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일기 - 산정특례 대상자
정밀 검사의 이유는 내 몸속 암덩이의 성격과 위치, 크기 등을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함이지만, 그다음 중요한 것은 ‘전이여부‘였다. 유방암은 전이와 재발
확률이 매우 높은 특성이 있단다. 하여, 치료 초점이 ‘전이와 재발의 방지‘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젊은 암환자, 그러니까 세포의 활동이 기본적으로 빨라서 암세포의 변이 활동도 활발한, 다시 말해 젊어서 위험한 환자의 나이는 만 35세를 기준으로 한다고 했다. 나는 만 36세. 의사 선생님은 기준나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며 씁쓸한 미소를 보이셨었다. 젊어서 문제인 상황이 슬펐다. 무서운 치료를 버틸 체력이 있지만 그게 문제라니, 이런 모순이 또 없다.
지난주 기본검사를 마친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다. 취소자가 생겨 자리가 났으니 월요일에 뼈스캔 검사를 하라는 예약확정 안내 문자였다. 병원 전체적으로 몇몇 검사는 인원이 많이 밀려있어 당장 예약이 어렵다고 했었는데, 응급으로 처리했으니 곧 연락이 갈 거라던 상담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암환자에게 자리가 났는데 시간이 되느냐는 스케줄조정 같은 건 사치이다. 확진이 된 이상 무조건 빨리. 내 시간이 어떠한지 배려받지 못하지만 그러려니, 아니 내 순서가 왔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뼈스캔은 주사를 맞고 최소 3시간이 지난 후에 할 수 있는 검사라서 최종 촬영이 끝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 대기해야 했다. 엄마는 걱정이 앞서 같이 가자고 하셨지만 나는 환자마음 편하게 해 달라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있으면 울고 싶어도 못 울고, 멍하게 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나만의 시간도 가질 겸 혼자 가고 싶었다. 환자인 내가 보호자인 엄마를 모시고 ‘엄마, 이쪽이에요!’ 하며 수납, 촬영실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것도 솔직히 편치 않았다. 잰걸음으로 후다닥 마치면 될 일인데.
엄마의 지인이자 유방암 치료를 받아본 시옷아줌마는 틈틈이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물으시는 듯했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엄마는 ‘시옷아줌마는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검사래. 아픈 거 하나도 없대. 잘하고 와!’ 라고 하셨다. 아, 앞으로 나도 주기적으로 할 검사구나.
병원에 도착해 1층 수납처에 들렀다. 첫 진료 때 만든 플라스틱 환자카드를 드리자 종이 하나를 내밀며 사인하라고 하셨다. ‘건강보험(암) 산정특례 등록 신청서‘였다. 나의 기본정보와 현재까지의 검사결과로 알게 된 암 관련 정보가 체크되어 있었다. 확진 날짜, 상병코드, 신규암 여부, 확진 방법 등등. 눈으로 쭉 훑고 싸인을 마쳤다. 이제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국가인증 암환자다.
‘이건 됐고… 이건 안 된 건가..? 이거는…’ 하며 중얼거리던 수납처 선생님은 ’이제 너는 산정특례대상자라서 오늘부터 할인을 해줄 고야. 그리고 저번에 결제한 것도 취소하고 다시 5%만 결제해줄게.‘ 라고 설명해 주었다. 요정 같았다. 뾰로롱 할인요정.
그렇게 나는 9천 원을 결제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사실 지난번 예방접종을 하고 나서 살짝 졸아있었다. 뭐는 보험이 되는데 뭐는 안 돼요, 라며 구분해 대는 통에 앞으로 카드값이 불어나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었다. 나의 개인 보험 상황과는 별개로 경제적 타격이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이 나라에서 중증 질환을 앓는 환자로서 보호를 받는다. 거참, 되게 든든하다. 혜택 기간은 최초 5년, 그 이후에는 치료지속 여부에 따라 유지가 될 수도 있으나, 만약 치료가 마무리되었다가 5년이 지나 재발한다면 혜택 적용이 안 되거나 적용률이 달라진다.
지난번 처음 과장님을 뵀을 때 낸 진료비도 다시 결제했다. 천 원. 나, 진짜 좋은 나라 사네. 할인요정님의 안내 덕에 결제를 잘 마치고 뼈스캔 주사를 맞기 위해 핵의학과로 향했다.
23.07.24. 월요일.
짜자아-작 짝!짝!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