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세계에 담긴 진실의 세계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정직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거짓말을 못하는 것은 정신적인 병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정직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다.
정직함이란 아름다운 덕목임에는 틀림없지만, 병리적으로 정직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은 일단 그런 능력을 확보한 후에야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도덕성을 세울 수가 있다.
병적으로 정직한 것은 도덕성이 아니며, 그것은 건강함이 결핍되었다는 징표이다.
누구나 일단 거짓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Ted의 강연자 Kang Lee는 전 세계 아이들을 모아 다음의 추측게임을 시도했다.
주최자는 아이들에게 카드의 숫자를 추측하게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 게임에서 이기면 큰 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핑계를 대고 방을 나간다.
그가 나가기 전에 카드를 엿보지 말라고 말한다.
방에는 관찰카메라가 미리 설치되어 있다.
그는 나가서 몰래카메라를 통해 90%의 아이가 카드를 엿본다는 것을 관찰한다.
그가 돌아와서 카드를 봤느냐고 물으면, 성별, 국적, 종교와 상관없이, 2세에 30% 거짓말, 3세에 50% 가 거짓말, 4세 80% 이상이 거짓말한다.
4세가 지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
Kang Lee는 2세에서 5세 사이에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신 발달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내가 보기에 5세가 되어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심각한 강박증의 아이, 자폐증의 아이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이 아이들은 거짓말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아동이 인격을 발달해 가는 중 중요한 능력에 해당된다.
거짓말을 잘해 내는 데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첫째, 거짓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과 관계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거짓말하는 것이 가능케 하는 근거는 내가 아는 것을 상대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사람들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확신하지만, 흔히 '뒷담화'라는 형태로 변형한다.
이 두 가지는 '인간다움'을 증명한다는 면에서 상호 연관이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저서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을 비교한다.
네안데르탈인은 근력 같은 물리적 힘 사용, 큰 체결 그리고 다른 특징들로 인해 호모 사피엔스보다 탁월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능력들은 그들이 더 효율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사냥하고 수집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했다.
네안데르탈 인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고도로 발달한 체육 능력을 가지고 거친 자연환경에서 능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라리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이 따라올 수 없는 한가지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뒷담화하는 능력, 즉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라리의 '뒷담화 이론'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으로써 언어의 진화를 뒷받침한다.
"오늘날에도 의사소통의 대다수가 남 얘기다. 이메일이든 전화든 신문 칼럼이든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우리의 언어가 바로 이런 목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47쪽)
호모 사피엔스는 뒷담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야기 능력이 꼭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언어능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영화 <완벽한 타인>를 보면 세 부부의 모임에서 어떤 부인이 남자와 여자를 비교하면서, '남자는 안드로이드와 같고 여자는 아이폰과 같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을 하라리 버전으로 말하자면,
"남자는 네안데르탈인이라면, 여자는 호모 사피엔스다.'
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서로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다 보면 할 말이 없어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모이는 수가 많을수록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호모 사피엔스적인 것이 확실하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 진화가 덜 되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부부간에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따라갈 수 없다.
남편이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지 여자는 촉이 높다.
남편이 아내에게 사실적인 이야기가 아닌 꾸며낸 이야기나 거짓을 고할 때 들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해서 이야기하면 속아 넘어갈 확률이 높다.
다시 호모 사피엔스로 돌아가 보자.
호모 사피엔스는 거짓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 성공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더욱더 발전하고, 다른 종족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네안데르탈인은 제한된 의사소통능력과 정보교환능력의 한계로 상호 협력이 제한적이었으며, 동료들을 조직화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호모 사피엔스는 뒷담화과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네안데르탈인은 소그룹으로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여 적은 양의 식량만 확보할 수 있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협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서 큰 규모의 사냥이 가능했고, 농업과 축산을 개척하여 안정적이고 풍부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거짓말과 뒷담화 능력으로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고, 지식을 습득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거짓말 능력의 첫 번째 요소는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마음 읽기는 다른 사람들이 상황에 대해 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능력이며 동시에 내가 아는 것과 상대가 아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다.
거짓말 능력의 두 번째 요소는 자기 통제력이다.
이것은 거짓말을 할 때 말과 얼굴표정 그리고 몸동작을 조절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할 수 있어야 거짓말로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다.
2살, 3살, 5살 아이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얼굴표정과 몸동작까지 조절하면서 정교하게 자기 거짓을 누군가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나이가 빠른 아이일수록 상대방의 마음 읽기와 자기 통제능력을 빨리 발달시킨 것이다.
마음 읽기와 자기 통제력은 사회생활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5세가 되기까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나머지 20%는 정신발달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Kang Lee에 의하면,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이처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50% 정도밖에 알아맞추지 못한다.
판사, 변호사, 사회복지사도 아이들의 거짓말 중 50% 정도를 알아맞춘다고 한다.
왜 아이들의 거짓말은 발견하기 어려운가 하면, 아이들은 거짓말을 할 때, 얼굴표정이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이 중립적인 표정 뒤에서 아이들은 많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즉, 두려움, 죄책감, 수치감, 약간의 희열 같은 것을 경험한다.
아이들의 표정에서 이런 감정은 스쳐 지나가거나 숨겨진다.
그래서 어른들의 눈에는 거의 안 보이는 것이다.
Ted에서의 Kang Lee의 위의 강연 내용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엄마에게만 애착관계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3세가 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엄마와 아이 사이에 의도를 가지고 끼어드는 데에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관계 위협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는 원래 존재해 왔다.
엄마에게만 애착관계를 형성하면 되는 아이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단순히 엄마를 옆에서 잘 도와주고 보조해 주는 마당쇠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3세가 되면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엄마의 자리를 옆으로 밀어내면서 여기가 '내 자리다'하며 아이에게 엄마와 동등한 권위와 자격을 스스로 부여하며 아기 앞에서 복종할 것을 강요한다.
그래도 지금까지 아기에게 엄마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존재였는데, 아버지는 투박하고 험상궂게 보이는 외계인과도 같이 느껴진다.
아이는 엄마에게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든 아버지를 밀어내 달라고 요청을 하지만, 지금까지 내편인 줄 알았던 엄마는 더 이상 내편이 아니라 아버지 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는 매우 사실적인 관계이다.
왜냐하면 엄마는 눈에 보이는 존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에게 존재 자체로 있다.
엄마는 눈에 보이는 엄마 그 자체이다.
눈에 보이는 엄마는 더도 덜도 아닌 보이는 그대로의 엄마다.
그래서 아들이나 딸이나 엄마는 언제나 만만한 존재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아버지 뒤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아버지 뒤에는 세상이 있고, 세상의 법과 도덕, 그리고 여러 가지 규칙들이 있다.
엄마와 나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아버지는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것이 아기가 몰래 혼자 간직하고 있는 <살부 환상>이다.
아기입장에서 자신이 이런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서는 알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엄마가 더 이상 내편이 아니라 아버지 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엄마에게도 비밀로 해야 한다.
아이가 보기에 이 두 사람은 나를 빼놓고 뭔가 공모를 하고 있고, 자기네들끼리만 뭔가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아이는 '내가 아버지를 사라지게 만들고 엄마를 독차지하려는 음모가 드러났을 때, 과연 엄마가 내편이 되어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그래서 아이는 '이 세상에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기는 살부환상을 철저하게 속여야 하니까, 속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표정관리까지 하면서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 아이가 거짓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으로써, 향후 성인이 되어 그 능력을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으로까지 발전시킨다.
그래서 그 능력은 사물의 본성을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하고, 어디서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으로, 나를 속이는 자에게 속지 않을 수 있는 능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상적 자아란, 무엇인가를 일반인에게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다음의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보면, 누구나 이상적 자아가 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위의 대화와 같이 이상적 자아는 엄마를 이상화하며 엄마와의 이자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아이다.
학령나이 이전에 누구나 한 번씩 이런 망언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와 결혼할 거야'
'나는 옆집 누구하고 결혼할 거야'
그런데 이상적 자아는 엄마와 아동의 이자관계에 아버지가 개입해 들어오면서 '자아이상'으로 자아의 상이 바뀐다.
자아가 보다 발달하고 사회화되는 것이다.
이상적 자아에서 자아 이상으로 발달해 간다는 것은 꼭 학령나이 전후하여 일어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어떤 아이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는데, 그것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6학년이 되어서야 깨닫는 경우도 있다.
또는 초등학교 때 '네 꿈이 뭐야?'하고 물으면, '대통령이요' '과학자가 될래요' '이순신 장군 같은 군인이 될래요'라는 답변을 하는 아이는 그 부분에서 만큼은 이상적 자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경우 고등학교 때까지 나름의 꿈을 키워 오다가 대학이라는 사회 현실에 진입하면서, 또는 대학의 낭만에 젖어있다가 졸업과 더불어 겨우 현실감각을 찾아가면서 천진난만한 꿈을 접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모습들이 이상적 자아의 모습이다.
이런 친구들을 중년이 되어 만나게 되면, 학창 시절에 꿈꾸던 낭만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시절 또는 학창 시절을 꿈을 접게 되면서 비로소 이상적 자아에서 벗어나, 사회생활 또는 결혼이라는 각박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현실에 맞는 이상을 실현해 간다면 그런 자아는 바로 '자아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상적 자아를 가지고 꿈을 키워오다가 각박한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자아이상'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제 본래의 주제로 돌아가 보자.
아이가 엄마에게만 애착관계를 가지다가 아버지라는 존재가 의미 있게 개입해 들어오자, 아이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당위성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는 이러한 당위성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거짓말 하는 능력을 개발한다.
눈에 보이는 엄마 세계의 진실만 가지고 살아가다가는, 아이는 자기 존서를 확장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뒤에 세상이라는 뒷배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아이는 아버지 뒤에 있는 세상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자기 존재를 부풀려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지고 있는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그런 아버지 덕에 눈에 빤히 보이는 엄마의 세계를 넘어서는... 뭔지 모르지만 아버지 뒤에 있는 넓은 세계를 꿈꾸기 시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갈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아이는 엄마가 존재하는 사실적 세계에서 아버지 뒤에 있음 직한 허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를 위해 아이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한없이 부풀려야 한다.
이렇게 거짓말하는 것은 더 이상 사실의 세계를 배반하는 것도, 그 세계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적인 진실함만 가지고는 존재를 확장해 갈 수 없지만, 아이는 거짓으로 자기를 부풀림으로써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 갈 수 있게 된다.
어머니는 존재 자체로 아이 앞에 서지만, 아버지는 존재자체보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이의 내면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원리>가 된다. .
말하자면 아버지의 이름을 가지고 아이 내면에 허구적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아이는 이러한 허구를 받아들이면서 사실적 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을 과대화할 수 있게 되며, 그런 과대적 자기는 거짓말하는 능력까지 만들어낸다.
그 결과 아이는 상상력이 풍부해질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징화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그렇게 거짓말 하는 능력을 가지고 어른이 되면, 허구적 세계 안에서 소설가가 될 수도 있고, 과학적 공상을 실현하는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