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허구의 세계(2): 청소년의 '죄지을 수 있는 능력'

제1 자아와 제2 자아의 분화

어떤 청년은 '저는 이중인격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처하면, 그냥 '잘 모르겠는데요.'라며 얼버무린다.

그는 직장에서 상사에게 비위를 맞추는 말도 전혀 하지 않는다.

심지어 복도에서 만난 상사가 지나가는 말로,


'오늘 날씨 좋네.'


라고 하자.


'밖에는 비가 오는 데 무슨....'


라고 답변한다.

이 친구는 빈말, 마음에 없는 말을 못 하는데, 그런 모든 말들은 다 쓸데없는 말이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아니며, 대부분 거짓말이 많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사뿐 아니라 동료들과도 진지하고 사실적인 이야기 말고는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그래서 사내식당에서 조차 함께 밥 먹자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 늘 외톨이로 혼자 지낸다.

다행히도 그는 혼자됨에 대해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제일 싫어하는 것이 부서 회식이다.

회식날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2차로 가서 술 마시는 타임이 되면 사람들이 쓸데없는 말들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위선자들이고, 거짓의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지 않음으로써 혼자만의 청정지역을 잘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을 못하는 청소년


어느 마을은 * 씨 집성촌 같은 곳이다.

옆집에 숟가락젓가락이 몇 개인지 밥그릇 국그릇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다 아는, 서로 감출 것이 없는 동네이다.

어떤 중학생 아이가 길을 가는 중에 이웃집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니, 할아버지께서


"응, 그래. 밥 먹었니?"


라고 물으셨다.

그 아이는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라,


"아뇨, 아직 밥 안 먹었는데요."


할아버지께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니, 지금이 몇 신데, 아직 밥을 안 먹었어? 집에 엄마는 안 계시니?"


라고 물으시니,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그 아이는,


"네, 엄마는 집에 안 계세요."


할아버지의 반응은,


"너희 엄마는 왜 맨날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기만 하니?"


이상의 대화를 보면, 할아버지가 "밥 먹었니?"라고 물어 오시면, 보통의 아이는 밥을 안 먹었어도,


"네"


하며 할아버지 옆을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냥 인사로 건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없음으로 인해, 서로 가던 길을 멈추고 불필요한 대화를 한없이 진행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 아이는 왜 이런가?


제1 자아와 제2 자아의 분화

사춘기가 되면 제2차 성징이 일어나면서, 성적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특히 남자 청소년에게 성개념이 들어올 때, 그것은 마치 외부에서 천둥번개가 치듯 내부에서 커다란 격변을 겪는 것과도 같다.

이것이 외부에서 오는 격동인지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즉 내면에서는 성적 감정이 격동하며 올라오고, 외부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몸의 감각 부분의 자극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기 때문에 남자청소년은 많은 고민을 한다.

학교에서 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런 현상은 마치 나에게만 일어나는 불행한 격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건강한 남자 청소년은 생명에너지의 넘치는 활력에 견디지 못해 이 시기에 거의 100% 자위를 한다.

그렇다고 진짜 100%는 아니다.

그 중에도 자위를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 시기에 자위를 하지 못하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런 남자 청소년은 성충동을 막는 방법으로 심각한 강박증을 작동한다.


교회 목사님이 청소년에게 자위행위는 죄를 짓는 것이니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설교하면, 건강한 청소년은 양심의 가책을 가질 지언정 설교내용과 무관하게 자위를 한다.

그 가운데 심각한 강박증을 가진 청소년이 있다면 목사님의 설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성적 환상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성적 공상에 휘둘리는 삶을 산다.

어른들은 자녀나 청소년에게 이런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 죄인 것은 맞지만, 다른 한편 넘치는 생명활동이기 때문에 넘치는 것을 밖으로 투사하지 못하고 다시 안으로 집어넣으면 안 된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정직하게 살기 위해 아동기에 거짓말을 할 줄 아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청소년기에 '죄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죄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일부 자폐증자, 심각한 강박증자는 자위행위를 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그들이 죄와 흠이 없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청소년을 자위를 못하게 만들면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그동안 억압된 성적 충동이 폭발하듯이 튀어 나오면서 심각한 성적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청소년의 성 문제는 무엇보다 자신 안에서 철저하게 감춰지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성적 환상에 휘둘려 자위로 이어지는 것은 대단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신 안에서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비밀유지를 위해 청소년은 자아를 분화시켜야 한다.

청소년이 자신의 자아를 제1 자아와 제2자아로 분화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며, 또한 건강한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천둥번개처럼 몸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성적 충동과 내면의 스토리로 이어지는 성적 환상은 자연스럽게 자위행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제1 자아이다.

아동기에는 자아가 하나이기에, 특별히 뭘 감출 것이 없어 솔직하고 정직한 것이 미덕이다.

그렇지만 청소년기에는 제1 자아를 철저하게 감추는 제2 자아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이 제1자아와 제2자아로 분화가 일어나야 '죄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건강한 청소년이 되는 것이다.

분화되지 못한 청소년은 자위행위를 할 수 없는 아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아이이다.

바꿔 말하자면, 제1자아와 제2자아로 분화하지 못한 청소년은 죄책감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으며, 자위를 마음 놓고 할 수 없다.

어쩌다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된다거나 자위를 하게 되면 오랜기간 동안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과 흔히 인사치레로 하는 빈말도, 입이 건질건질해서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뒷담화도, 수다도 떨지 못한다.


어떤 35세의 미혼 남성이 상담실을 찾아왔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졌고, 스토리텔링을 잘하지 못하여 말이 짧게 뚝뚝 끊어졌다.

엄청난 강박으로 사고의 제한을 당하니까, 말을 하는 중에도 내면에 있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이 말을 했다.

말을 하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혼이 나고 있는 듯했다.

말속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감정이 없었고, 감각이 무디어 보였다.

그 내담자는 4월에 빵모자를 쓰고 겨울 잠바를 입고 왔는데, 여름이 되어 남들은 짧은 옷을 입고도 땀을 뻘뻘 흘렸지만 그 복장과 빵모자 쓰는 것은 계속되었고, 땀도 흘리지 않았다.

롯데 월드에 가서 두 배 높은 자이로드롭을 타면서 뭔가 짜릿함을 느끼고 싶었지만, 감정의 동요나 감각적 방어 체계를 발동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남들이 느끼는 스릴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쑥 내려갔다.

내가 그에게 자위행위는 언제부터 했는가를 물었다.

아버지가 그것은 죄라고 하면서 그것을 절대 해서는 안되다고 하여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대신 몽정을 자주 했다고 한다.

야동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것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아무런 성적 충동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예쁜 여자를 보면 어떤 느낌이냐고 물으니, 그는 여자를 쳐다보는 것이 죄라고 생각해서 절대 여자를 눈여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아를 분화시켜 본 적이 없는, 아직도 아동기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상황에 맞게 자아를 조절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의 자아만 가지고 현실의 복잡성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 어려움은 그로 하여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든다.

힘이 있는 청소년은 폭력을 행사할 것이고, 힘이 없는 아이는 늘 피해자로 남을 것이다.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이 둘은 늘 한 세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학교 폭력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테스라는 도적 이야기가 나온다.

이 도적은 다른 도적들과는 달리 지나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고 잠자리까지 제공한다.

그는 자신에게 모든 이에게 사이즈가 맞는 침대가 있다며, 손님을 눕힌 다음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다리를 잘라버리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늘려버리는 방법으로 상대를 살해했다.

테세우스가 나타나기 이전 딱 한 명, 그 침대와 크기가 꼭 맞아 살아남은 사람은 노예가 되어 시중을 드는 것으로 나온다.

판본에 따라서는 아예 침대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어 그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침대의 길이와 똑같은 키를 가진 테세우스가 나타나서 프로크루스테스를 똑같은 방법으로 죽였다.(출처: 나무위키)


이 이야기는 상대방에 대한 공감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는가를 보여준다.

오늘날 기업은 누구나 선호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기업이 상품을 얼마나 잘 파느냐는 것은 그 기업이 소비자에 대한 공감능력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기업은 소비자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품을 업그레이드한다.

그런데 프로크루테스라는 도적은 침대를 만들어 놓고, 투숙하는 손님의 다리를 침대에 맞게 조절한다.

그 과정에서 폭력이 일어난다.

힘 있는 도적은 힘없는 손님을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휘두른다.

힘 있는 도적도 문제이지만 힘없어 당하기만 하는 손님도 문제다.


오늘날 학교 폭력이 딱 그렇다.

힘을 행사하는 일진아이들과 힘이 없어 일진에게 당하는 아이들은 어쩌면 위 이야기의 도적과 손님처럼 한 세트이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박연진으로 대표되는 폭력집단과 폭력을 당하는 문동은은 모두 자기 엄마의 잘못된 양육의 피해자들이다.

두 사람 모두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야 하는 초기 1년 동안의 엄마의 양육태도의 피해자들이다.

아기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엄마의 삶을 끌어들인다.

건강한 엄마는 갓 태어난 아기는 첫 1년이 살아남기 위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다는 알고 아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리비도를 아기에게 집중한다.

이를 위해 현실감각마저 끊어 버린다.

오로지 아기를 위해 엄마가 집중하는 상태가 첫 6개월 동안 지속된다.

도널드 위니캇은 이러한 엄마의 상태를 <일차적 모성몰두>라고 불렀다.


이 시기의 아기를 향한 엄마의 태도는 아이의 일평생의 삶을 좌우한다.

박연진은 엄마에 대한 분노를 자기보다 취약한 문동은에게 퍼붓는 가해자로,

문동은은 초기 엄마가 그랬듯이 엄마에게 끊임없이 당하는 모양의 피해자로,

둘 다 각자 엄마의 딸에 대한 마땅한 돌봄의 의무를 저버린 폭력을 당한 피해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이 둘은 한 세트처럼 연결되어 있다.

가학자는 피학자를 찾고, 피학자는 가학자를 찾는다.

서로 성이 다를 경우, 천생연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들의 특징은 침대와 손님처럼 현실 상황에 맞는 자아를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청소년이 되면서 제1 자아와 제2 자아의 분화를 해 본 적이 없다.


억압당한 청소년


수년 전 <안녕하세요>라는 TV프로에서 사회역을 맡은 정찬우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자녀에게 물었다.


"너는 너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를 하니?"


"네"


라고 아들이 답했다.

정찬우 왈,


"최선을 다하지 마라."


이것이 사춘기를 지나는 아들에 대해 정찬우 씨가 남긴 명언이다.


어떤 여성 내담자는 자신의 고교생 아들이 남편의 강압적인 도덕성을 요구함에 따라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를 차단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는 아이다.


어느 날, 이 아들이 버스를 타서 창가에 앉았는데, 바로 옆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대생이 앉았다.

그때부터 이 아들은 혹시 자기 몸이 여자의 몸에 닿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으로 온몸을 벌벌 떨면서 앉아 있었다.

두 정류장만 더 가면 자기가 내리는 곳인데 여자의 몸에 닿을까 두려워 감히 일어서지도 못한 채, 그녀가 내리는 종점까지 갔다.


내가 보기에 이 아이는 한편으로는 옆에 앉은 여자에 대한 성적 환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즐겼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금지에 걸려 꼼짝 못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내담자에게 말했다.


"남편도 이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마땅한 교육이라고 강요한다면, 그 아이는 어느 순간 돌발적으로 성적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매우 위태로운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춘기에 강박적 사고로 인한 성적 억압, 부모의 강압적인 교육, 교회의 율법적 훈계로 제1 자아와 제2 자아가 분화되지 못해 고통당하는 청소년이 의외로 많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에게 거룩한 성자의 정신을 요구하면 그 청소년은 병리적 증상으로 시달린다.

그 시기의 청소년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아 분화를 통한 '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아 분화의 의미

아들이 사춘기에 성적 개념이 들어오면서 제1자아와 제2자아로 분화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본래적 자아를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나르시시즘 서론]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자아'는 제1자아를 의미하며, 이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아의식을 형성하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인식, 자기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형성된다.

제1자아는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의 내면적 자아를 말한다.


반면, 제2자아는 [나르시시즘 서론]에서 언급하는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자아'를 의미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과 대인관계에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제2자아는 타인에 대한 인식,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자신의 역할, 타인에 대한 욕구와 욕망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형성된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자기애와 동일시하며, 제1자아의 발달이 부족하면 나르시시즘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은 제1자아의 발달이 미흡하거나 제2자아와의 균형이 깨어진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청소년기에 성적 개념이 들어오면서 분화되어 발생한 제2자아는 앞으로 사회적 역할을 중점적으로 실행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페르소나의 형태로 발전해 간다.


제1자아와 제2자아가 분화한 결과, 이 두 자아 사이 간격이 좁은 사람, 거의 붙어 있는 사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등의 다양한 형태는 각자의 삶의 패턴을 다르게 형성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


어떤 중년 여성은 사회생활을 하는 중 대인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여 내면의 고요함을 찾아가며 스트레스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제1자아의 크기에 비해 제2자아를 너무 크게 사용하여 과대자아가 되어 사회적으로 큰일을 치르고 나면, 제1자아를 달래기 위해 술로 풀든지, 잠을 푹 잔다.


어떤 사람은 조직 내에서의 탁월한 역할을 연속적으로 하고 나면 스스로 과대해져서 더 큰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이 조직을 빨리 탈출해서 김밥장사를 하는 것이 소원이다.


내 사무실 주변에 어떤 커피숍 사장님은 큰 디자인 회사 부사장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커피숍을 차려 단골손님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낙으로 살아간다.


왕종명 앵커는 '저는 은퇴하면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해서 젊은 사모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사모님이 무거운 짐을 들어 주는 일을 꼭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더라.


제1자아와 제2자아의 분화가 청소년기에 일어나서 그것을 자신의 사회적 페르소나로 발전시키는 것은 건강한 것이지만, 둘의 간격이 너무 멀어질 때는 이런 작업들을 해내야 한다.

대부분 이런 작업을 하지 않고 중년기를 맞이하게 되니까, 제1자아와 제2자아 사이의 간격에는 자기 비리로 잔뜩 쌓이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허구의 세계(1): 아동의 거짓말할 수 있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