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일기 - 나는 암환자다.
병원에서 생긴 일들 - 검진이나 치료는 따로 정리하려 한다. 나의 가족, 지인들이 내가 받는 검사와 치료가 궁금할 때 읽어볼 수 있도록. 훗날 나 스스로 내가 어땠었는지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혹시 모를 젊은 암환자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급병원에 처음 간 날. 가운을 갈아입고 북적이는 유방암센터 대기공간에 앉았다. 개인병원에서 응급환자로 끼어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대기하고 나서야 주치의가 되실 과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환자가 빠져나간 후, 마지막 환자로 호명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여느 의료진과는 다르게 까맣게 그을린 피부를 갖고 있었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시나? 캠핑? 등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큰 눈과 옅은 경상도 사투리. 문득 유시민 작가가 떠오른다. (한참 후에는 양조위도 떠올랐다.)
짧은 인사 후 젊은 환자가 오면 마음이 무겁다며 대뜸 결혼여부, 출산여부, 출산계획을 묻는다. 둘째는 없다고 손사래 쳤다. 그래도 살다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아주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런 계획은 없다고 엄마도 거드신다.
“인터넷 많이 찾아보고 왔어요?“
“아니요, 찾아보다가 무서워서 더 안 보고 그냥 왔어요.”
앞에 앉은 학생의 수준을 파악했다는 듯, 환자의 성향이 쫄보임을 눈치챘다는 듯, 옅은 미소와 함께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시고는 나의 상태와 ‘암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꽤 긴 설명이 시작되었다.
내 상태는 대충, 크기로는 1기로 보이나 알 수 없는 상태. 정밀 검진을 해야 알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검사 종류, 치료방법, 기간, 수술 후 과정 등 정말 많은 설명을 들었는데도 알게 된 게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오기 전과 똑같이 답답하다.
정확한 검사가 어려운 림프절 전이 여부는 수술 중 알 수 있고, 조직 샘플 슬라이드도 제출하지 않았으니 육안으로나마 할 수 있는 암덩이의 성격을 알지 못한다. 유방암은 어떤 성격을 띠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유방암에서 비롯한 암세포가 다른 곳에 나타나더라도 그 성격이 유방성격을 띠므로, 그곳에서 유방이 자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응? … ) 그래서 혹시라도 폐에 전이가 됐더라도 폐암이라고 불리지 않는단다. 음… 그렇단다.
(다음 날 슬라이드를 바로 제출했다.)
유방암은 뼈, 폐, 간에 전이가 잘 되는데 초기에 통증이 없는 게 문제라고 했다. 손으로 환부를 살짝 눌러보더니, 보통 통증이 없으니 종양이 커져도 버티다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 정도면 빨리 잘 찾아온 거라고 했다. 이 와중에 칭찬인가 싶어 어깨가 으쓱한다.
암이 왜 생기냐는 질문에 원인은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가 하는 그 모든 추측은 암이 생기는 원인의 빙산의 일각이라며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끝을 모으신다. 또한 암은 정상 조직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공격성이 문제가 아니란다. 그저 자기 세력을 키우다보니 장기를 잠식하게 되고 그 탓에 장기가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래, 누구를 탓하지 말자. 혜민스님의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육체는 잠시 빌려 쓰는 것뿐.’ 내가 빌린 이 육체는 다른 사람의 것보다 조금 약해서 암덩이가 자리를 잡았다. 이건 운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가 앞으로 받아야 할 검사들, 그 과정을 쭉 설명해 주었고, 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검사도 이야기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요, 많이 나오니까. 이 검사는 유전적인 원인을 찾는 건데, 미국으로 보내서 검사를 해요. 이게 450만 원, 아니면 250만 원. 비싸지, 유전적인 이유가 있는지만 보는 건데. 그치만 나이가 젊으니 내가 권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유방암에서 젊은 나이로 보는 게 만 35세. 호락님은 만 36세이니까, 뭐, 비슷하죠. 젊은 사람들이 암에 걸리면 세포 활동이 빠르다는 그런 말 들어보셨죠? 그래서 재발 위험이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해요.“
어지럽다. 속사포 같은 선생님 말씀에 궁금했던 내용도 이미 다 들어서 질문할 것도 없는데, 젊은 나이가 여기에선 좋지 않단다. 오, 활발한 나의 세포들이여.
보험이 있긴 하나, 450? 참나. 부르는 게 값이다. 양가에 암을 앓은 분이 안 계신 나로서는 ‘유전적 요소 없을 걸요? 전 가족력이 없어요!‘ 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 누구나 몸속 어딘가에 암세포는 있을 수 있다. 자리를 잡고 땅따먹기를 하는 녀석이 없을 뿐.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 전립선암을 선고받으셨지만, 80세가 넘은 후였기에 나는 그것을 가족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노환이다. 나이가 들어 생기는 병.
설명을 엄청 길게 들었는데, 다른 이야기는 다음에 결과 나오면 하자고 한다. 꼭 오랜 시간 통화하다가 ‘중요한 건 만나서 얘기해.’하는 여자들의 전화 같다.
‘네, 곧 봬요. 더 이상의 무서운 얘기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다음은 유방암센터 상담실 선생님과의 검사예약하기. 이미 6시가 넘어 병원에는 사람이 다 빠져나간 후였다. 경비원 분들이 누가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가는 시간이었다.
상담샘은 넓은 사무실을 혼자 쓰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보니 의사 선생님들이 종종 들리는 탕비실 같긴 했지만.) 꽃그림을 좋아하는 엄마가 벽에 걸린 해바라기 그림을 사진으로 좀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어느 환자 분이 그려주신 그림이라고 했다. 또 엄마가 창밖 넝쿨이 이쁘다고 하자, 저희도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잘라낸다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 업무환경이 좋은 것 같네요~ 그림도 있고, 풀도 보이고~’라며 호호 웃었다. 분위기가 밝고 좋아서 편안해졌다.
내가 받아야 할 검사는 MRI, CT, 초음파, 뼈스캔 등 일곱 여덟 가지 정도 되었다. 금식이 필요한 검사는 몰아서 잡아주었고, 병원 전체적으로 밀려있어 빠른 예약이 어려운 검사는 응급환자로 분류해 되도록 빨리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했다. 연고가 있어 찾은 병원은 아니었지만, 친절함과 배려가 느껴졌다. 그리고 이틀 뒤, 열흘 후 잡혔던 일반 검사보다 엄청 오래 걸릴 수 있다던 뼈스캔검사가 더 빨리 잡혔다는 문자가 왔다. 취소자 자리에 들어갔다는 덧붙임과 함께.
내가 그날 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묻지 않는다. 나는 암환자다. 열일 제쳐놓고 검사와 수술, 치료에 집중해야 할 사람이니 병원은 이날 언제 오라고 통보만 해준다. 조율 따위는 없다.
수술 일정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병실 소개서가 책상에 붙어있어 슬쩍 물었다. 선생님 추천은 보호자 없이 의료진이 돌봐주는 간호통합병동. 오케이, 저도 그게 더 편할 것 같아요.
“어후, 옆에 다른 보호자가 코라도 곯면 잠도 못 자고 힘들어요. 여기가 더 넓고 인력도 많고 훨씬 편하실 거예요. 수술한 당일만 마취 때문에 좀 누워계시지 다음 날부터 바로 식사하시고 돌아다니세요~ 애기는 뭐 다음날 내려가서 1층에서 보면 되니까~(찡긋)”
“엄마, 나도 이게 편할 것 같아. 엄마가 옆에 계신 것보다 집에서 아빠랑 엄마 둘이 우래기 봐주신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해.”
엄마도 깊은 공감을 하셨다. 아빠와 우래기의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은 4시간이 최대이다. 그중 한 시간은 낮잠 포함. 엄마가 우래기 옆에 있어야 내가 안심이 될 것 같았다.
‘항암 힘들겠죠? 한 번 할 때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약물에 따라 치료비 차이가 크다던데요?’ 같은 질문들은, ‘항암 약물도 워낙 다양하고 케이스가 많은데, 일단 호락님 종양 성격을 몰라서 설명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라는 말로 정리되었다.
큰 병원에 왔지만, 내가 암환자가 되었다는 사실 말고는 새로 알게 된 것이 없다. 그렇게 내 상태를 자세히 알기까지는 2주간의 시간이 더 걸려야 한다. 피를 말리는 시간이 되겠지만, 그래도 친절한 의료진을 만난 느낌이 썩 괜찮았다.
그럼, 8월 1일에 만나요!
23.07.20. 목요일.
몰랐던 세상에 발을 들였다. 계속 몰랐어도 좋았을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