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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앞치마>(1)(작가 : 김기숙)

2025년 제12회 이가탄 한국약사문학상 대상작

수필 '할머니의 앞치마' 줄거리 요약


1. 현재의 멍: 약사로서 마주하는 죽음


화자는 현재 요양병원 약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사망한 오십 대 암 환자의 약 봉투를 정리하며 또 하나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 느껴지는 낯설고 서먹한 죽음의 감정은 오디 열매 색깔처럼 푸르스름하게 물드는 어릴 적 할머니의 옥양목 앞치마 색깔로 이어지며 과거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2. 첫 번째 상실: 금줄과 '부정(不淨)'의 기억


여섯 살, 6.25 전쟁 직후의 꽃 피는 산골 마을.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가 귀한 아들을 낳습니다. 아버지는 기쁨의 상징으로 대문에 고추와 숯을 엮은 금줄을 겁니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날 무렵 아랫마을에 불이 났고, 불난 집에 다녀온 아버지 때문에 '부정을 탔다'는 이유로 금줄이 끊어지고 아기는 곧 '산으로' 갑니다(사망).


어린 화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숨죽여 우는 아버지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집니다. 할머니는 오디 물이 든 푸른 앞치마 자락을 가리키며 "네 애비 마음이 이렇게 멍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화자는 이 복잡하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할머니의 앞치마를 자신의 가슴에 문질러 마음의 멍을 받아들입니다.


3. 두 번째 상실: 방망이질 치는 가슴


이듬해 가을, 엄마는 다시 아기를 낳습니다. 이번에도 금줄이 걸렸지만, 불난 집 같은 불길한 일은 없었습니다. 화자는 안심하며 금줄이 제자리에 걸려 있음을 매일 확인합니다. 그러나 열흘쯤 지났을까, 동네 친구를 통해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왔을 때 대문에는 금줄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화자는 가슴이 미친 듯이 '방망이질'치는 것을 느끼며 "아! 이래서 가슴에 멍이 드는구나!" 깨닫습니다. 눈물에 젖어 더 시퍼렇게 얼룩진 할머니의 앞치마를 다시 끌어안고, 어린 화자는 말을 잃은 채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작은 손으로 받으며 슬픔을 공유합니다.


4. 세월과 잔존하는 멍


화자는 성장하여 약사가 되었고, 까막눈을 면하고 얼굴의 도장버짐도 검버섯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의 푸른 멍은 칠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인 듯 남아있습니다. 시간은 할머니, 아버지, 엄마를 싣고 떠나갔지만, 그들의 가슴속 멍 또한 화자에게 짊어지게 했습니다.


병원 창밖으로 가을이 물들어 오는 쓸쓸한 오늘 아침, 미처 떠나지 못한 매미가 울부짖듯, 화자는 가슴의 멍이 도진 듯한 쓸쓸함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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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개념 및 상징 분석


A. '할머니의 앞치마'와 '푸른 멍': 상실의 상징

할머니의 앞치마

어머니의 부재 시기 또는 위협적인 상황에서 '안정(Holding Environment)'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대상(object)의 상징합니다. 화자는 슬픔이나 혼란스러움을 느낄 때 앞치마 자락을 끌어안거나 문질렀는데, 이는 할머니를 통해 안전감을 찾으려 했던 행위입니다. 이는 대상관계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푸른 멍 (오디 열매 색깔)

슬픔, 상실, 죄책감, 그리고 억압된 트라우마의 정서적 흔적을 시각화한 상징입니다.


아버지의 멍

첫 번째 동생의 죽음(유산 또는 영아 사망)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을 나타냅니다.


화자의 멍

아버지와 할머니의 슬픔을 내면화하고(공감/투사적 동일시), 자신이 동생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어린아이의 죄책감과 상실감을 나타냅니다.


현재의 멍'가슴의 멍은 아직 그대로 인 듯'이라는 구절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은 채 화자의 정신세계에 잔존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B. '금줄'과 '부정(不淨)': 원초적 불안과 죄책감

금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신생아와 가족을 보호하는 주술적, 경계적 상징입니다.

금줄의 끊어짐(첫째 동생 사망과 둘째 동생의 사망)

수필에서 금줄의 끊어짐은 상실의 고통을 촉발하고, 불행의 징후로 각인되는 결정적인 상징적 사건입니다.

아버지가 불난 집에 갔기 때문에 '부정'을 탔다는 할머니의 설명은 어린 화자에게 '금기(禁忌)의 위반'이 상실을 초래했다는 인과관계를 심어줍니다.

두 번째 동생이 사망했을 때도 화자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금줄의 유무였습니다. 이는 첫 번째 트라우마적 경험을 통해 '금줄의 소멸'과 '아기의 죽음'이 심리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되었으며, 이것이 화자 가슴의 멍(트라우마)을 만드는 핵심 기제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세상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행동이나 주변 상황(아버지의 부재, 화자가 유세를 부린 것)이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원초적 불안'과 '마법적 사고(Magical Thinking)'에 기반한 죄책감을 형성합니다.


정신 기제 및 역동


A. 반복 강박 (Repetition Compulsion)

죽음과의 반복된 만남

화자는 약사로서 요양병원에서 환자의 '사망'을 마주하고 약을 처리하는 행위를 반복합니다. 이는 과거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통제 불가능한 상실(동생들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적 상황을 현재 직업적 환경에서 수동적으로 재연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처리(정리)'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푸른 멍의 잔존

'가슴의 멍은 아직 그대로 인 듯'은 과거의 미해결 된 트라우마적 정서가 반복적으로 현재의 감정 상태(쓸쓸함)로 반복 투사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B. 억압(Repression)과 해리(Dissociation)

감정의 억압

어린 화자는 아버지의 울음, 할머니의 설명, 금줄의 소멸 등 복잡하고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어린아이의 논리로 정리합니다. “나는 이 복잡한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는 구절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를 지성화를 통해 억압하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정서적 동일시

앞치마를 가슴에 문지르는 행위는 자신의 정서를 직접 표현하기보다, 할머니의 멍(슬픔)을 빌려와 간접적으로 자신의 멍을 확인하고 동일시하려는 기제입니다. 이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고통을 분리하거나 해리시키려는 시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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