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질서에 맞춘 여성적 방어책
남자로서 여자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수수께끼가 있다. 기나긴 가부장적 역사를 가졌음에도 남자는 아직도 여자를 잘 알지 못한다. 여자 또한 남자를 알지 못한다. 부부 간 서로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 채 수십 년을 함께 살고, 서로 남처럼 살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이라는 제도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것도 신비 중의 신비이다.
여자가 가지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열쇠는 바로 ‘히스테리’이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여자는 히스테리화 된 신체를 갖게 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가 인격을 보존하기 위해 몸을 히스테리화 한다. 히스테리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가 생존하기 위한 오랜 생존전략이다. 유대교 신화에서 살아남은 릴리스는 신체의 히스테리화를 면했다. 그러나 릴리스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추방되는 것이 문제였다.
히스테리란 무엇인가?
보통 성격이 예민한 사람을 ‘히스테릭하다’고 표현한다. 히스테리라는 용어는 매우 광범위하여 프로이트가 말하는 히스테리의 범주를 넘어선다. 히스테리에 관한 오래된 문헌 중 플라톤의 [국가]가 있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여성의 hysteria를 ‘온몸이 자궁이 되는 것’이라 언급하였다. 반면 여성의 성기 자체는 성적인 기능이 마비된다. 이것이 히스테리이다. 이렇게 보면 ‘노처녀 히스테리’의 증상이 이해가 된다. 성경험이 없어 성기적 기능이 마비되고 온몸이 성적으로 예민해져서 짜증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적으로 좀 더 들여다보면, 히스테리란 여자가 ‘여성성을 억압하여 몸을 남성화시키는 것’이다.
임상적으로 보면 히스테리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여자가 아예 성적 매력도, 성욕도, 성에 관심이 없는 여자이다. 이런 여자는 삶의 전반에 걸쳐 성욕이 억압되어 있다. 이런 여자는 여자로서 ‘수치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성적 존재라는 것마저도 부정하고 싶다. 그녀는 남자가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 부담되어 화장도 하지 않고, 외모도 잘 가꾸지 않는다. 결혼해도 성적 매력을 가지기 위해 별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런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몸이 푹 퍼져 버린다. 몸을 가꿀 생각도 별로 없다. 여자로서의 성적 주체성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남편의 것이다. 남편이 원하는 만큼만 여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주부로서 역할도 주로 모성성을 발휘하는 데에 충실할 뿐이다.
둘째, 플라톤의 말처럼, 여성은 온몸이 자궁이 되는 대신 성기의 성적 능력을 상실한다. 말하자면, 성욕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성기에 성욕은 남아 있지 않다. 온몸이 성기로서 기능을 하기 때문에 몸이 매우 예민해지고, 외모적으로 매우 화려해진다. 남자는 이런 여자를 보면서 ‘섹시하다’고 착각한다. 이런 여자에게 홀딱 반하여 결혼이라도 하면, 남편이 이런 아내에 대해 매력적으로 느꼈던 감정이 식는 데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둘째 유형의 여성은 첫째 유형의 여성보다 화려한 인생을 산다. 첫째 유형은 소시민으로 조용조용 살아가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둘째 유형은 어디를 가나 사람들을 리드하며, 좌중을 흔드는 카리스마도 있다. 문제는 그런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히스테리화 된 여성이 성적으로 어떤 상태인가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다. 그 영화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일뿐이에요. 그리고 당신을 위해 처녀로 남는 것이에요”
이런 여자는 절대 성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상태이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것도 바로 히스테리 여성을 위한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여자가 잘 아픈 이유, 가부장 질서 중독증
여자는 남자보다 잘 아프다. 여기저기가 다 아프다.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인 크리스티 노스럽(Christiane Northrup)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 이런 여성은 대개 ‘관계중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언제나 좋은 사람,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직업인이 되느라 자신의 삶을 소진해 버린다. 이것이 노스럽이 말하는 ‘관계중독’이다.
관계중독이란, 우리 사회의 개념으로 바꾸면, 여자로서 여성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모성성으로 살기 때문에 오는 증상이다. 즉 릴리스를 억압하고 하와로 사는 것이다. 릴리스가 아무리 억압되어도 중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는데, 그것조차 억압하여 하와로 계속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런 하와는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지 않고, 가족의 요구와 시선에 맞춰 사는 동안 자신의 ‘여자임’을 부인하는 삶을 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런 여자가 잘 아픈 이유는, ‘감정’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여성성의 핵심 내용이 ‘지금-여기의 감정’인데 그녀는 이 감정을 억압한다. 노스럽은 여성이 자신의 고유한 감정으로 살아가지 못할 때 최종 지점은 산부인과적 문제를 향한다고 말한다. 그런 문제는 바로 여자가 오랜 기간 히스테리화 된 신체로 살아온 결과다.
요즘 호스트바를 출입하는 중년 여성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여성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이해해 보자. 그녀는 가부장적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심지어 호스티스 역할을 하는 여성도 일을 마치면, 그렇게 번 돈으로 호스트바에 가서 스트레스를 푼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바로 가부장적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그 독은 그래야 중화가 되는 것 같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늘 수동적 위치에 있기에 호스트바에 가서 능동적 위치에서 남자를 지배하는 놀이를 함으로써 남자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그녀는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억압된 감정은 계속 억압하면 시한폭탄처럼 몸에서 언제 예기치 않은 폭발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중년기가 되면, 여성은 오랫동안 히스테리화 된 몸에게 자유를 찾아 주고 싶은 것 같다. 새천년 전, 여성에게 개방적이지 않았던 시절에는 여자들이 카바레를 전전하다가 어느 날 임자를 만난다. 즉 제비를 만난 것이다. 제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히스테리화 된 여성에게서 그 히스테리를 풀어주는 코드를 아는 자이다. 그렇게 여성의 몸에서 히스테리가 풀리면, 그 순간은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여성의 몸에서는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그녀 안에 억압되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릴리스가 급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그때는 그동안 냉동고에서 얼어붙어 있던 성욕과 사랑이 9배의 뜨거운 에너지를 태우며 활활 불타오르는 순간이다.
히스테리화 된 몸이 수용하는 가부장적 질서, 도덕, 상식, 규율, 논리는 여성의 몸에는 ‘모순 코드’로 입력된다. 히스테리는 여성의 몸이 남성화되는 증상이다. 이것만큼 큰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모순을 그대로 두면 반란이 일어난다. 수많은 여성이 겪는 만성적 골반 통증, 질염, 난소낭종, 생식기 사마귀, 자궁 내막증, 자궁경부염(암), 이형성증 등이 바로 몸 반란의 기표다. 그런 부정적 반란 말고, 긍정적 반란이 일어나야 한다. 하와가 감춰둔 냉동고에 얼어있던 릴리스가 튀어나와야 한다. 릴리스가 나와서 하와의 히스테리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