은 매우 민감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이슈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 포인트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볼 수 있는 입장에 있다.


부모양육의 부재를 경험한 허클베리가 사회적으로 치뤄야 할 통과의례를 어떻게 치뤄가는가를 보는 것은 오늘날의 청소년들의 사회적 방황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던져준다.

이 소설은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청소년 주인공의 반사회적 성향과 공격성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 하는 것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백미에 해당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양육부재로 방황하는 주인공의 반사회적 경향성의 건강한 면을 강조하고자 하며, 저자가 이러한 반사회적 경향성을 청소년기 성장의 동력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만일 허클베리의 반사회적 행동을 승화시키지 못하면,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이 책은 문제 청소년의 비행을 나열한 저급한 수준의 소설로 오해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적절한 안내를 받으면 이 소설을 읽는 십대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소설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주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청소년을 지도하는 교사, 부모, 학생은 이 소설을 통해 인종 차별, 사회 정의, 개인 정체성과 청소년기의 반항, 공격성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한 대화와 토론을 시작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부모양육의 부재


이 소설의 주인공은 13세의 나이로 시작하여 14세로 성장해 가는 과정 중이다.

주인공 헉의 어머니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보면, 매우 어린 시절에 죽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허클베리 핀의 아버지의 이름은 팝 핀(Pap Finn)이며, 그는 술 중독자로서 늘 술에 빠져 살면서 아들인 허클베리를 자주 괴롭히고 함부로 대한다.

팜 핀은 도시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돈도둑질을 하고, 자신의 아들의 돈(이 돈은 톰 소여와 함께 강을 따라가며 번 큰 돈이다)을 훔친다.

아버지는 말썽꾸러기인 아들을 양육하거나 교육할 수 있는 마음이 없어 도망쳐 다니는 삶을 강요하며 아버지로서의 마인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팜 핀의 행동으로 인해 허클베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두려워학, 그에 대한 분노와 상처를 안고 있다.

결국 아버지의 양육 부재는 아들로 하여금 방황하는 사춘기를 보내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허클베리 핀의 반사회적 행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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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허클베리가 보여주는 반사회적 행동은 크게 다음 세 가지이다.


① 파괴성

허클베리는 당시로서는 사회적 관습과는 반하는 반사회적 행동으로서 노예인 짐이 도망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돕는다.

② 훔치기

허클베리는 돈을 훔치거나, 보석과 돈이 든 가방을 훔치는 등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귀중한 물건을 훔친다.

③ 거짓말 하기

허클베리는 수많은 거짓말을 하는데, 거짓말하기를 마치 밥먹듯이 한다.

심지어 친구인 톰소여의 고모집에 가서 자기가 톰소여라고 속이지만 나중에 톰소여가 직접 고모집에 오게 되면서 매우 복잡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보면, 허클베리 핀은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 저곳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질러 범법자로 보일 정도로 불량한 청소년이다.

그는 소속감이나 집단적인 생각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삶의 방식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특히 주인공은 사회적 지위나 권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교사나 선생님 등의 권위 있는 인물들에게도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청소년의 통과의례로서 반사회적 경향성


허클베리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 가장 잘 분석하고 설명하는 심리학자가 있다면, 그는 바로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일 것이다.


① 파괴성


위니캇에 의하면, 청소년기에 나타나는 반사회적 경향성은 매우 정상적인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정서발달 과정에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어려움이 청소년기에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과정에서 표출된다.

그래서 위니캇은 청소년의 반사회적 경향성을 존재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희망적 요소로 본다.

위니캇이 보기에는 청소년기에 이런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 소위 사회의 기존 질서나 아버지의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범생’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역으로 말하면,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한 양육을 받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자녀를 보는 관점은 일반적인 상식과 완전히 달라진다.

건강한 자녀는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공격성을 잘 표출한 아이이고, 청소년기가 되면 반사회적 경향성을 잘 드러내는 아이이다.

모범생이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그런 것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부모가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모범적인 청소년은 늘 불안과 우울함을 가지고 살아간다.

유아기에 엄마와의 접촉을 상실하면 엄마에 대한 신뢰 대신 내면에 불안이 들어와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발견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유아기부터 엄마에게 공격성을 제대로 드러내 본 적이 없어, 공격성은 내면의 밑바닥에 원시적 파괴성의 형태로 억압된다.

이런 형태로 억압되면, 그 아이의 주변에는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 공격하는 자들, 억울하게 만드는 자들로 포진된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자주 왕따를 경험하는 아이들 중에는 엄마와의 접촉상실로 비롯된 원시적 파괴성이 억압된 경우가 많다.

공격성이 억압되면 누가봐도 그 사람은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사물 취급당하기 쉽다.

이런 아이에게도 청소년기에 기회가 찾아온다.

곧 그런 아이도 오랫동안 억압되어 왔던 원시적 파괴성을 반사회적 경향성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허클베리 핀이 바로 그러하다.

소설 중 어머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아버지는 술중독자여서 자기 밖에 모를 뿐 아니라, 아들의 돈을 빼앗고 아들을 이용해 여러 가지 이익을 챙기려 드는 사람이다.

허클베리는 아버지로부터 어른다움이나 어떤 권위도 배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허클베리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파괴성을 드러내는 것은 억압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위니캇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② 훔치기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을 흔든 희대의 탈옥수이며, 탈옥 후 907일 동안 잡히지 않고 신출귀몰하게 도망다녔던 신창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는 중,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학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공부에 재미도 없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출을 시작했으며, 결국 중학교 진학한지 3개월 만에 퇴학당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남의 밭과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쳐먹고 동네에서 닭, 수박서리를 시작한 것이 도둑 인생의 시작이었다.

처음 경찰서에 끌려간 것은 14세 때였다.

어느 날 서리를 했는데, 서리를 당한 당사자도 그냥 넘어가고자 했던 것을 신창원의 아버지가 아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답시고 경찰들도 훈방 조치한 아들을 굳이 다시 끌고 와서 소년원에 넣어달라고 사정하여 소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소년원을 다녀 온 것을 계기로 자주 감옥을 들락거렸는데, 감옥을 한번씩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의 범죄를 대범해졌으며 결국에는 강력범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도둑질은 가난한 집안의 아이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상무로 있는 K씨에게 어느 날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고등학생 아들이 백화점 상품을 훔치다 걸려서 조서를 꾸미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K씨는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경찰서로 가보니, 5 명의 친구들이 한 팀을 구성하여 절도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고등학생이고 초범인 관계로 백화점측에서 전도 유망한 청소년 아이들에게 처벌을 원치 않는다하여 적절한 보상 절차를 거쳐 하루의 구치소 수감 후 그 다음 날 풀려날 수 있었다.

범죄 당일 경찰서에 다녀와 집에 가서 아들의 방을 뒤져보니 아들은 초범이 아니었다.

침대 밑에 백화점 상품들이 즐비하게 쌓여 있었다.

그 물건들은 아들과 전혀 상관없는, 여성 핸드백, 사이즈도 안맞는 남성구두, 여성 외투 등 열가지가 넘는 상품들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함께 공모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모두 부유한 상류층의 자제들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아들과 그 친구들을 불러 모아 K씨가 물어보았다.


"너희들은 뭐가 부족해서 별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그렇게 훔쳐댔니?"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무도 자신이 왜 그런 물건들을 훔쳤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위니캇은 청소년에게 일어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분명한 이유를 알고 있다.


"물건을 훔친 아이는 훔친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권리를 갖고있는 어머니를 찾고 있는 것이다."([놀이와 현실]에서�, 위니캇)


즉, 그런 아이의 무의식 속에서는 ‘나는 뭔가 도둑맞은 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더 추적해 들어가보면, ‘나는 엄마의 따뜻한 품을 도둑맞았다’로 귀결된다.

K씨의 경우와 같이 그런 일을 당하면, 부모는 자녀를 도둑을 몰아갈 것이 아니라, 위니캇의 말대로 ‘훔치고자 하는 충동’ 밑바닥에 희망이 놓여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청소년기에 훔치는 행위를 놓고도 이런 희망을 갖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리 문화'이다.

그것은 청소년 아이들의 훔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고 ‘서리’로 용인하고 웃으면서 너그럽게 넘어가 주는,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문화 장치이다.

위의 신씨 사례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행위를 청소년기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통과의례’로 봐 주지 못하고 범죄시 함으로써 아들을 진짜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위니캇은 반사회적 경향성으로서 훔치기는 단순히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하는 것만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청소년기에 이러한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했을 때, 그 역소원(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을 다른 형태로 성취하는 방식, 프로이트의 개념이다)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는 것, 또는 강박적으로 쇼핑하기, 뚜렷한 목적없이 외출이 잦은 것, 학교나 직장에 무단결석을 밥먹듯이 하는 행태 등으로 나타난다.

물론 극히 일부 여성들이 생리때가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벽이 발동하는 것도 청소년기에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니캇은 탐욕을 훔치기의 전조로 본다.

젖을 잘 먹지 못한 아이는 탐욕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아동기에 탐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탐욕은 훔치기로 발전한다.

아동이 밤에 자는 중에 오줌을 싸는 야뇨증은 유아기에 젖을 잘 주지 않은 엄마의 몸을 오염시킬 권리가 있다는 무의식의 주장이다.

야뇨증은 특히 동생이 엄마의 젖을 독차지하고 있을 때 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③ 거짓말 하기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에게 <정직하라>고 훈계한다.

그렇게 강조하는 부모는 자신이 자녀의 시기에 과연 얼마나 정직했나를 물어 보면 과연 그런 교훈이 합당한가를 분별할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철저하게 정직했다고 생각하면, 그는 강박증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

<Ted 강의>에서 Kang Lee라는 사람이 세계각국의 2세에서 6세 사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거짓말 시험 결과를 말했다.


그에 의하면,

3세가 되면 약 20%가 거짓말을 하고,

4세가 되면 약 50%가 거짓말을 하고,

5세가 되면 약 80%가 거짓말을 한단다.


6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가 문제다.

그는 자폐증, 또는 아스퍼거 증후군에 속하든지, 아니면 심각한 강박증 증상자이다.

이런 부류의 증상으로 가진 아이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청소년기가 되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 빈번해진다.

청소년기는 성적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제1자아(본래적 자아)와 제2자아(사회적 자아)로 분화한다.

청소년기에 이러한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아이는 세균덩어리의 세계에서 무균자로 살게 된다.


프로이트는 청소년기의 정상적인 발달을 언급하면서, 제 1자아와 제 2자아의 분화를 강조한다.

청소년기가 되면 누구나 제 2차 성징이 일어나며 성적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성충동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벼락이나 번개처럼 압도적인 형태로 몸을 장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소년은 그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쩔쩔 맨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남자아이는 자위행위를 알게 되고 또 몽정까지 하게 되면서 감출 것이 많아지게 된다.

아동기에는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오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사춘기에 성적 개념이 들어올 때 감출 것이 많아지면서 자아를 둘로 분화시킨다.

제 1 자아는 속을 감추는 겉모습의 자아이고, 제 2자아는 속에서 성적으로 음란한 생각을 하는 속사람이다. 친한 친구들과 모이면 속마음을 음란한 이야기로 나누게 되고, 야한 동영상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부모님께는 일체 비밀이어야 한다.

그래서 제 1 자아는 제 2 자아를 감추게 된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도 죄책감을 갖는다.

자신이 솔직하지 못하다는 죄책감 말이다.

이런 아이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이 시기의 여자아이들은 남자 같지는 않겠지만, 남자 청소년은 100% 야동을 보게 되고 자위행위를 하게 된다.

어떤 여성 성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자 청소년은 60%가 그렇다고 한다.

만일 고등학생 남자아이가 아직 한번도 야동을 보지 않았다거나 자위행위를 해 본적이 없다거나, 또는 몽정을 해 본 적이 없다면, 그 청소년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게 어떤 35세의 미혼의 남자 청년이 상담을 왔다. 남자가 35년을 살면서 지금까지 야동한번 본적이 없고, 자위를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신실한 크리스챤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신앙적으로 보면 당신은 매우 경건한 성도라 칭찬받겠지만, 한 마디로 당신은 ‘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는 의아해 했다.


”‘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게 무슨 말씀인가요? 죄를 안 지을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요?“ 라고 되물어왔다.

그는 심각한 강박증 환자였다.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안 지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다니면서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것이 건강한 경우가 많다.

안면은 있으나 그리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흔히 날씨 이야기로 자신의 진심을 감춘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죠?“라고 말을 걸어오면,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뇨, 지금 구름도 끼였는데요. 날씨가 별로 안 좋아요“


이런 사람은 소위 팩트(fact)가 중요한 사람이다.


팩트만 찾는 사람 중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못 보는 경우가 많다.

안 보는 것이 아니라 못 본다. 왜냐하면, '다 사실이 아니니까...', '다 꾸며낸 이야기이고 거짓말이니까'.

편집증에 가까울수록 이런 현상은 심하다.

드라마는 거짓말이라서 안 보고, 예능프로도 진지함도 없고 규격화된 사실도 결여되어 있다고 안 본다.

TV,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뉴스와 다큐멘터리이다.

이 정도 되면 그런 사람은 정서적으로 극도로 메말라 있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기의 반사회적 경향성으로서 거짓말은 정서적 고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허클베리 핀은 가는 곳마다 음모에 가담하고 들키지 않으려고 은밀한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런 음모와 은밀한 계획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허클베리 핀은 제 1 자아와 제 2 자아의 분열이 매우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청소년이라고 볼 수 있다.


허클베리 핀의 성장하는 모습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의 소설로, 허클베리 핀이 노예로 태어나 지하세계를 벗어난 친구 짐과 함께 천천히 자연을 탐험하며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허클베리 핀은 소설에서 많은 정신적 성장을 겪게 된다.

예를 들면, 그는 흑인 노예인 짐과 함께 여행하면서 인종 차별과 편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고,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랑과 존경, 용기 등과 같은 가치를 배우며, 자신이 원하는 것과 타인의 기대와의 충돌 등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한 허클베리 핀은 자신의 신념과 도덕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이 때로는 사회적 규범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허클베리 핀은 성장하고 자아를 발전시키며, 자신의 인격을 구축하는 과정을 겪는다.

또한 허클베리는 이야기의 중간부터는 피리 부는 남자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삶에 대한 더 큰 욕구를 느끼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새로운 경험과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고, 자신만의 가치관과 인생 방향성을 찾아가게 된다.

허클베리가 이런 성장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반사회적 경향성을 통과의례로 충분히 발휘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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