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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10. 2023

<6> 결과 듣는 날-

완전관해를 향한 미지의 세계로 출발.




병원에 도착해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하고, 유방암센터로 향했다. 넓은 대기실에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가 유독 많은 공간이다. 접수를 하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내 예약시간이 지나서도 이름을 부르지 않자 엄마는 가서 슬쩍 물어보라고 하신다. 때가 되면 알아서 불릴 이름인데, 앞에 몇 명이 있는지 간호사 선생님께 물었다.

“아, 호락님? 앞에 몇 분 계신데, 불러드릴 거예요. 음, 오늘 중간점검이라 시간 많이 잡아야겠네.”


시간을 많이 잡아?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한참 안 좋은 상상으로 가득 찰 무렵,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유시민 작가와 배우 양조위를 떠올리게 하는 부리부리한 눈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단순히 화장실을 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또다시 심장이 뛴다. 그리고 내 이름이 불렸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면서 열어둔 문 옆 대기의자에 다른 환자들을 바라보고 다소곳하게 앉았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진료실에 돌아온 선생님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들어오라고 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소리를 주고받았다. 평가 후 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순한 성질이라는 좋은 결과와 전이가 되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이 있기를 바랐다. 선생님은 날 향해 ‘흐흠’하며 애매한 웃음을 날리셨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은 꽤 무겁고 길었다.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결국 나는 최악의 상황을 직면한 것이라 생각했다.


“흐흠, 촬영한 걸 봤어요.“

나는 선생님 말을 잘랐다.

”전이… 된 건가요?”

“아니? 전이는 내가 안 됐을 거라 그랬잖아. 뼈도 아주 깨끗하고, 폐, 간, 전혀 그런 거 안 보여요. 촬영하면서 다른 장기들도 다 보는데 깨끗해요. 림프절은 기억나죠? 그건 수술 전에는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렇지만 사진상으로는 일단 림프도 깨끗해요.”

휴, 한 고비는 넘긴 듯했다. 이제 항암 횟수를 확인하고 싶었다. 조금은 발랄하게 장기가 모두 깨끗하다고 말하던 선생님은 이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런데, 성질이 안 좋아요. 내가 유방암은 성질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이게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허투양성’이에요. 혹시 들어봤어요? 허투?“

“네.”

“이게 아주 나쁜 놈이거든, 성장이 빨라.”

“더 나쁜 놈도 있…?”

“아, 삼중? 그치, 그게 제일 안 좋다고는 하지. 삼중음성, 삼중양성, 큰 의미 없어요. 그 암은 아직 연구 중인 부분이 많고, 명칭은 의미 없어. 호락님은 호르몬 수용은 없고, 허투양성이에요.“


들어봤다. HER2.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유방암 관련 카페에서 주워들은 말 중에 하나였다. 여러 가지 케이스 중에 그게 안 좋은 경우에 속하는지도 몰랐다. 호르몬수용은 음성이라니, 뭐 하나라도 없으니 다행인 건가 갸우뚱했다. 환자에게 결과를 적어주는 용지를 하나 꺼내 여기저기 체크를 하고 수치를 적으며 설명을 이어가셨다.

*HER2: 인간의 표피 성장 인자 수용체 2. 암세포가 HER2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가졌다는 뜻이다. 이 단백질은 암세포를 빨리 자라고 만들게 한다.


“호르몬은 음성, 허투양성. 이게 안 좋은 거라고 했지만, 표적이 돼서 좋아요. 안 좋은 성격인데 얘만 되는 치료방법이 있으니까 좋은 거야, 역설적으로. 보통은 <수술-항암치료-방사선치료>를 해요. 그런데 허투양성이니까 우리는 <선항암표적-수술-표적> 이렇게 들어갈 거예요. 수술부터 하면 표적항암제를 한 가지밖에 못 써요. 그런데 선항암부터 하면 수술 전에 표적치료제 2가지, 수술 후 표적만 할 때 또 다른 1가지, 총 3가지를 써볼 수 있는 거야. 선항암부터 안 할 이유가 없지.“

치료제 이름을 여럿 언급하셨지만 카페에서 봤다는 느낌만 날 뿐, 입에 붙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나쁜 놈인데 의학의 발전으로 나쁜 놈 전용 약물이 있고, 그 약물은 일반 항암약과 달리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나쁜 놈만 공격해 준다. 또 치료 순서에 따라 표적항암 치료제를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쓸 수 있어 암덩이 크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크기가 줄어들면 수술 시 절제 부분도 크지 않게 되고.


“크기는… 2cm니까 전이는 안 됐지만 2기로 기록이 될 거예요. 2기부터 보험 적용도 받게 될 거고. 우리는 선항암을 하게 되니까 사실 평생 내가 림프전이가 됐었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거예요. 나중에 열어봤을 때 이게 원래 없었는지 항암을 해서 전이 됐다가 사라진 건 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마지막 줄에 ‘ki67:’라고 적힌 곳에 펜이 멈칫한다.   “이거는 증식속도라고 보면 되는데, 14를 기준으로 봐요. 14 아래면 천천히 느리게 자라는 거고, 20 이상이면 빠르다고 보는데, …호락님은 78.”

“늬에? 왜 이렇게 높아요?”

“높지, 높아요. 근데 표적이 되잖아. 얘가 막 움직일 때 표적은 걔만 공격하니까 효과가 좋을 거예요.“

핑- 현기증이 날듯했다. 성격도 안 좋은 녀석이 활동성도 좋단다. 망할 놈의 새끼.

*ki67: 암세포 증식 지수. 세포분열 중 DNA복제 때 만들어지는 단백질 지수로써, 현미경으로 100개의 세포 중 성장하는 세포가 몇 개인지 세포핵을 세어 측정한다.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며, 병원마다 기준이 달라 참고용으로만 보면 된다.


“우리는 <선항암표적 6회-수술-표적 14회> 이렇게 갈 거예요. 항암, 표적은 3주 간격. 그럼 치료 기간은 1년 정도.“

“기네요…” 엄마가 말했다.                                          “길죠. 허투는 그래도 선항암하면 크기가 많이 줄어요. 그럼 수술 부위가 작아지겠지. 표적 할 때는 머리가 자라요, 정상세포를 안 거드리니까. 수술은 안 할 수 없어. 반드시 해요. 결과는 크게 두 가지예요. 그 부분을 떼어봐서 암덩이가 아예 사라졌다, 그걸 ‘완. 전. 관. 해.’라고 해요.“

“네, 들어봤어요.”                                                        ”현미경으로 찾아봐도 암세포가 하나도 안 보이는 거야. 그럼 이때는 재발률도 낮고 너무 좋아요.“

암세포가 사라지고, 재발률이 낮다니, 말만 들어도 두근거렸다. 선생님은 커다란 뾰족 괄호를 열어 완전관해라는 글자 아래 또 다른 경우를 써 내렸갔다.

*완전관해: 암(cancer) 치료 판정 기준을 나타내는 용어의 하나로, 암치료 후 검사에서 암이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 Complete Remission으로 CR이라고 쓰이며, 모든 병변의 소실을 의미한다. 또한 종양표지자(암조직 자체의 분비 또는 암조직에 대한 우리몸의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 혈액에서 발견될 경우 암이 진행중이라고 여기는 지표) 수치의 정상화를 뜻하기도 한다.


“근데, 수술을 했는데 검사를 했더니 암이 남아 있어, 이걸 잔존암이라고 해요. 남아있다는 거지. 이땐 좀 안 좋아요. 재발 확률도 높고.“

“아…”

아직 치료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수술 후 검사 결과를 듣고 있는 것도 아닌데, 두 번째 경우를 떠올리니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선생님은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목소리를 한 톤 높였다.

“에이! 다 없어질 거야! 그렇게 돼야지! 자, 그럼 언제 시작할까요? 다음 주?”

피차 어차피 해야 할 일이란 걸 알지만 식당 예약이라도 잡는 듯 빠르게 시간 약속을 잡는 것이 묘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선생님은 당황한 내 얼굴과 벽에 걸린 달력을 번갈아보며 편한 날짜를 말해보라고 했다.


“음… 다음 주는 애기 어린이집 적응기간이라서 제가 왔다 갔다 해야 해요. 그다음 주요. 14일 월요일?”

“그다음 주? 자, 팔뚝 좀 잠깐 볼까? 에이, 안 되겠다. 핏줄 찾기 힘들어. 케모포트 하고 할게요. 이런 핏줄은 주사 맞는 사람도 바늘 꽂는 사람도 힘들어서 고생해. 포트하고 하는 게 훨씬 나을 거야.”

3주에 한 번, 몇 시간씩 항암주사를 맞다 보면 혈관 찾기가 어려워진다고 들었다. 카페에서 보고 나 또한 케모포트를 심어달라고 해야겠다 마음먹은 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달력에 손을 뻗어 날짜를 짚어가며 일정을 읊어주었다.

”이렇게 하죠. 15일 입원 - 16일 케모포트 심고 - 17일 첫 항암하고 - 18일 주사 맞을 게 있어서 그거 맞고 퇴원. 가만있어보자, 집이 가깝네? 그럼 항암 하고 퇴원했다가 다음날 다시 와도 되고.“

일정이 확정되자 의사 선생님은 그제야 바깥 대기환자들이 떠오른 듯 말이 빨라졌다.


”자, 궁금한 거?“

간호사 선생님 말씀처럼 과장님이 오랜 시간을 잡아 설명을 해주셨기에 궁금한 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주어진 귀한 시간에 무슨 말이라도 던져야 할 것 같았다.

“항암 하다가 아프면, 타이레놀 먹어도 돼요?“        선생님 얼굴에 또 미소가 번졌다.

”항암 전후에 그런 거 다 처방해 줄 거예요.“              내가 생각해도 이 심각한 와중에 어딘가 좀 유치하고 태평한 질문 같았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여기 흔들리는 앞니가 빠지거든 사탕 하나 먹어도 되겠느냐고 허락받는 대화 같달까.


”그럼 15일에 봅시다!“

”네, 감사합니다.“


엄마도 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엄마는 1년이 넘을 긴 여정을 앞두고 시름이 깊어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병원 원장님은 이번 겨울에 다 끝날 것처럼 6개월이면 된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마주할 즈음 마지막 표적항암이 끝나는 스케줄이 나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 요 며칠 ‘암은 죽음’이라는 생각을 지우면서 나는 한결 안정을 찾았다. 그래서인지 치료 횟수를 받아 드니 눈앞의 퀘스트만 하나씩 깨 나가면 된다 싶어 후련했다. 수술 한 번에 조금 큰 주사 스무 번이면 이 병은 낫는다.


그렇게 완전관해를 꿈꾼다. 주문처럼 외워야지.

’작아진다. 없어진다. 완전관해!‘



23.08.01. 화요일.

작가명을 완전관해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호락’도 소중하니, 이건 ‘호’로 써야겠다. 완관 호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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