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일기 - 혈액 및 소변 검사, 예방접종, 심전도와 폐기능 검사
조직 샘플 슬라이드를 제출하러 간 병원이었지만, 어차피 할 검사 오늘 시간 되면 하고 가라는 상담 선생님의 말에 알겠다고 답한 후 설명을 들었다.
오늘 할 일은, 피검사와 소변검사, 심전도와 폐기능 검사, 그리고 예방접종을 위한 가정의학과 방문.
시간 절약을 위해 유방암센터 옆 채혈실에서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마친 후, 가정의학과 검진 및 주사실에서 접종, 이후 나머지 검사를 하기로 했다.
먼저, 채혈실. 밀린 환자가 없어 번호표를 뽑자마자 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종종 피검사를 할 때면 내밀던 왼쪽을 내밀었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 후 바구니에 채혈보틀을 담기 시작하는데, 뭐가 끊임없이 나온다.
”하하, 샘, 통이 많네요?“
“아, 네. 수술하시죠? 수술하실 분들은 뭐가 많아요.”
족히 열 개는 넘을 보틀인데, 나는 또 설명할 게 있었다.
“제가 피검사하면 혈소판이 적은 걸로 나오는데, 그게 시약을 바꾸면 괜찮대요. 실제로 부족한 게 아니고요. 예전 수술할 때 그걸로 여러 번 뽑았었거든요. 명칭은 모르겠어요. 외워지지도 않고. 시약이 달라지면 괜찮다던데 미리 말씀드려요. “
“아, @&₩$%#요? 네, 그럴 수 있어요. 혈소판을 크게 하나로 인식해서. 그럼 그거 확인할 수 있는 샘플 하나 더 뽑을게요. 명칭 모르셔도 돼요. 이렇게 설명해 주시니까 알아듣겠는데요?”
임상병리사라면 다 알 것 같은 반응이지만, 한 번에 알아듣는 임상병리 선생님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롱이 하나 늘었지만, 빠른 손놀림과 핏줄에 바늘을 꽂는 스킬이 좋은 분을 만나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꽤 어려 보이는 선생님이었는데 남다른 피 뽑는 솜씨에 ‘10점 만점!’을 외치고 싶었다. 상냥한 미소와 응대까지 진정한 만점이다.
그리고 이어진 가정의학과 검진. 예방접종은 두 가지였다. 대상포진과 폐렴. 항암치료 후에는 정상적인 세포도 공격을 받기 때문에 머리도 빠지고, 면역력이 뚝 떨어진다. 그래서 미리 맞아야만 한다. 대상포진 약은 최근에 나온 약인데 두 번을 맞아야 한다며 가정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조금 미안한 듯 가격표를 가리킨다. ‘네.’ 맞겠다는 대답을 한 순간, 내 눈에는 ‘예방접종은 실비보험이 적용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들어왔다. 의사 선생님에게 질문하자, 한 번 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암환자들에게 의료진의 한마디는 절대적인 듯했다. 하라면 해야지, 마치 아기용품 같았다. 그래도 있어야지, 좋은 거 써야지, 긴가민가 하면서도 결국엔 사는 그런 기분. 판매하는 사람(의사)도, 구매하는 사람(환자)도 ‘와 엄청 비싸네요, 비교 좀 해보고 다른 데 가서 맞고 올게요!’ 하면서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날 날아온 신용카드 사용 문자에는 순식간에 숫자가 불어나 있었다. ‘하, 이제 시작인가?‘.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치고 주사실로 내려갔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주사실을 살핀다. ‘정맥주사실’, ‘항암약조제실’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을 보며 항암치료는 이곳에서 하겠구나, 생각했다.
약이 준비되고, 순식간에 주사가 끝났다. 두 방의 주사를 놓으면서 간호사선생님은 ‘수술하고 방사선 하고 그러면 면역력이 약해지니까 미리 맞아두는 게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주사를 놓을 때에는 그런 말보다 ‘따! 끄음~’이라는 말을 두 번 해주셨으면 좋을 뻔 알았다. 곧 들어오겠거니 하고 기다리는 주사 바늘이지만, 찰나일지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주는 두 글자를 못 들으니 근육주사가 더 아픈 것 같았다. ‘아호~’ 하고 아픈 티를 내니, ‘근육 주사라 좀 아파요.’라고 말씀해 주신다.
“어머! 벌써 끝났어?” 뒤에 앉아 계시던 엄마가 놀라시자, 간호사 선생님은 “가격에 비해 너무 빨리 끝났죠?”하고 웃으신다. 위트 있어, 증말. 나와 엄마는 육성으로 웃음이 터졌다. 그러게요, 가격으로는 최소 1박 2일은 맞아야겠는데요? ㅋㅋㅋ
심전도 검사도 대기 없이 들어가 빨리 끝났다. 이렇게 짧게 해서 쓸만한 기록이 나왔나 싶은 속도였다. 폐기능 검사도 마찬가지였는데, 세 번의 테스트 모두 평균수치로 보이는 그래프에 못 미친 게 좀 아쉽다. 촛불 불듯이 훅 불라는데 그게 참 어려운 거라. 얕고 긴 숨은 자신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운동 부족이 티 나는데 앞으로 그 큰 치료들을 어떻게 넘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모든 검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빠한테 피를 열 대롱이나 뽑았다며 무슨 영웅담 전하듯
늘어놓았다. 쫑알거리는 내 이야기를 그냥 흘려듣는 듯하시지만, 무슨 검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하신다는 걸 잘 안다. 병원 다녀오는 동안 우래기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준 아빠에게 감사드린다. 다음 검사, 진료, 치료 때에도 우래기와 할아버지의 둘만의 시간은 자주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손주를 아끼는 두 남자에게 참 고맙다. 감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미리 인사를 남긴다.
23.07.21. 금요일.
정밀검사의 첫 발. 별일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