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모친살해, 심리적 부친살해
오늘 아침 9시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다.
아내와 나는 2인 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의 옆자리에서도 70대로 보이는 두 할머니들이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뚝뚝 끊어졌지만, 두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할머니들은 두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두 할머니가 앉은 바로 뒤의 좌석에 앉아 있던 여성이
"버스에서 이야기 좀 하지 마요. 시끄러워 죽겠네. 버스 전세 냈어?"
라고 외쳤다.
두 할머니는 설마 자기네한테 하는 이야기일까 싶었는지, 뒷 여성의 고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나와 아내는 내릴 곳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휙 뒤돌아보니, 할머니들이 앉아 있는 좌석 뒤에는 젊은 30대 중반의 어느 여성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짐작할 때는, 그렇게 소리 지른 여성이 적어도 70대 할머니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나이가 비슷하든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높은 나이로 예상했는데, 전혀 엉뚱한 그림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이다.
30대 여성이 70대의 두 할머니의 조곤 대는 말소리를 고함치며 제압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는 장면을 본 것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소리보다 30대 여성의 소리가 훨씬 컸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두 사람만의 공간에서 자기네들끼리만 의미를 주고받는 소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의 고함소리는 온 버스 안을 히스테리적 분노로 채웠다.
그녀야 말로 자신의 목소리로 버스 전체를 전세 낸 것 같았다.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내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봉변은 엉뚱한 데서 일아났다.
아내를 광명역에 바래다주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전철 2호선 <신도림역-까치산역> 순환열차를 탔다.
이 코스는 두대가 운영되면서 10분 간격으로 두 역 사이를 왕래했다.
까치산 역에서 내리면서 혼자 곤히 잠들어 있는 어떤 청년을 깨웠다.
가지고 있던 책으로 그의 무릎을 살짝 치면서
". 종점 다 왔어요"
라고 알려 줬다.
그 청년이 눈을 부릅뜨면서, 내가 불같이 화를 냈다.
청년 : 왜 쳐. 당신이 뭔데 날 쳐
나. : 이게 친 거예요?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아 깨워준 건데..
청년 : 누가 깨워달래? 왜 당신 마음대로야?
나. : 이 친구, 아버지 같은 사람한테 반말이네... 싸가지네.
청년 : 뭐라고 싸가지라고? 나한테 욕한 거지. 경찰 부를 거야
그는 핸드폰을 꺼내 경찰을 불렀다...
청년 : (핸드폰에) 저기요, 경찰이죠. 여기 까치산역인데도, 제가 폭행을 당했고요, 욕설을 들었거든요.
출동해 주셔야 되겠어요...
나. : 경찰이 오면 되겠네... 어서 오시라고 해
잠시 후, 핸드폰을 끊었다. 경찰을 부르다가 만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다들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상황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청년과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사람이 인물도 잘 생기고 아들 같아서 도와주려고 잠에서 깨워 줬는데, 자기를 쳤다고, 자는 사람 깨웠다고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네요. 아마, 이 친구가 아버지 같은 사람과 싸움을 하고 싶은가 봐요. 그래서 제가 싸워주는 거예요."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울고 싶은 데 뺨을 때려 준거네.."
상황이 불리해지자, 그 친구를 도망갔다.
도망가는 젊은이를 따라가서
"당신이 싸움을 시작했으니, 당신이 끝내야지..."
하고 따라붙으니,
"자꾸 이러시면 스토커로 신고할 거예요."
하면서 재빨리 저 멀리로 도망가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길거리나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서 어른들에게 봉변을 주는 사람들 중에는 20대나 40대는 잘 없다.
대개 30대 초반, 중반의 남자 청년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의 증상을 드러낸 것인데, 그 증상은 곧 '여성적 히스테리'이다.
남자도 이런 여성적 히스테리를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 안에 있는 억압된 여성성이 순식간에 튀어나올 때이다.
여성적 히스테리란 태풍을 생각하면 된다.
대개 태풍이 세차게 지나가면서 땅을 할퀴고 지나간다.
그래서 태풍의 이름은 대개 '여성'의 이름이다.
그 30대 청년들은 공공장소에서 어른들을 상대로 왜 그렇게 싸우려 드는가?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모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해서 그렇다.
첫째 사례의 여성은, 자기 어머니 같은 할머니를 대상으로 고함을 지르며 제압하려고 했다.
둘째 사례의 남성은, 자기 아버지와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한 밖에서 자기에게 시비를 걸어주는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싸움을 건다.
그래서 내가 그 청년에게
"지금 당신은 아버지 같은 사람하고 싸우고 싶은 것 같다"
고 말하면서,
"내가 당신 아버지 내가 싸워줄게. 끝까지 한번 싸워봐"
하는 중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갑자기 잠잠해 지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심리적 모친살해'가 필요했고, 그 청년은 '심리적 부친살해'가 필요했다.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결과, 어머니같은 사람 또는 아버지 같은 사람만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서 싸움을 걸어 오는 것이다.
내가 시간만 넉넉했으면, 그 청년을 끝까지 좇아가서 싸워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게 엉뚱하게 시비를 걸어 온 부분에 대한 '사과'와 종점에서 자는 통에 순환열차를 다시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잠을 깨워 준 것에 대한 '감사'를 받고 싶었다.
평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아들러의 심리학이 생각났다.
지금 두 청년은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고 싶은데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